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민해 Jan 02. 2024

나이를 세는 게 한결 수월해졌다

끝자리가 같아졌으니까

늘 그랬듯 모든 미래는 빠짐없이 과거가 된다는 사실을 믿으며, 그 희망을 잃지 않기 위해 계속 쓴다. 이것은 강규산 본인이 쓰면서도 정확히 무슨 뜻인지 몰랐던 문장, 뭘 쓰는지도 모르고 그저 계속 쓰기 위해서 쓰게 된 문장이었다. 하지만 지금, 강규산은 자신이 뭣도 모르고 쓴 문장의 의미를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생각지도 않았던 미래가 눈앞에 불쑥 나타나 강규산과 강규산의 전부를 통과해 과거로 행진하는 것, 이것이 바로 인생이 작동하는 방식이라는 것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탱크> 김희재



2023년의 마지막 날, 좋아하는 카페에 앉아 지난 한 해를 가만히 돌아봤다. 한 해 동안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는가를 키워드로 하나하나 수첩에 적어가며 정리했다. 사회생활 10년 차가 되어갈 무렵 처음으로 맞이한 장기휴가 덕분에 책과 관련된 다양한 활동을 경험할 수 있었다는 것, 좋은 사람을 만나 특별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는 것, 생업을 떠나 개인적인 흥미로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는 것, 나만의 독립적인 공간에서 스스로를 건강하게 잘 키워가고 있다는 것 등 이루어낸 것들이 많았다. 잃은 것 또한 많았지만 그때의 선택들을 후회하지 않았다. 불편한 선택을 이어가지 않겠다는 다짐은 여전히 유효하다.


브런치라는 공간 안에서도 새로운 글쓰기 메이트들을 만났고, 글을 매체로 느슨하고도 끈끈한 (모순적인 두 형태의)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책을 바탕으로 한 활동은 더욱 다채로워졌다. 매년 그래왔듯 작년 한 해 동안도 100권가량의 책을 읽었고 좋은 문장을 차곡차곡 기록했다. 애정하는 출판사의 독자 교정으로 참여하며 출판된 책에 내 이름을 올리는 신기한 경험도 했고, 짧게나마 기자단으로 활동하며 약간의 수익금도 얻었다(다만 지금은 그 활동을 이어가지 못하겠다고 결심한 상태다). 다양한 도전과 더불어 다양한 사람도 만났다. 작년부터 나의 최애 작가로 자리매김한 장강명 작가님을 대면과 비대면으로 만났으며 나의 필명과 실명도 말씀드릴 수 있어 기뻤다. 지금도 비대면으로 관계를 이어가며 밀도 있는 대화를 나누고 있고, 다가올 작가님의 북토크에도 참여 신청을 해 둔 상태다. 좋아하는 작가가 생긴다는 게 나의 독서 세계를 얼마나 충만하게 만들어주는지 몸소 느낄 수 있었던 특별한 경험이었다.


제야의 종소리라는 걸 들어본 지가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어릴 때는 매년 12월 31일이면 제야의 종소리가 울림과 동시에 설레는 마음으로 다이어리에 이것저것 새해의 목표를 정리하곤 했었다. 이제는 그때의 기억들이 까마득해질 만큼 그저 그런 건조한 어른이 되어가는 것 같은 기분에 착잡한 마음이 올라오기도 했는데, 올해는 달랐다. 카페에 홀로 앉아 2023년의 한 해를 정리하고 책을 읽으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익숙한 bgm이 카페에 울려 퍼지고 있다는 걸 깨닫고 슬쩍 미소 짓기도 했다. 우리는 함께 한강을 걸으며 2024년을 맞이했다. 저 멀리서 폭죽을 쏘아 올리는 광경도 지켜보고 세빛둥둥섬에서 파티가 예정되어 있던 건지, 클럽을 방불케 하는 외국인들의 들뜬 모습에 기분 좋게 웃어 보이기도 했다. 눈이 잔뜩 내린 다음 날이라 길을 걸을 때마다 휘청휘청 넘어질 것 같았지만 서로의 손에 의지하며 한 걸음 한 걸음 산책을 이어갔다. 사적인 서점에서 구입한 "연말정산" 노트에 담긴 100가지 질문에 답을 하면서 밀도 있는 대화를 나눴고, 해 뜨는 걸 보겠다며 날을 새서 2024년의 첫 아침을 맞이했다(물론 나이가 나이인지라 그 뒤로 기절하듯 잠들었다).


2024년의 나는 또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게 될까?


나이를 먹을수록 좋은 점이 여러 가지 있는데 그중 제일은 내가 더욱더 나다워진다는 감각이다. 나의 삶을 나의 의지대로,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점점 더 쌓여 간다. 예측할 수 없는 환경에 놓일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결국 나만의 답을 찾아 뚜벅뚜벅 한 걸음씩 걸어가는 걸 바라볼 때마다 스스로가 대견스럽다. 잘 자라고 있는 것 같고, 잘 키우고 있는 것만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직까지 답하지 못한 질문이 있다.


"나는 과연 (좋은) 어른일까?"


아마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살아있는 동안 끊임없이 나에게 던져야 할 질문일 것이다. 자신하는 순간 오만해질 수 있다 자각하며 말이다. 새해의 첫날인 어제는 2023년의 마지막 밤을 보낸 카페와는 또 다른 동네 카페에 앉아 읽고 쓰기를 이어갔다. 지난달부터 새롭게 시작한 일에 대한 글도 브런치에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어 글로 엮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머릿속에는 늘 다양한 아이디어가 둥둥 떠다니지만 실천은 또 다른 능력을 요하는 것만 같다. 그럼에도 하고 싶다는 감각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게 결국은 쓰고야 말겠지. 하고야 말겠지. 늘 그래왔듯이 말이다.


그건 그렇고, 뭐가 그렇게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리입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겨울에는 붕어빵? 아니, 뜨개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