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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orygallery Jul 10. 2017

#8. 그러게... 우린 왜 헤어졌을까?

[일상 이야기: 小小하지 아니한 즐거움]

술병이 차곡차곡 쌓여 갔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취해 갑니다.


십여 년의 세월을 지나, 같이 늙고 있는 대학 선배들과의 술자리는 늘, 정겨워요.

정겨운만큼, 위험해져요.  


이들만 만나면, 서른일곱의 꼬장꼬장한 여자는 어디로 가고, 스무 살의 말랑말랑한 내가 나와서는... 무장해제. 술도 술술 들어가고, 서로 업어 키웠다고 목소리 높이는 선배들 앞에서 마냥, 어린애가 되고 말아요.  


스무 살에서 십칠 년 멀어진 현재를 살고 있지만,

그들 앞에서 저는, 여전히, '스무 살'입니다.


[사진출처: pexels]


그날도, 선배들 앞에서 어김없이 스무 살이 된 나는, 마냥 해맑았어요.


한 모금씩 마시던 맥주잔은 어느새 소주잔으로 바뀌어 있고...

'야 그때 네가 그랬잖아...'라는 서로의 기억 속, 철부지 아이들을 꺼냅니다.


하지만 그 안에,  

누구랄 것도 없이 조심하는 그 사람 얘기.
캠퍼스 커플이었던 나와 그 사람의 연애를 너무 잘 아는 선배들...

이미 오래전 끝난 연애는 오히려 담담하게 옛 추억에 묻어 주는 것이, 서로를 위해 더 좋을 텐데.

너무 오래전에 사랑하고, 오래전에 헤어져서 얘기하는 것조차 민망한데 말이죠.


그렇게 다들, 애써 조심하고 피해요.

착한 선배들한테는 미안하지만, 좀 불편한 배려를 받곤 합니다.


소주병이 3병쯤 쌓였을 때 즈음.

눈에 다 보이고, 신경 쓰이게...

무척 아무렇지 않은 척. 툭 내뱉으려 노력한 흔적이 여실한...

제일 순하고 착했던 한 선배가 물어 옵니다.


“그런데, 하나만 물어보자. 너희는 대체 왜 헤어 진 거야?”


우리가 헤어진 게, 강산이 변하고도 남은 시간만큼, 아주 오래전 이야기이고.

그러니까, 그렇게 오래전에 헤어진 우리에게, '아직도' 헤어진 이유를 물어 오네요.


평소라면, 엄청 타박하며, 화제를 돌렸을 거예요.

그럼 선배들은 멋쩍어하며, 웃어넘겼을 거고요.


그런데 그날은, 왜 였을까요...

 

“그러게, 우린… 왜 헤어졌을까?”


라는 대답이 툭... 나와 버렸어요.  

당신들도 모르는 그 이유를, 나도 모르겠거든요.


너무 좋아했던, 유난스러운 연애였어요.

주위 사람들이 내 감정 하나하나를 다 들춰 볼 만큼, 나는 애절했어요.


그런데,

정작 헤어짐은. 그 이유조차 불분명했어요. 왜 헤어졌는지 예전에도, 지금도 잘 모르겠어요.



그 이유를, 한동안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왜 헤어졌는지 잘 모르겠는 그게 바로, 이유였던 거 같아요.  


[사진출처: pexels]


얼마 전, 카페에서 '헤어지는 연인'을 봤어요.

물론 사소함 다툼일 수도 있지만, 그 두 사람을 둘러싼 모든 공기가, 이별을 말하는 것 같았어요.


몇 모금 마시지 않은 두 잔의 커피는 식어가고, 두 사람의 시선은 한 번도 만나질 못해요.

여자는 식어버린 커피잔만 내려다 보고, 남자는 그런 여자에게 닿을 리 없는 시선과 애원을 계속 보내요.

그렇게 한참을 가만있더니, 아주 조용히, 여자가 일어서서 나가요.

남자는 그렇게 일어서 나가는 여자를 바라만 봐요.

닫힌 문을 한참 보더니, 이제는 비어버린 여자의 자리를 물끄러미...

 


그들의 헤어짐을 보며, 어렴풋이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 지독하더라도 저렇게 헤어졌어야 한다. 


헤어진 지 한참이 지났음에도, ‘우린 왜 헤어졌을까’라고 묻는 우리는, 헤어지지 못해서... 인 것 같아요.


그랬거든요. 정말로...

길었던 연애의 끝은 너무나 허무했어요.

서로 이유도 묻지 못한 채, 헤어지는 그 '이별'을 겪지 못한 채, 서로의 일상으로 돌아갔어요.


만남, 그리고 사랑이 있다면,

그 끝을 맺는 '헤어짐' 도 있어야 하는데, 우린 그 마지막 끝을 맺지 못했어요.



이제는, 선배들에게 대답해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왜 헤어졌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는 건, 정말 왜 헤어진 건지 몰라서... 인 것 같아. 다시 그때로 돌아가서 제대로 헤어지고 오고 싶다. 그랬어야 그 긴 시간 서로 미련을 안 떨었지.."


원래 다들, 첫사랑은 유난스럽게 미련하고 뭐 그런 거 아닌가요?

물론. 이렇게 긴 시간 유난스러운 건, 좀 그렇긴 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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