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재주가 좋은 편은 아니지만 어릴 때부터 이것저것 만드는 걸 좋아했다. 그중에서도 수예(자수, 뜨개질 따위의 손으로 하는 재주)를 특히 좋아했는데 초등학교 때부터 십자수뿐만 아니라 뜨개질, 바느질, 퀼트 등 다양한 걸 만들며 놀았다. 십자수는 혼자 설명서를 보고 도안을 따라 만들면서 터득했는데 바느질은 엄마에게 뜨개질은 할머니에게 배웠다. 잊을만하면 한 번씩 손이 심심하고 머리를 비우고 싶다는 생각에 십자수나 뜨개질 거리로 눈을 돌리곤 했는데, 겨울만 되면 유독 그렇게 뜨개질이 생각난다.
그나마 이번 겨울은 잊고 있었는데 지난주에 직장 동료에게 전혀 예기치 못한 선물을 받았다. 코바늘로 직접 뜬 곰돌이 모양의 티코스터였는데 평소 그분과 제대로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어 더 깜짝 놀랐다. 한 달에 한 번씩 그분이 회사 게시판에 올려주시는 공육레터에 반응했던 나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라는 건, 편지를 읽고 난 후에야 알았다. 감사한 마음에 사내 메시지 창을 켜고 와르륵 나의 마음을 전해드렸는데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는 그분의 말씀에 기분이 묘했다. 연말이면,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알게 모르게 퍼져가는 그때만의 따뜻한 분위기를 좋아하는데 그 감정이 모락모락 피어오른 것이다. "한 해 동안 고생 많았고 내년에는 좋은 일만 가득했으면 좋겠다!"를 마음껏 나누는 그 와글와글함이 좋았다. 사람이 많은 곳을 지독하게 피해 다니는 나지만 연말만큼은 거리 곳곳을 가득 채운 형형색색의 반짝이는 조명들에 맥없이 시선을 빼앗기곤 했다. 나이가 들어도 그 감각만큼은 지금도 여전하다.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흘렀는데, 여하튼 그분 덕분에 '뜨개질'이라는 이 세 글자가 내 머릿속에 다시 둥둥 떠오르기 시작했다. 재작년에도 세이브더칠드런의 신생아 모자뜨기 키트를 구입해서 기부와 기증을 동시에 했던 기억이 난다. 작년 15기를 끝으로 길었던 캠페인의 대장정을 마무리했다고 들었는데, 내가 참여한 건 14기쯤이었던 것 같다. 마케팅의 일환이라는 느낌은 지울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내가 좋아하는 것이 좋은 일에 쓰이면 더 좋으니까'라는 마음으로 신나게 참여했던 기억이 난다. 돌고 돌아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는 소비라는 마음도 좋았고 말이다.
그래서 올해도 무언가를 뜨고 싶다는 감각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뜨개질은 십자수와 달리 계절을 탄다. 한 여름에 땀을 뻘뻘 흘리며 하는 뜨개질은 왠지 느낌이 좀 그래. 눅눅한 날씨처럼 털실도 눅눅해질 것 같고 그걸 보고 있는 것 자체만으로 더워지는 느낌도 있다. 하지만 겨울은 다르지. 어릴 때는 뜨개질이 너무 좋아서 겨울이 오기를 기다렸던 적도 있다. 항상 들고 다니는 뜨개질 가방이 있었는데 설날에 할머니 댁에 갈 때면 그 가방을 꼭 챙겨가 할머니에게 나의 뜨개질 실력이 얼마나 늘었는지 자랑하기도 했다. 물론 할머니는 각종 의류와 가방을 다 뜨실 정도로 전문가라 나의 소소한 뜨개질 놀이가 털 뭉치 장난감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으셨겠지만 그럼에도 늘 내 뜨개질 실력이 자라날 수 있게 바로잡아 주셨다. 코를 잘못 뜨면 수정해서 다시 잡아 주시고, 또 풀어서 제대로 걸어 주시고. 그렇게 나의 첫 작품은 아빠의 목도리였다. 하지만 아빠는 그 목도리를 자주 찾지 않으셨지(아빠 미워, 흥).
동료가 선물로 건네준 티코스터는 코바늘로 떠야 한다. 내가 잘 쓰는 바늘은 대바늘이다. 찾아보니 코바늘은 주로 소품을, 대바늘은 의류를 뜰 때 쓴다고 한다. 물론 그 반대로도 가능은 한데 주력하는 분야는 아니라는 것. 지금 내가 뜨고 싶은 건 그분이 선물로 전해주셨던 티코스터처럼 아기자기하고 예쁜 소품들인데, 그걸 뜨려면 코바늘이 적합하다. 사람들은 코바늘뜨기가 더 쉽다고 하는데 사람은 역시나 적응의 동물이 아니던가. 어릴 때부터 꾸준히 써오던 나의 손 감각은 대바늘에 더 익숙하다. 숲속 오두막, 모닥불 앞 흔들의자에 앉아 대바늘로 느릿느릿 목도리를 짜는 동화 속 할머니의 모습이 자연스레 그려지는 건 기분 탓일까. 이래야 좀 뜨개질 같지. 코바늘 하나로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며 깨작깨작하는 건 왠지 뜨개질을 한다는 느낌이 안 난단 말이야(암 그렇고말고). 그래서 고민이다. 뜨고 싶은 건 코바늘로 떠야 하는데 내가 쓰고 싶은 바늘은 대바늘이니 원.
방금 한 말은 농담이고 뜨개질이나 베이킹, 도자기, 공예 등 손으로 하는 활동은 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하던데, 나에게는 가장 두드러진 행위가 뜨개질이었다. 작품의 완성도보다 중요한 건 몰임의 순간에 찾아오는 기쁨이다. 이 감각은 명상의 영역과도 닮아 있다. 생각이 너무 많은 사람들은 가만히 앉아 명상을 하는 것(그러면 오히려 잡생각이 많아진다)보다는 손을 움직이거나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게 생각을 비우기에 더 좋은 환경을 조성하기 때문이다. 내가 걷기를 좋아하는 것도, 손글씨를 좋아하는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회사 근처 회현역 지하상가에는 뜨개질 공방이 많다. 알록달록 색색의 다양한 실을 파는 가게들이 즐비해있고, 요즘 그곳들을 다시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어제는 생필품을 사러 다이소 매장에 갔다가 뜨개바늘과 실이 있길래 몇 번을 들었다 놨다 했던지(다이소에는 정말 안 파는 게 없구나). 연습용으로 하나 사볼까 고민하다 과연 1,000원의 털실이 털실의 구실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하는 근본적인 물음에 빠지기도 하며 그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20분이 넘도록 그 자리에 서서 가만히 실을 들여다보는 내가 신기했던지 근처에 계시던 직원분은 내 곁을 몇 번이나 왔다갔다 하셨다. 오늘도 점심시간에 회현역 지하상가를 걸으며 어떤 실을 사면 좋을까, 사면 뭘 뜰까, 어떤 방법으로 뜰까, 어떤 바늘로 뜰까 등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깊어지기만 한다(이러다 겨울 다 지나가겠네).
겨울만 되면 유독 더 생각나는 나의 취미활동 중 하나 뜨개질. 올해는 작년보다 실의 종류와 뜨는 방법 등이 더 다양해진 것 같은데 그냥 내 기분 탓이려나. 뜨개질에 관심을 갖는 젊은이(?)들이 옛날에 비해 더 늘아나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20대 때만 해도 내가 뜨개질을 좋아한다고 말하면 애늙은이(?) 취급을 당했는데 이제는 제법 뜨개질의 순기능을 사람들이 알아가는 것 같아 왠지 모르게 뿌듯하기까지 하다(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좋아했다고요? 에헴). 나도 오랜만에 다시 그 대열에 합류해 볼까 고민만 깊어가는 올해의 마지막 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