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小小하지 아니한 즐거움]
지난 일요일 오후,
사람이 별로 많지 않은, 집으로 가는 지하철을 탔어요.
긴 자리마다 한두 자리씩은 빈자리가 있었고,
제일 좋아하는 문 옆 끝 자리에 안고 보니,
옆자리에 볼이 발그레한 여학생 두 명이 소곤소곤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재밌게 하는지..
지하철에선 항상, 노래를 듣곤 하는데,
간혹 들리는 이 아이들의 대화 속 단어들이 참 이쁘더라고요.
그 또래들의 거친 단어와 욕들이 안 들리기도 하고, 세상 신나는 둘 만의 얘기가 살짝 궁금해져서,
듣던 노래를 잠시 멈추었습니다.
'고3이 되면...'이라고 말하는 걸 보니, 고1이나 고2쯤.
'아까 교회에서...'라고 말하는 걸 보니, 교회에 다녀오는 길 인가 봐요.
바로 제 옆에 앉은 아이가 이야기를 주도하고,
그 옆에 앉은 친구는 귀 기울여 들어주고 두 손뼉을 쳐 가며 응답하고 있었어요.
'아이고 좋을 때다...'라는 소리를 제가 할 날이 오다니...
아주 조용히, 눈치채지 못하게, 조용히 귀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교회에서 뭘 놓고 왔고, 이따 집에 가서 뭘 할 거고... 소소한 일상 이야기 끝에,
어느새 제 옆에 앉은 아이의 '짝사랑' 이야기가 시작되네요.
들으면 안 될 것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꼭 들어줘야 할 것처럼. 이 아이는 세상 신나 있고 설레 보였습니다.
생각도 못했던 사람한테 고백을 받았대요.
근데 자기는 그 사람은 싫대요. '그 오빠'가 너무 좋아서, 그 사람의 고백을 받아줄 수 없대요.
'그 오빠'에 대한 마음은,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감정 이래요.
태어나서 처음. 십몇 년 만에 느껴보는 '첫' 감정 이라니.. 너무 멋지지 않나요?
저는 지금 한 아이의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우연히 듣게 되는, 역사적인 순간을 맞이한 거예요!
'그 오빠'가 자기한테 어떤 마음인지 너무 궁금한데.. 아마도 좋아하진 않는 것 같다고 해요.
친구가 힘을 불어넣어 주네요. 자기가 옆에서 보기엔, '그 오빠' 도 너한테 마음 있는 것 같다고.
'아닐 거야..'라고 말하는 아이는 살포시 웃고 있네요.
'그 오빠' 한테 톡을 보냈는데, 몇 시간 만에 답이 왔고, 그에 대한 답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친구가 또 힘을 불어넣어 줘요. 빨리 대답하라고.
근데 이 아이는, 그 대답조차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거예요. 그만큼이나 좋은 거예요.
사실 처음엔,
'아이고 좋을 때다...' 라며 마냥 귀여웠거든요.
그때 아니면 느끼지 못할 풋풋한 그 감정에, 이모님 미소 보내며 가벼이 듣고 있었어요.
'언젠가 돌이켜 보면, 천장을 향해 하이킥 할' 어린 시절의 풋사랑.이라고,
귀엽게 그리고 가벼이 생각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아이의 한 마디에, 가벼이 듣고 있던 제가 참 많이 미안해졌습니다.
이라고 표현할 말을 찾더니,
그 사람이, 흉터로 남았으면 좋겠다고 하네요.
지금 이 순간만큼.
그 아이에게, '그 오빠'는 그렇게나 간절한 거예요.
어리다고 해서, 그 누구도 가벼이 여길 수 없는, 그 아이 만의 '첫사랑'인 거예요.
훗날, 이 아이는 자기가 했던 말을 기억할까요?
아니... 사랑했던 그 감정을 기억할까요?
어떤 식으로든, 참 소중한 감정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그때, 그 사람에게만 받을 수 있는 그 떨림과 설렘을, 소중히 기억하기를 바래요.
앞서 내리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며, 들릴 리 없는 저만의 응원을 보냈습니다.
'몰래 엿들어서 미안해. 그렇지만 세상에, 너의 '그 오빠'를 향한 마음에 응원을 보내는 사람이 한 명 정도는 늘었다고 생각해줘. 마음껏 좋아하고, 부디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어. 다만... 흉터로 까지 남기지는 말자. 지금보다 더 떨리는 사람을 분명히 만날 거야. 그 누군가를 위해, 정말 소중한 네 마음은 남겨두기로 하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카톡 몇 시간 만에 답장하고, 세상에서 제일 멋있어서 한 아이가 흉터로 까지 남기고 싶어 하는, 그 오빠!
애매하게 마음의 여지 주지 말고,
말 예쁘게 하는 이 아이 진심 좀 보아주고,
어느 한 사람의 '첫사랑'의 상대가 된 것에 감사해하며,
그리고 부디...
이 아이의 첫사랑이 아름답게 끝날 수 있게, 지금처럼 멋있는 모습만 보여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