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읽지 못한 책들이 너무 많은 걸
오늘은 나를 표현하는 가장 대표적인 물건을 이야기하고 싶다.
그 시점이 언제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나를 표현하는 물건은 다름 아닌 책이다.
보통 글을 쓰다 보면 그와 관련된 책 속의 문구가 꼭 떠오르곤 한다. 나는 보통 책을 한 권 완독 하면 거기서 끝내지 않고, 좋았던 문장들을 비공개 블로그에 타이핑해서 모아두는 편인데, 이렇게 글쓰기에도 인용되곤 한다. 꼭 책에서뿐만 아니라 좋은 문장을 기록하고 수집하는 것은 아주 오랜 나의 습관이다. 특히 인문서를 읽을 때는 나의 메모 습관이 더 발휘되곤 한다. 책을 고르는 순간부터 포스트잇 플래그를 책갈피 삼아 옆에 두고 읽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읽다가 마음에 드는 구절은 플래그를 붙이고, 붙이고... 그렇게 한 권의 책을 완독 하면 그동안 붙여놓았던 플래그를 떼면서 그 내용들을 타이핑해서 수집한다.
나의 책사랑 덕분인지 어떤 곳에 가도 내가 책을 읽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뚜렷해졌다. 특히 직장에서는 우연찮게 다독왕이라는 상을 받은 이후로 동료들에게 '책 읽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더욱 각인되었다. 어느 장소를 가도 항상 책을 옆에 두는 편이라 장소마다 놓여있는 책이 다 다르다. 내 방 책상에 놓여있는 책과 침대 머리맡에 놓여있는 책이 다르고, 회사에서 읽는 책과 대중교통에서 읽는 책도 다르다. 그래서 가끔은 '요즘은 무슨 책 읽어?'라는 질문을 갑작스럽게 받았을 때 머뭇거리게 된다. 무슨 책을 읽는다고 해야 하지. 이것저것 다 읽고 있는데 말이다.
내가 요즘 읽고 있는 책은 글 쓰는 마음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쓰고 싶다 쓰고 싶지 않다>라는 책인데, 총 9명의 작가가 글쓰기에 대한 자신만의 고찰을 섬세하게 담아낸 에세이다. 오늘은 서촌의 어피스어피스에서 이 책을 모티브로 진행 중인 <쓰고 싶다 쓰고 싶지 않다 : 작가의 방> 전시회를 다녀왔다. 9명의 작가 중 이석원 작가님과 전고운 작가님이 글을 쓸 때 꼭 필요로 하는 물건을 인테리어로 꾸며놓은 공간이었다.
어피스어피스의 7번째 전시 <쓰고 싶다 쓰고 싶지 않다 : Writer's room>은 글을 쓰는 마음으로부터 일하고 살아가는 마음, 좌절하고 사랑하는 순간까지 9명의 작가들이 전하는 내밀한 이야기 <쓰고 싶다 쓰고 싶지 않다>를 조금 더 긴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작가의 방'으로 꾸며집니다.
9인의 작가들이 글을 쓸 때 꼭 필요한 것들로 채워진 '작가의 방'에서 그들의 취향이 담긴 사물들을 둘러보고, 향긋한 차를 마시며 영감을 주는 책을 읽고, 창 밖 풍경을 바라보며 음악에 귀 기울이는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면서 여러분도 마침내 스스로의 이야기를 써나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서촌의 느린 풍경 속 다정한 공간이 주는 안락함과 작가님들이 애정 하는 물건들, 그리고 그 물건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담은 글을 차분히 읽어가는 그 시간은 평화 그 자체였다. 나는 이렇게 책뿐만 아니라 책을 통해 알게 된 다양한 전시회나 독립서점, 영화 등을 깊숙하게 알아가는 과정도 좋아한다.
저자, 번역자, 편집자, 논술 교사, 독서 모임 강사 등 텍스트와 관련한 여러 가지 일을 오래도록 섭렵하면서 단련된 독서가 김이경 작가는 <책 먹는 법>에서 "책은 내가 아는 세상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며 내가 당연시하는 일상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끊임없이 일깨워준다"라고 말한다. 특히 문학에 대한 그녀의 말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우리는 문학을 통해 나와 전혀 다른 존재가 실은 나와 똑같이 사랑하고 고통받고 살고 죽는 존재란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 다른 존재, 다른 세계에 공감하면서, 내 안에 빛과 어둠이 있듯이 타자의 내부에도 빛과 어둠이 있으며, 내가 겹겹의 존재이듯이 타자 또한 한마디로 요약될 수 없는 겹겹의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되지요. 문학이 가진 이 공감의 상상력이야말로 사람을 사람으로 만드는 힘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 이거다. 공감의 상상력!
나는 책의 여러 장르 중에서도 문학을 특히 좋아하는 편이다. 인문서도 좋지만, 문학이 주는 잔잔한 감동과 울림들이 더 좋은 것 같다. 인간관계를 숙제처럼 여기지만, 사람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책은 하나의 통로와 같았다. 타인의 삶을 공감하면서 엿볼 수 있게 해주는 하나의 통로말이다. 엿본다는 표현이 조금 불편하기는 하지만, 누군가의 고유한 삶을 글을 통해 천천히 알아간다는 것은 꽤 감동적인 일이다. 아마도 그래서 책을 읽고, 책과 관련된 콘텐츠를 경험하는 일은 나의 삶에 소중한 자양분이자 평생의 취미로 계속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