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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orygallery Jun 27. 2017

#3. 그래, 이런 바람이 불었어.

[일상 이야기: 小小하지 아니한 즐거움]

2016년 2월 8일, 눈이나 비가 온다고 했지만 애매한 바람만 불던 날. 

집에 돌아오는 길. 바람이 불었고, 생각이 났어요. 


‘그래, 이런 바람이었어.’ 


[사진출처: photopin]


누구에게나 있을 첫사랑을 꽤 지독히도 또 강렬하게도 앓았던 그 겨울.     


새내기라는 특별한 계급을 달고, 모든 게 설레었던 캠퍼스에서 뭣도 없는 그대에게 첫눈에 반했던 그 밤도,   

반한 그 날, 참 멋진 언니와 연애 중이라는 이야기에 마음 무너졌고 고이 접어야 했던 그 밤도,   

참 멋졌던 언니와 그대 헤어졌던 소식에, 안쓰러운 마음보다 내게 찾아온 행운이 먼저였던 어렸던 그 밤도,  

지독한 짝사랑에 취해, 단 한번뿐이었던 담배 얻어 피다 동기한테 머리를 쌔게 맞고 눈물이 났던 그 밤도,   

한참 전에 끝난 수업, 괜스레 동방이며 공대며… 그대 동선 밟으며 우연을 바랐던 그 밤도,   

나를 봐주지 않던 그대를 향해 나 좀 봐 달라고 악을 썼던 그 밤도,   

어렵사리 함께 하게 되어 손을 잡고 걸었던, 그것만으로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좋았던 그 밤도,   

집 앞 가로등 밑에서 무슨 정신 인지 모를 첫 키스를 하고 주저앉아 버렸던 그 밤도,   

한데 어울려 놀기 좋아하는 그대 덕에, 모두 취한 숱한 어느 날, 아무도 몰래 손을 잡고 걸었던 그 밤도,   

누가 먼저 얘기하지 않아도, 이별을 예감했던, 그러나 쉬이 서로를 놓지 못해 말없이 손 잡고 걸었던 그 밤도,   

그리고, 어렵게 나를 놓던 그대의 손을 그러쥐던 그 밤도, 


이런 바람이 불었어요.


한 겨울이지만, 봄바람 기운이 살며시 스며든, 그러나 꽤 날카롭던 바람. 

마치, 서툴고 날카롭던 나처럼...


누구에게나 첫사랑은 지독하고 강렬하겠지만,

남달랐고 유난스러웠습니다.


이런 바람이 불 때면, 그래도 나쁜 것보다 좋았던 기억들이 떠 오르는 걸 보면, 

그리고 내 마음이 기억하는 그대의 추억들이 아련히 떠 오르는 걸 보면, 

우리, 아주 많이 사랑했나 봐요. 


아주 많이 사랑하기에 너무 어렸지만,

그리고 우린 너무 많이 멀어지고 나이 들어 버렸지만,

여전히 불어오는 바람에도 그대를 떠 올릴 만큼, 나는 그대를 아주 많이 사랑했어요.


실려온 그 바람결에, 그대 안부 물어봅니다. 


"잘 살고 있어요? 혼자 힘들어지는 그 병은 안 도졌기를 바래요. 

내 첫사랑. 행복하길 바라요.


누군가의 남편, 누군가의 아빠가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나는 그대가 결혼한 걸 몰랐으면 좋겠어요. 

못내… 내 손을 놓은 그대를, 나는 아직도 원망하고 있어요."


내 첫사랑은, 그때도 지금도, 지독히 이기적 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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