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갈 일이 있어서 아침부터 집을 나섰다. 집 앞에서 순환 버스를 타고 10분쯤 가면 광역버스 정류장이 나온다. 순환 버스 도착 시간이 좀 남았길래 계단부터 먼저 올랐다. (운동대신 매일 계단을 오르는 중) 외출하고 돌아올 때 집이 있는 20층까지 계단오르기는 힘들다. 그래서 외출하는 날은 먼저 계단을 오르고 버스를 탄다. 그것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인데 그래도 고생 먼저 하는 쪽을 택한다.
그런데 시간 계산을 잘못하는 바람에 코앞에서 순환 버스를 놓치고 말았다. 다음 버스는 20분 후에나 올 예정이란다. 20분을 정류장에서 기다리느니 그냥 걷기로 마음 먹었다. 집앞 산책로를 따라서 한참 걷다보면 광역버스 정류장이 나온다.
작년 가을 무렵 집 앞 산책로에 나무를 더 심고 공사를 해도 본척만척 관심도 두지 않았다. 그 사이 테이블과 의자도 생겼고 그네의자도 가져다 놓은 것을 나만 몰랐나 보다. 꽃도 예뻤고 두 갈래의 산책로 중 마음 내키는 대로 아무 곳으로나 걸을 수 있는 점도 반가웠다.
집 앞의 산책로가 이렇게 좋은 줄도 모르고 어디 먼 공원만 가려고 했다니. 늘 가진 것에 감사할 줄 모르고 더 좋은 다른 것을 찾아 헤매다 지치는 꼴 같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코 앞에서 버스를 놓칠 때는 '에고, 아깝다' 생각했는데 막상 산책로를 걷다 보니 봄 기운 제대로 느껴 보라고 놓쳤던 거네 싶었다. 달리는 버스 차창 밖으로 바라보는 것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생생한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걸었다.
나쁜 일이 끝내 나쁜 것만도 아니고 좋은 일이 끝끝내 좋기만 한 것도 아니라는 걸 인생 구비구비에서 느끼며 생활 속에서도 이렇게 마주하게 된다.
살다보면 인생의 명암은 늘 있게 마련이고 서 있는 그자리에서도 항상 빛과 그림자가 공존한다. 좋아도 너무 좋다 말고, 슬퍼도 너무 슬퍼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인생 한치 앞을 모르는 게 우리들이니까. 마음을 조금 더 내려 놓으며 가볍게 살아야겠다고 다짐도 해본다.
20분쯤 꽃 구경, 하늘 구경, 나무 구경을 하다가 광역버스 정류장에 도착할 즈음. 약올리듯 내 코 앞에서 광역버스 역시 지나가버렸다. 하는 수 없이 벤치에 앉아 다음 버스를 기다렸다. 그 사이 딱히 할 일 없던 나는두리번거리다가 내 발을 들여다 보았다.
그러다가 뭔가 발견했다. 신발이 이상했다. 자세히 보니 신발 뒤축이 터져버린 거였다. 웃음이 났다.
신발 뒤축 갈라진 것 보고 급당황.
버스를 놓치지 않았으면 벤치에 앉아서 내 발 구경을 안 했을 것이고, 그랬으면 신발 뒤축 갈라진 것도 모른채 하루 종일 돌아다닐 뻔 했다.
그나저나 뭘 그리 바쁘고 열심히 살았다고 신발 뒤축이 갈라졌을까?
생각해보니... 이 신발을 신고 200일 넘게 매일같이 계단을 올랐고 여기저기 잘 걸어다녔다. 그래, 그동안 부지런히 살았구나.
약속장소 근처 강남역 지하상가에서 운동화 하나를 새로 사서 신었다. 예전같으면 내가 신었던 신발이 불쌍하다고 비닐에 담아 가방 안에 도로 넣어 집으로 돌아왔을거다. (그런 식으로 집에 쓰레기를 모으는 타입)
그러나 이젠 그러지 않는다. 나를 데리고 잘 다녀주고 애써준 신발은 장렬하게 전사했으니 때를 맞춰 보내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게 주인아주머니께 버려 주십사 부탁을 하고 놔두고 왔다.
'안녕, 잘가. 그 동안 고마웠어, 수고했고 애썼다.'
헤어질 때는 깨끗하게. 미적대지 않으며. 지난 시간들을 함께 해줘서 고마웠다고 생각하며 보내주기. 미련이 너무 많으면 내딛는 발걸음이 무거워져서 앞으로 나서는 일에 주저하게 된다.
이제 새 신발을 신고 또 다시 계단도 오르고, 새로운 경험을 하기 위해 이곳저곳 돌아다녀 보려 한다.
한치 앞도 모르는 인생.
신발 뒤축도 모르는 인생.
새 신발이 나를 어떤 새로운 곳으로 이끌지는 모르겠지만 즐겁게 다녀볼 생각이다. 시작하는 마음으로 또다시 신발 뒤축이 터질 때까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