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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하LeeHa Jun 04. 2020

탈락. 거절. 비승인 3종 세트. 그 후 한 달

결실맺지 못한 노력도 헛된 것만은 아니다.

정확히 한 달 전 오늘. 이 시각 즈음. 내게 탈락, 거절, 비승인 소식이 줄줄이 날아들었다. 긴 시간 동안 정성을 들여 준비했던 기획서, 동화원고, 전자책의 결과였다.


그것들은 나 몰래 의논이라도 하고 결정한 듯 그날 그 시각. 앞서거니 뒤서거니 동반 소식을 전해왔다. "야!!! 너 실력 안되면 글 그만 써!!!"라는 본심을 제대로 전하고 싶었나 보다. 세트로 시간차를 주지 않고 동시에 충격을 줘야만 '말 들어 먹을 인간이야'란 뜻도 포함된 듯했다.


그러나 어쩌나?  오랜 기간 나는 거절에 익숙한 체질로 바뀌어 버렸고 비난이나 외면도 내 몫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라면 마땅히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딱 그만큼 나이를 먹어버렸다.


나잇값이 통장에 든 적금처럼 든든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내게 일어난 일들을 더 이상 지나치게 부풀려 생각하지 않을 때, 실망스러운 순간을 두고두고 곱씹지 않을 때, 대신 사소한 감사거리는 오래 기억해 보려 더듬거릴 때. 나는 내가 겪어온 세월들이 나의 든든한 아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래는 딱 한 달 전에 써놓았던 나의 3종 세트 실패담이다.





5월 4일. 내가 오늘 하루에 겪은 일.


1. 작가와 함께 하는 작은 서점 지원 사업 선정 탈락

2. 동화 원고 투고한 출판사로부터 거절

3. 접수해 놓은 전자책 심사 과정에서 비승인


시간 차를 두고 탈락, 거절, 비승인 소식을 차례차례 들었다. 이렇게 세트로 우울한 소식을 몰아 듣는 것도 특별한 일인 것 같아서 기록으로 남겨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3주 전부터 세 가지 일들을 동시에 하느라 무척 바빴다. 우선 한국 작가회의에서 진행하는 '작가와 함께 하는 작은 서점 지원 사업'에 신청할 마음으로 동네 서점들을 섭외하고 다양한 문학 프로그램을 기획하여 사업계획서를 만들어야 했다.


여기서 잠깐. 한국 작가회의는 문학의 위상을 높이고 문학인의 권익과 복지를 지키는 일을 하는 문인들의 단체라는 것을 밝힌다.


 '작가와 함께 하는 작은 서점 지원 사업'은 경영이 어려운 작은 서점들에 문학작가 한 명을 상주시키면서 다른 작가들 20여 명이 돌아가며 강연을 할 수 있도록 경제적으로 지원을 해주는 사업을 말한다. 서점과 작가들에게 7개월간 4000만 원 가까운 자금을 지원해주는 규모가 꽤 큰 프로그램인 셈이다.


'작은 서점 지원 사업'은 매력적인 프로그램이 분명한데 경쟁률은 그다지 높지 않다. 지원자가 많지 않은 이유를 내 나름대로 분석을 해 본 결과. 사업 계획서를 쓰는 일이 만만치 않기 때문 같다.


'거점 서점'(주력 서점) 한 곳에는 상주 작가가 7개월간 머물면서 문학 관련 프로그램 10 여개를 운영해야 하고, '작은 서점' 두 곳에는 20여 명의 파견 작가를 2주에 한번 꼴로 강연할 수 있도록 모두 섭외하고 프로그램과 일정 조율 등을 해야 한다. 그 모든 것을 누가 해야 할까? 바로 서점에 상주하는 작가, 즉 사업계획서를 쓰는 작가가 다 해야 한다.


사업계획서 20페이지에 동네 서점을 살리기 위한 문학프로그램을 빼곡하게 작성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 전국의 서점들을 대상으로 단 20곳만 선정을 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프로그램을 구성하여 서점과 작가가 한 마음으로 진행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서점의 매출 및 문화 사업 진행 실적 등도 모두 첨부해야 하는 품이 많이 드는 작업이다. 서점 세 곳의 대표님들과 메일을 주고받고 만나기도 하면서 의견을 나눴고 3주간 나는 사업계획서를 숱하게 수정했다. 하나를 고치면 줄줄이 앞 뒤로 다 고쳐야 하는 상황이 나타나기도 했다.


이 사업계획서를 쓰는 와중에 기존에 써놓았던 동화 원고를 여러 번 수정하여 투고했고, 이웃 블로거 클레오님의 주도로 전자책 만들기 3주 과정에도 참여했다. (힘들어서 콧속이 헐었다)


그렇게 힘들였던 세 가지 과정의 결과를 오늘 차례대로 들었다. 탈락, 거절, 비승인. 3종 세트. 그런데도 크게 실망을 하지 않는 것을 보니 나는 스스로가 애썼던 순간들에 나름 만족을 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친한 작가님이 '작은 서점 지원 사업'에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축하 문자를 보내고 통화도 했다. 진심으로 축하의 말을 건넬 수 있었다.


내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동안 내 나름의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왔기 때문이다. 내 능력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 내가 탈락한 것은 내가 게으르거나 정성이 없어서였다기 보다 선정된 다른 작가님들의 역량이 나보다 훨씬 뛰어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속상하기보다는 평상시 나의 마음 상태로 곧바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 같다.


<88연승의 비밀>의 저자인 명감독 존 우든은 '성공은 여정 자체에서 찾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에게 가장 중요하고 오랜 시간 만족감을 주는 건 오직 경기를 위해 계획하고 준비하고 연습하고 실행했던 순간이었다는 거다. 승리와 패배란 오직 노력의 부산물일 뿐이라던 그의 말이 기억난다. 과정이 만족스럽다면 결과에 크게 좌우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으로. 나는 그렇게 이해했다.


선수로서도 감독으로서도 더할 나위 없이 성공한 존 우든 감독이기에 나는 그가 '성공'에 대한 집착이 클 것이라 짐작하곤 했었다. 그러나  계획하고 준비하고 연습하며 실행했던 순간이 승리나 패배의 부산물들 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그의 이야기가 어떤 의미인지 이제는 알 것 같다.


나는 지원 사업 선정에서 탈락했고. 나의 원고는 거절당했고, 내 전자책은 비승인이 되어버렸다. 그 모든 것들을 준비하는 과정은 무척이나 힘들었지만 새겨볼수록 소중한 경험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결과가 예상 밖으로 좋지 않다고 해도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어차피 나는 또 다른 일들을 내 방식대로 조금씩 다시 시작할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또한 지금은 배트를 휘두르는 시간이라는 것을 안다. 안타 하나 만들어 내기가 어디 그리 쉬울까?  


삼진에, 헛스윙에, 내야 땅볼에, 파울까지. 나는 그 모든 것들을 줄줄이 겪어내는 중이다. 언젠가 만들어 낼지도 모르는 단 하나의 안타를 기다리면서 말이다.


새로 시작해 보려 한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지 간에...









 

그 후 한 달이 지나는 사이.  

나에게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1. 지원 사업에서 탈락한 나는 '서점 상주 작가'에 선정되신 다른 작가님의 사업을 내 블로그에 대신 홍보하며 참가자들을 모았다. 그리고 작가님과 참가자들을 연결시켜서 글쓰기 수업을 하실 수 있도록 도왔다.


훌륭한 작가님인지라 그 좋은 무료 수업에 많은 분들이 함께 참여했으면 하는 순수한 바램에서였다. 참가자들의 호응도가 너무 높아서 양쪽 모두에게 감사인사를 받았다. 예상치 못한 감사인사에 나도 감사하다고 말씀드렸다.  



2. 거절된 동화 대신 다른 동화의 초고를 새롭게 쓰려 결심했다. 다른 동화의 시놉을 위해 인터뷰도 했고 자료도 찾았고 구성도 해보았다. 시놉을 몇 번씩 썼다가 엎고 고쳐 쓰고 다시 새로 쓰고 버리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만든 시놉을 다른 출판사에 보냈다. 이번에는 계약을 하자는 연락이 바로 왔고 지금은 새 동화 원고를 쓰는 중이다.



3. 전자책은 한 군데 사이트에 승인이 되었으나 나의 생각하는 바와 달라서 접을 예정이다. 전자책을 만드는 과정은 너무 훌륭했으나 나의 컨텐츠가 부족했다.


유료 전자책 플랫폼 프립, 크몽, 탈잉 등에는 실용적인 책들이 주를 이룬다. 나의 컨텐츠는 아무리 봐도 실용적이지 않을 뿐더러...전자책으로 유료 판매를 할 경우 블로그에 올렸던 글들을 비공개로 돌려야 한다는 점이 못내 아쉬웠다. 전자책 만드는 방법을 익힌 것, 새로운 경험을 해 본 사실에 만족하기로 했다.



한 달. 단 30일만 지났을 뿐인데도 그때와는 전혀 다른 상황들이 내 앞에 펼쳐졌다. 그러니 석 달 후, 1년 후, 3년 후, 10년 후에는 참 많은 것들이 바뀌어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우리가 지금 겪는 불안, 실망, 걱정, 분노나 원망 같은 것들을 조금은 다르게 해석할 수 있으며 때론 가볍게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어차피 시간은 흐르고 현재의 일은 과거로 넘어가게 되어있다. 현재가 내게 힘을 주는 과거로 잘 넘어가 자리잡기 위해서는 오늘 이 순간 조금 더 긍정적으로 즐겁게 사는 방식을 택해야겠다고 생각해 본다.


그렇게 현재를 잘 보듬으며 과거로 보내고, 나는 미지의 미래를 가슴 설레며 맞이하고 싶다. 그렇게 재미나게 살다가 만나게 될 미래의 어느 날은 지금보다 더 행복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나는 여전히 헛방망이질을 하며 숱한 시간을 보내겠지만. 그래도 싫지 않다. 내 노력이 늘 결실을 맺을 수 없다는 사실도 알지만 헛되기만 한 것도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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