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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하LeeHa Sep 25. 2019

내 마음 속 눈물. 제거해도 될까요?

운다고 달라질 일 아무것도 없겠지만


지난여름 제가 사는 곳에서는 비가 내리지 않아 봄 가뭄에 이어 마른장마까지 왔다는 이야기가 많았어요. 비가 내리지 않아 농사짓는 분들의 마음고생이 심하다고 들었죠. 


비가 많이 올 때는 많이 와서 걱정 적게 올 때는 적게 와서 걱정. 적당하게 오면 정말 좋을 텐데 말입니다. 비의 양에 따라 가뭄이 들고 홍수가 나는 것처럼 우리의 감정도 그런 것 같습니다. 차오르다가 넘쳐 버리고 메마르다가 바닥을 보이게 되는 때가 있지요.


가슴속에 슬픔의 비가 내리는 날은 한없이 우울해서 가라앉게 됩니다. 몸 자체가 솜뭉치가 된 것 마냥 무겁고 쳐져서 일으켜 세울 수 조차 없을 때도 있어요.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바닥과 저의 몸이 하나 됨의 경계를 넘어버려요. 그때부터는 누인 몸이 바닥으로 스며들어 땅끝 어딘지도 모를 그곳을 향해 꺼져 버릴 것만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내 안의 차오르는 슬픔이 흘러넘치지 않으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해결책을 찾으려 질문을 해보지만 자신이 느끼는 감정에 필요 이상으로 몰입하고 있으면 거기에서 빠져나오기가 참 어려워요. 슬프면서도 우울하고 아프면서도 분한 감정들은 물기를 가득 머금고 있기 때문이죠.  


몇 년 전 제가 제 감정을 다스리는데 능숙하지 못해서 마음속이 날마다 홍수 난 것처럼 슬픔으로 채워지던 때가 있었어요. 그땐 울어도 울어도 눈물이 그치지 않더라고요. 여름이었는데요. 우니까 더 더웠던 것 같기도 하고, 울며 지내다 보니 더운 줄 몰랐던 것 같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그 시간들을 지나고 나니까 온도에 대한 느낌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아요. 덥고 안 덥고는 저한테 중요한 게 아니었으니까요. 오직 많이 울었다는 기억만 있었을 뿐입니다.


그 당시 수박을 일부러 안 먹었어요. 그렇게 물기 많은 과일을 먹으면 그 물기까지 눈물로 쏟아내게 될까 봐 싫더라고요. 저에게도 그렇게 제 자신을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힘들고 아픈 시기가 있었답니다.


그 후부터는 수박 사는데 주저함이 없습니다. 먹기도 잘 먹고요. 지난여름 수박을 몇 통씩이나 먹었어요. 저는 수박을 사 오면 껍질을 전부 잘라서 통에 썰어서 보관을 하거든요. 냉장고 속이 복잡해서 크고 둥근 수박이 차지할 공간도 없고요. 껍질 제거한 수박 속만 편하게 먹고 싶기도 하고요.


그런데 사온 수박이 유난히 껍질이 두껍더군요. 음식물 봉투 2리터짜리 5개가 있어도 모자랄 지경이었어요. 게다가 물기는 어찌나 많던지요. 그냥 버릴 수는 없을 것 같아서 이런 방법을 썼습니다. 다 본 신문을 두껍게 깔고요. 그 위에 수박 껍질을 차곡차곡 엎어 놓은 거예요.

 




신문이 물기를 빨아들이면서 수박껍질의 부피가 조금 줄더군요. 수박 껍질이 과자처럼 바삭해지거나 참외 껍질처럼 얄팍해지는 드라마틱한 변화 같은 건 결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저 원래의 넘치는 수분이 다 사그라든 정도였어요.


그런데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그 정도만 되어도 꽤 괜찮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일단 수박껍질 어디에서도 물 한 방울 떨어지지 않았고요. 강력하고 딱딱하던 껍질도 신문에 수분을 빼앗기고 났더니 유연해져 있었습니다.


대신 신문은 축축하게 젖어서 묵직하게 변해 있었는데요. 그 모습을 보니 신문이 수박의 슬픔을 함께 나눴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함께 한다는 것은 무엇이든 나눈다는 것이고 나눈 것을 기꺼이 짊어진다는 것이니까요.


물론 수박은 절대 슬픈 일 따위는 없다고 주장할 테지만요. 신문과 수박을 본 순간 제가 한 생각은 그랬습니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그래도 같이 울면 덜 창피하고

조금 힘도 되고 그러겠습니다.


박준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중에서





작년에 에어드레서를 하나 사서 옷방에 넣어 놨는데요. 옷의 먼지를 제거해 주는 기능 말고 제습 기능도 있더군요. 어쩌다 한 번씩 붙박이장의 모든 문을 열고 제습을 하면요. 설정한 4시간이 채 되지 않았는데 신호음이 울릴 때가 있어요.  무슨 일인가 달려가 보면 물통의 물을 비우라는 안내 표지가 떠 있습니다.


그 사이 물통 한가득 물이 차 있어요. 도대체 이 많은 물은 어디로부터 온 것일까요? 옷일까요? 이불일까요? 아니면 사람에게서 일까요?  단순히 날이 습해서 비가 와서 집안 전체가 물기를 머금은 것일 수도 있어요. 그런데 가끔씩은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옷들이, 이불들이, 우리 집 전체가 우리의 고단함과 우리의 슬픔을 함께 나눠 가졌던 것은 아닐까? 우리 안의 습기를 우리와 함께 하는 공간들이, 물건들이 분담해서 짊어져 주려고 손 내밀 었던 건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끊임없이 가득 차오르는 물통 속의 물은 어디로부터 온 것일까?


에어드레서 물통에서 물을 비우면서 생각합니다. 제 안의 습기도 제거하며 살아가야겠다고.  적절하게 적당한 때에 슬픔이 지나치게 차오르지 않도록 감정을 다스리고 생각을 정리하며 살아보려 합니다.


흐르는 세월이 가져가 준 무던함은 제게 큰 선물입니다.



사는 게  낯설지?  

또 힘들지?

다행스러운 것이 있다면 나이가 든다는 사실이야.

나이가 든다고 해서

삶이 나를 가만두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스스로를  못살게 굴거나

심하게 다그치는 일은 잘하지 않게 돼.  


박준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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