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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민해 May 11. 2023

나를 자극하는 것

한국 출판에 대해 말하자면 문학 전문 대형 출판사가 후안무치한 일을 저지르기도 하고, 독립 서점이나 작은 출판사라고 해서 다 어여쁘고 가상한 것도 아니다. 한국 작가의 사생활에 대해 쓴다고 믿었는데, 그런 생각들이 저절로 녹아 나왔나 보다. 문학, 한국문학, 한국 출판이 싫었던 건 아니다. 전혀 아니다. 나는 문학, 한국문학, 한국 출판을 깊이 사랑했다. 다만 이 분야는 내게 결코 정치나 축구 같지 않았다. 나는 이 주제에 대해 이야기할 때 조곤조곤 말할 수 없었다. 어느 순간에는 나도 모르게 격렬해졌고, 그 열기를 나 혼자 모르곤 했다. 나의 격렬한 반응이 다른 사람의 격렬한 반응을 불러오기도 했다. 그렇게 논란을 일으키고 논쟁의 중심에 선 적도 있다.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 장강명



주변에서 차분해 보인다는 말을 종종 듣는 편이다. 말도 조곤조곤하고, 소란스럽지 않다고 말이다. 회사에서도 대체로 조용한 편이고, 누가 먼저 다가와 말을 걸지 않는 이상 입을 잘 열지 않는 편이다. 내 머릿속 세계는 늘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지만,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은 대체로 유하고 평온해 보인다는 평이 많았다.


그럼에도 나를 자극하는 것들이 있다. 청각, 촉각, 시각 등과 같은 감각들 말고(물론 그런 감각도 굉장히 예민하기는 하다), 유독 나를 자극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타인의 생각과 가치관 그리고 말이다. "여러분은 이 문제(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로 시작되는 말 말이다.

동일한 상황을 바라보며 서로의 생각과 가치관을 나누는 것이 내 삶에 열기를 끌어올리는 느낌이랄까. 보통 이런 질문을 받고 하고 싶은 말이 떠오르는 순간, 설레는 정도를 넘어 피가 끓는 느낌이다. 내가 좋아하는 장강명 작가도 자신이 꽂혀있는 주제에 대한 글을 쓸 때만큼은 평소답지 않게 격렬해진다고 말한다. 평소의 그는 세상만사 대부분에 심드렁한 태도이고, 차분하다기보다는 둔하다는 묘사가 더 어울리는 사람이다.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호들갑을 덜 떠는 사람이라는 것인데, 내가 그렇다는 건 아니고, 적어도 나 또한 내가 관심 있는 주제에 대해서만큼은 피가 끓는 것 같다는 말이다.


얼마 전 '돈으로 시간을 살 수 있을까'라는 주제로 때아닌 논쟁을 이어갔다. 놀이공원에서 사용되는 '매직패스'라는 개념도 처음 알았다. 매직패스란 사전 탑승 예약 없이 어트랙션의 매직패스 대기라인을 통해 빠른 탑승이 가능하게끔 하는 유료 서비스다. 놀이기구 탑승 대기 시간을 단축할 수 있어 이용객들에게 인기 있던 이 제도는 한 방송을 통해 조명되면서 '새치기 구매' 논란에 휩싸였다. 돈으로 서비스를 사는 건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연하다는 논리와 돈으로 다른 사람의 시간을 뺏는다는 점에서 도덕성 결여의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는 논리가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주제로 여러 의견을 주고받았다.


조심스럽게 내 입장을 나눠보자면 아무리 자본주의 시장이고, 영리기업이라 이윤을 추구한다지만 돈이면 뭐든지 다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팽배해질 것만 같아 두렵게 느껴졌다. 사람마다 공정성과 도덕성에 대한 가치관이 다 다를 테지만, 경제적 양극화를 더욱 부추기는 것만 같아 조금은 비판적인 관점으로 바라보게 된다. 더군다나 이걸 어린아이들이 보고 자라면서 겪게 될 상처와 상대적 박탈감은 또 어찌할 것인가. 가치관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아이들이 어른들의 이 같은 모습을 보면서 '나도 어른이 되면 돈 많이 벌어서 매직패스 사야지'라고 생각한다면? "억울하면 너도 돈 벌면 되잖아"라고 말하면서 가난한 친구를 무시하고, 그저 돈이면 다 되는 줄 아는 세상이라 생각하는 어른으로 자라난다면? 그렇다면 이 세상은 강자와 약자, 빈인빈부익부의 경계가 더욱 선명해지지 않을까. 누군가를 돕기보다는 누군가를 찍어 눌러야만 내 자리를 찾을 수 있다는 생각들로 쓸데없는 경쟁을 부추기지는 않을까. 그리고 그 경쟁이 과열되었을 때 가장 큰 혜택을 받는 건 과연 누구일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기 시작했다. 돈이 나쁜 건 아닌데, 돈을 가장 우선시하는 사회는 꽤나 무서울 것 같았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저마다의 가치관 차이일진데, 적어도 나는 돈보다는 사람, 사랑, 존중과 배려, 도덕, 공정성 등이 더 중요하다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이 주제에 대한 내 입장을 명쾌하게 설명하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넘어져있는 사람을 밟고 지나가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다.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부자란 단순히 돈만 많은 사람이 아니다. 돈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부자라 생각한다. 돈만을 지나치게 숭배하거나 돈에만 혈안이 되어 진짜 중요한 것을 놓치는 사람들은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부자의 모습이 아니란 말이다. 아 뭔가 글로 쓰려니 어렵다. 내 마음이 뭘 말하고 싶은 건지는 알겠는데 매끄럽게 표현이 안된다.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났나"라는 속담이 있다. 이 속담에 대한 네이버 어린이 백과사전의 풀이에 따르면 '돈은 사람이 필요해서 만든 것일 뿐이에요. 아무리 돈이 소중하다 해도 사람보다 소중할 수는 없어요. 돈을 최고로 여기는 사람들을 나무랄 때 쓰는 말이에요.'라고 되어 있다. 표현이 너무 귀여운데 그래, 이 말이 맞다. 나는 사람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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