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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하LeeHa May 30. 2021

엽총으로 나비를 잡고 말았다

작은 일은 작게 다룰 것.

딸, 너에게


일요일 아침마다

너는 늦잠을 자느라 모르겠지만

엄마랑 아빠는 일찍 일어난단다.

어린 너는 우리를 이해 못할 거야.

특히 네 아빠를 말이야.


나이 들어가는 아빠는

저녁밥을 먹자마자 졸기 시작해서

동네 초등생들보다도 일찍 잠이 들지.

그러고 나서는 새벽 3-4시에 일어나.

너무 일찍 일어나는 바람에

오전 8시쯤 허기가 지는 모양이야.

그래서 일요일에도

서둘러 아침을 차려야 해.


주말 메뉴로 항상 먹는

칼국수, 잔치국수, 쌀국수,

떡국의 패턴이 지겨워질 때면

우리는 비장의 무기인

감바스 카드를 꺼내 들어.

냉동실에는 냉동 새우와 베이글이

항상 준비되어 있으니

다른 재료는 특별히 필요 없지.

그냥 마늘만 얇게 편을 떠서

새우와 함께 올리브유에 넣고

바글바글 끓여내면 되거든.


거실에 앉아  TV 보며

마늘 꼭지를 따려는데

칼을 두고 온 걸 뒤늦게 알았지 뭐야.

주방에 다시 가기 귀찮은 마음에

아빠한테 부탁을 했어.

너도 잘 알겠지만 아빠가

그런 부탁은 잘 들어주잖아.

칼을 만들어 오라는 것도 아니고

가져다 달라는 건데...

그런 건 백번쯤도 할 수 있는 일이지.

(그래야 한다고 굳게 믿지)


소파에 누워 있던 아빠는

흔쾌히 주방으로 향했고

곧이어 엄마 앞에 칼을 '척' 내밀었어.

근데

그게 다른 칼도 아닌

커다란 '식칼'이었단다.

아빠한테는

대상에 따른 칼의 크기를 고려할 마음

같은 게 애초부터 없었던 모양이야.

아빠한테는

세상 모든 칼이 그냥 다 똑같은 칼,

거기서 거기인 칼이었던 거지.


"자기야, 작은 칼을 가져와야죠!!!"

"엉?"

"마늘 꼭지 자르는데 식칼 무섭다."



내 얘기에 아빠는 두 말 않고 과도로 바꿔서

가져다주었어.

아빠가 두 말을 하면

엄마가 세 말을 할 거라는 걸

알고 있어서였을 거야.


너도 알겠지만 엄마 손은

'자라다 말았다'라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작잖아.

초등학생 4학년의 손 크기만 할까?

손이 작다 보니 뭐든

작고 귀엽고 앙증맞은 것을 선호하지.

부피 큰 것들은

손안에 들어오지도 않아서 별로야.


엄마는 음식을 만들 때도

소꿉놀이하듯

동그란 유리도마 위에서

작은 칼로 재료를 썬단다.

그 모습이 마치

'아장아장' 걷는 아기들의 어설픔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이르면 민망해지곤 해.


어쨌든

평상시에도 작은 칼로 종종 대는 내게

커다란 식칼이 웬 말이니.

게다가 기껏해야 마늘의 머리에 붙은

새끼손톱 반의 반만 한 꼭지를

다듬는 일이었잖아.

과일 깎는 칼이면 충분했지.


물론

식칼로도 마늘 꼭지를 제거할 수는 있어.

손 작은 내가 불편을 감수할 생각이

있었다면 말이야.

그러나 나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어서

아빠에게 다시 부탁했던 거지.


마늘 꼭지와 식칼처럼.

서로 크기와 균형이 맞지 않는 일을

할 때가 있어.

마늘 꼭지에는 과도,

커다란 무에는 식칼.

공식이 있지는 않으나

이렇게 짝을 짓는 게

조금 더 자연스럽고 편해 보이지 않니?!


작은 일을 크고 심각하게 다루면

생각하지 못한 후유증에 시달릴 수 있단다.

작은 일,

듣고 흘려보낼 수 있는 일,

한두 번 서운해하다가 털어 버릴 일을

'내 존재 자체에 대한 공격

또는 내 존재의 부정'으로

받아들여 버리는 순간,

그 일과 나 사이의 균형은 깨지고 말지.


식칼 앞에 벌벌 떨고 대기하는

마늘 꼭지 같은 신세가 되어 버리는 거야.

더 이상 작은 일은

작은 일로 머무르지 않고

나의 일상에 타격을 주는

중차대한 문제로 확대되고 마는 거지.

문제는 점점 커져서

그만 내 존재가

잠식당하는 지경에 이르고 말아.


탕탕탕!!!!!


엽총으로 나비를 잡고 말았다!

아니다,

나비를 잡은 게 아니라

나비 뒤에 선 대상을 잡았다.

그리고 대상을 바라보는 나를 잡았다.

잡고 말았다....




딸아,

작은 일은 작게 다룰 줄 알아야 한단다.

작은 일을 크게 다뤄 버리면

일상의 고요는 두 동강 나고

감정의 평화는 산산이 부서져 버려.

감정과 일상을 지키며 나를 지키고,

주변인을 지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일어난 일에 알맞은 크기의

대응법을 익혀야 해.

.

.

.

엄마는 그걸 잘할 줄 몰라서

부서졌던 적이 많았어.

마음이 많이 아팠고 힘들었지.

건강도 잃었고 오랜 시간 고통스러웠어.


'엄마도 못해놓고 딸인 나한테 그런 걸 왜 요구해?'

라고 되물을지도 모르겠다.

나도 못한 것을 설마 너한테 요구하겠니?!

요구나 명령이 아니란다.

그냥 내 마음 다잡는 과정 중에

너에게 한 번쯤은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라서 꺼낸 거야.


후회의 끝에 얻은 깨달음도

지켜나가고 싶어서지.

너와 나, 우리 모두 

마음을 다스려서 

건강하게 살아가길 바라니까.




경쟁에서 패했는가?

웃어넘겨라

속임수에 넘어가 권리를 빼앗겼는가?

웃어넘겨라

사소한 일을 비극으로 확대하지 마라

엽총으로 나비를 잡지 마라

웃어넘겨라


헨리 리더퍼드 엘리엇의 <웃어넘겨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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