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하LeeHa Jun 07. 2020

카톡 제사에서 아버지를 만나다


22년간  아버지 제사를 집에서 지내왔다. 친정에서 지내던 제사를 외아들인 오빠가 가지고 가서 지낸지는 이제 10년쯤 된다.


엄마는 아들 며느리가 제사 음식 만들며 고생하는 것을 원치 않아 했다. 그래서 아버지 영가천도를 지낸 절에서 기일마다 모일 것을 이야기했지만 오빠가 펄쩍 뛰며 반대를 하고 나섰다. 그러면서 본인이 직접 제사 음식도 다 준비를 할 거라고 말하곤 했다.


우리는 딸 셋에 아들 하나 4남매인데 어찌 된 노릇인지 딸들은 요리 실력이 별로이고 아들인 오빠가 요리든 살림이든 더 잘 한다. 장도 잘 보고 물건 고르는 안목도 좋고 정리 정돈이며 설거지까지 못하는 게 없다.  


오빠는 아버지 기일에 맞춰 음식 준비를 한다며 전날 휴가까지 내고 하루 종일 전도 부치는 사람이다. 김장할 때도 큰언니나 나처럼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보조인력과는 차원이 다른 솜씨를 발휘한다.


새언니와 둘이서 음식 준비를 하는 것이 고된 일일 텐데 오빠는 아버지 제사만큼은 본인이 계속할 거라며 주장을 한다. 하지만 엄마는 며느리 고생 시키는 것 같아서 마음이 불편하신가 보다.


어쨌든 오빠는 아버지 제사 외에도 지방에 묘사를 가는 것이며 집안 어른들 산소 벌초며 모든 행사에 빠지지 않는다. 나 같으면 귀찮아서라도 하지 않거나 어쩌다 한 두 번쯤은 빠질 텐데 오빠는 어떤 변명도 없이 그저 묵묵히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 일들을 해낸다.


그래서 이번 아버지 기일에도 우리는 모두 예년처럼 오빠집에서 모이게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엄마가 한 말씀하셨다. 이번 제사에는 오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엄마도 참석하지 않을거라고 하셨다.


오빠의 맏딸. 조카가 고3인데 최근 다시 학교를 가게 되었다. 그러면서 아이들 사이에서 가장 걱정하는 일 중 하나가 바로 <자신이 코로나에 걸려 전파자가 되면 어쩌나?>하는 것이라고 했다. 고3 아이들의 두려움에는 코로나에 걸려 대입시험을 망치는 것과 더불어 다른 친구들에게 전염시킬 경우 감당해야 할 원망의 눈초리까지 모두 포함되어 있는 셈이다.


'쟤가 확진자여서 우리한테 퍼뜨린 거야'라는 인식이 아이들 머릿속에 박혀 버리면 확진자는 왕따 아닌 왕따가 되어버린다. 타인의 날선 시선을 감당할 만큼의 단단한 마음이 그맘때 아이들에게 있을 리 없다. 그런 시선은 어른조차 견디기 힘든 것이니까 말이다.


엄마와 언니들 모두 돌아가신 아버지 기일보다 조카의 마음 편한 게 우선이라는 생각에 뜻을 같이 했다. 타 지역에 사는 일가친척을 만남으로써 자꾸만 위험에 노출되는 확률을 높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병에 걸리는 것도 끔찍하지만 혹시라도 그 병에 걸려서 주변으로부터 내침을 당해 이중 삼중고를 겪게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엄마는 나에게도 늘 말씀하신다. 어린아이를 둔 사람들과의 만남은 가급적 더 미루라고. 만에 하나 우리들의 사소한 부주의로 학교에 가는 어린아이들에게 병을 옮겨 그 후에도 계속 이어질 학교생활까지 힘들게 하면 어쩌냐고. 노파심에 하시는 말씀이지만 일리가 있는 까닭에 나 역시 모든 약속을 연기했다.


오빠가 카톡방에 사진을 찍어 올리며 제사 시작을 알려왔다. 나는 그 사진을 다운로드해 확대해놓고 오빠가 제사 지내는 시각. 우리 집 거실에서 같은 마음으로 아버지께 절을 했다.






'아버지 죄송해요. 내년 제사에는 꼭 참석할게요.'


이태원발, 쿠팡발 코로나 확진자 수가 증가하는 까닭에 겨우 재개되었던 도서관 운영에 또 다시 중단 조치가 내려졌다. 우리 지역에서 신분을 속인 학원 강사가 택시까지 타고 여러군데를 다닌 적이 있었다. 당시 택시 동선을 알려주는 문자가 쉴틈없이 왔다. 어떤 날은 날아오는 10개씩의 안전 안내 문자 모음을 보며 안전 대신 불안에 더 익숙해지면 어쩌나. 불안에 지쳐서 정작 다가온 안전도 못 알아보고 지나쳐 버리는 건 아닌가 걱정되기도 했다.


혼돈의 코로나 시대. 상황과 형편에 맞게 길을 찾아가는 것도 우리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불평과 불만은 적게 대신 감사와 배려의 마음은 가득히. 불안에 잠식당하지 않으면서도 안전은 지킬수 있도록 지혜롭고 현명하게 이 시간들을 극복해 나갔으면 좋겠다. 내년 제사는 가족들이 모두 모여서 아버지를 추억할 수 있도록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탈락. 거절. 비승인 3종 세트. 그 후 한 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