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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민해 Sep 08. 2023

길을 모른다는 이유로 욕을 먹었다

그것도 모르는 사람에게

종종 있는 일, 아니 생각보다 꽤 자주 있는 일 중 하나다. 낯선 어르신이 길을 묻고 대답이 시원찮으면 그 이유만으로 욕을 먹는 일. 좋은 어른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내가 자주 주장했던 건 '책임감'이었다. 나이를 앞세워 자유라는 이유를 들어가며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는 사람들, 염치를 잃어가고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는 이들을 볼 때면 나이'만' 먹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생각해 보면 가장 쉬운 일 아닌가. 누구나 공평하게 가만히만 있어도 먹는 게 나이니까 말이다. 그런 의미로 나는 나이를 먹으면서 자연스레 삶의 지혜가 쌓이거나 관록이 묻어난다는 말은 믿지 않는다. 나쁜 아이가 아무런 변화와 성찰 없이 나이를 먹으면 나이가 든 나쁜 어른이 될 뿐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마다 자주 느낀다. 새치기는 기본이고, 나이를 앞세워 노약자석이 아님에도 나에게 자리를 양보하라고 나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말씀하시는 어르신들의 모습. 심지어 나는 그날 몸이 아파 노'약'자의 '약'자에 해당했고, 내가 앉아있던 자리는 노약자석이 아니었음에도 젊다는 이유만으로 아픈 몸을 강제로 일으켜야 했다(오죽하면 '노약자'를 검색하면, '노약자 기준'이라는 연관 검색어가 뜬다). 그 상황에 "제가 몸이 안 좋아서요."라고 말할 용기는 아직 부족하다. 아니, 그리고 애초에 내 말이 통할 것 같았으면 자리를 맡아 놓은 양 너무도 당연하게 비키라는 말씀을 하지도 않으셨을 것이다.



인간들이 기침을 하고 가래가 끓는 것을 자랑인 양 컥컥대고 있다. 여기저기서 핸드폰이 울린다. 귀가 먹었는지 핸드폰이 계속 울리게 두는 인간도 있고, 전화를 받아 자기가 지금 전화를 받을 수 없는 사정을 길게 설명하는 인간도 있다. 어느 쪽이 더 꼴불견인지 모르겠다.
늙으면 다 저렇게 되는 걸까? 나도 늙었지만 저렇게만은 되고 싶지 않다.
나이들면 남는 사람끼리 친구가 된다고, 그럴 수밖에 없다는 말을 들었는데, 나는 저 사람들과는 도저히 친구가 될 수 없을 것 같다.
아직 나이가 덜 든 건가?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 나도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친구를 찾을 수가 없다.
내가 문제인 건가?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은데.

<레이디 맥도날드> 한은형



어제는 춘천을 가는 중이었다. 춘천을 갈 때마다 시간이 오래 걸려도 굳이 경춘선을 이용하는 건, 지하철 창문 너머로 펼쳐지는 자연 풍경을 오랫동안 감상하는 걸 좋아하기 때문이다. 종종 춘천여행을 가는데 그때마다 경춘선을 탔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혼잡한 시간을 피해 산과 나무가 끝없이 펼쳐지는 창밖의 풍경을 가만히 보거나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해있곤 했으니까. 이번 춘천여행도 마찬가지였다. 장기 휴가로 쉬고 있는 나와 달리 누군가에게는 출퇴근의 연속인 평일 중 하루 일 테니 직장인이 혼잡한 시간을 피해 여유로운 시간대를 골랐던 게 화근이었을까.


나처럼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여유를 갖고 계신 것 같은 한 할아버지가 한 칸에 대여섯 명 밖에 없는 한가한 지하철임에도 불구하고 굳이 내 옆자리에 앉으셨다. 그나마 다행(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인 건 한자리는 띄우고 앉으셨다는 것? 심지어 자리에 앉자마자 혼잣말이지만 너무나 큰 목소리로 욕설(내용은 잘 알아들을 수 없었다)을 하시는 바람에 깜짝 놀라기도 여러 번. 창밖을 바라보며 멍하게 던져두었던 시선을 급하게 책으로 거뒀다. 자리를 옮길까 잠깐 고민했지만 차마 그러지 못했다. 지난번에 공덕역에서 지하철을 탔다가 너무 거칠게 욕하시는 할아버지들을 피하려고 어쩔 수 없이 자리를 옮겼던 적이 있는데, 자신들을 피한다고 느끼셨는지 멀어지는 내 뒤통수에 대고 더 거친 욕설을 쏟아내시는 걸 경험했던 터라. 종종 이런 일이 진짜 가능하냐고, 네 착각 아니냐고 물어보시는 분들이 계신데, 나야말로 내 착각이라고 믿고 싶다. 들려오는 온갖 욕에도 '에이 설마 아니겠지' 하는 마음에 고개를 돌려 그분들의 모습을 보면 너무나 선명하게 시선의 좌표가 나를 향해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괜히 자리를 옮겼다가 승객도 얼마 없는 이 열차(심지어 역마다 이동거리도 길어 내릴 수도 없는)에서 이분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제발 조용히 이 시간이 지나가길, 나에게 어떤 말도 건네지 않으시길 속으로 간절히 빌며 책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책의 내용은 이미 머릿속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 상태였다. 하지만 나의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결국 고개를 돌려 나를 부르셨다.



어이, 아가씨.


외모에 편견을 내려놓으려 했지만, 직접 마주한 그분의 모습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험상궂고, 고약하게 생기셨다. 심지어 목소리도 걸걸하셨고, 구겨진 마스크를 턱에 걸친 채 나를 빤히 쳐다보고 계셨다. 못 들은 척 무시했어야 했을까를 1, 2초 고민했지만 괜히 그랬다간 어떤 일(?)을 당했을까를 상상해 보면 차라리 빨리 대답하고 끝내버리는 게 나을듯싶었다. 그분은 나에게 이 지하철의 종착역을 물어보셨다. 선명한 반말로. 내 목적지는 춘천역이 아닌, 남춘천역이었기에 종점이 어디인지를 고려하지 않았던 터라 살짝 머뭇거렸고, 괜히 잘못된 정보를 말씀드리면 안 될 것 같아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사실 길치라 이런 류의 질문들은 대체로 자신이 없는 편이기도 하고). 그랬더니 그분이 갑자기 표정을 구기며 내가 미처 준비할 틈도 없이 욕을 하셨다.



너 촌'년'이구나.


그 뒤로 이어지는 그분의 말을 차마 이 공간에 그대로 옮길 자신은 없다. 나는 그 지하철의 종점역을 모른다는 이유로 그 자리에 붙박이처럼 앉아 "년"이라는 단어가 여러 번 섞인 욕설을 귀에 고스란히 담고 있다가 다음 역에 정차하자마자 무슨 역인지도 확인하지 않고 도망치듯 내렸다(급하게 내리면서 책갈피를 떨어트렸는데, 다시 주울 정신도 없었다). 다행히 그분이 나를 따라 내리지는 않았지만(종종 따라 내리는 분들도 있어서) 머리가 멍했다. 순간 내가 왜 굳이 춘천까지 여행을 와서 이 고생을 하나 싶은 서글픈 감정까지 밀려왔다. 다음 열차를 기다리고 춘천에 도착해서도 한동안 마음이 좋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동네인데, 오랜만에 찾을 생각에 설레는 마음이 가득했던 나의 기대감이 바닥으로 툭하고 내팽개쳐진 기분이었다.



왜 노인이 되면 다들 저렇게 뻔뻔해지는 걸까? 특히 남자들 말이다. 김윤자는 자신도 누군가에게는 그런 노인으로 보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움츠러든다. 어쨌거나 여기는, 죄다 노인들이다. 노인들만의 세상이다. 평일 오후 두시에 한가하게 영화를 보고 있을 젊은이는 희귀하다. 더욱이 하스미 시게히코 영화를 보자고 여기까지 찾아오는 젊은이란 더 희귀할 것이라고 김윤자는 생각한다.
'젊은이'라는 말을 쓰는 걸 보면 나도 늙긴 했다고 김윤자는 자조한다. 그녀는 그들과 같은 집합에 속하고 싶지 않지만 자신이 노인이라는 걸 부인할 수는 없다. 양심 있는 사람이니까. 김윤자는 젊은이에게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노인들에게는 희망이 없다. 문제만 많다.
노인의 가장 큰 문제는 염치라는 걸 모른다는 거다. 늙으면 염치가 사라지는 건지 염치보다 신경쓸 게 많아서 염치 따위에는 소홀해지는 건지 모르겠다. 아니면 젊었을 때부터 염치가 없었던 건지도.

(중략)

김윤자는 염치를 잊지 말자고 생각해왔다. 부끄러움을 말이다. 공공장소에서 남을 배려해야 한다는 걸 잊지 않았다. 아니다. 이 말은 적절하지 않다. 그건 남을 배려한다기보다도 그녀 자신을 위하는 일이었다.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긍지를 지키는 일이니까.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다. 핸드폰이 제멋대로 울리게 놔두지 않고 이런 데(영화관)서 전화를 받지 않으면 된다.
김윤자는 그러려고 해도 그럴 수가 없다. 핸드폰이 없다. 전화가 울릴 수 없다.
그런데 냄새에 관해서는, 자신이 없다. 자신한테서도 저런 냄새가 날지 모른다. 씻을 수 있을 때 최대한 씻고 있지만 충분하지 않다. 그럴 만한 사정이 있으니까... 김윤자는 갑자기 위축된다.

<레이디 맥도날드> 한은형



훌훌 털어버리면 된다는 걸 머리로는 알았지만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가려고 찜해뒀던 서점에 들러 책을 구경하고, 춘천에 고즈넉한 경치를 감상하면서도 기분은 나아지질 않았다.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고 혼자만의 공간에 널브러지듯 눕고 나서야 마음이 차츰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아무와도 말을 섞고 싶지 않아 한동안 침대에 멍하니 누워있다가 이건 아니다 싶어 자리를 박차고 무작정 밖으로 나왔다. 춘천의 밤거리를 지도도 보지 않고 이곳저곳 하염없이 걸었다. 걷다 보니 이곳의 야경이 하나둘 눈에 들어왔다. 춘천시청 근처로 여기저기 아름답게 꾸며놓은 조명들과 밤 산책을 하며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는 시민들의 모습에 다시금 안정감이 피어올랐다.


정처 없이 걷던 그날 밤, 예상치 못한 일정으로 "첫서재"를 찾았다. 걷다 보니 약사동이었고 익숙한 골목길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시한부를 지나 예약제로만 운영되고 있는 소중한 공간, 구불구불 골목길을 따라 걷다 불 꺼진 첫서재 앞에 도착했다. 한동안 그곳에 서서 '밤에는 이런 모습이구나' 생각하며 겉모습만 가만히 바라보다 지나쳤다. 작년 여름의 끝자락, 이 공간을 마지막으로 방문했던 그때의 기억들도 새록새록 떠올랐다. 익숙한 길을 익숙하지 않은 시간에 지나고 있다는 사실이 왠지 모르게 씁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누가 보면 그 늦은 시각 불빛 하나 없는 골목길에 멀거니 서 있는 내 모습이 처량하게 보일 것 같기도 했다. 그리움과 아련함이 뒤섞인 여러 감정이 올라오기도 했는데 나쁘지 않았다. 이번 여행의 시작은 비록 예상치 못한 어둠이었지만, 그 끝은 소중한 추억이라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나와 춘천의 하루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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