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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하LeeHa Nov 16. 2019

글쓰기. 과거 시제만 잘 써도 문장이 가벼워져요.

아이의 일기장을 통해 나의 글쓰기와 삶을 바라본다.


예전에 딸아이에게 '글쓰기'를 가르쳐 볼까 하다가 그만둔 적이 있습니다.


일기장에 쓴 일기나 독서록에 쓴 독후감을 읽었는데 도통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하나하나 가르쳐 보아야겠다는 생각에 접근했다가 딸아이로부터 이런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내 일기인데 엄마가 왜 자꾸 이렇게 쓰라 마라 얘기하는 건데?"

그때 알았어요. '아, 얘는 내가 낳았지만 나랑은 너무나도 다른 존재구나. 함부로 건드렸다가는 큰코다치겠다.'


그렇게 생각해 놓고도 아이의 의사를 묻지 않고 친구 아들과 묶어서 수학 공부방에 보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가서 늘 울다가 오는 겁니다. 하기 싫은 걸 시켰다고 어찌나 울던지 결국 공부방 다닌 지 세 번 만에 관뒀어요.


'그깟 수학 공부가 뭐라고 애가 울면서까지 하기 싫은 공부를 해야 하나?' 생각했죠. 감정 이입이 지나치게 잘 되는 저는 딸아이의 모습을 보고 덩달아 수학이 싫어지면서 불행하다는 느낌까지 들었거든요.


공부방 수학 선생님께서 나머지 금액을 환불해 주신다는데도 죄송스러운 마음에 됐다고 말씀드리고 도망치듯 애를 데리고 나왔습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아이가 수학을 싫어하더니 그 후로 쭉 수학을 싫어하는 아이로 자라났습니다. 싫은 기억이 계속 아이 발목을 잡고 늘어진 거죠.  


당시 저는 여러 가지 실수를 했던 것 같아요. 저희 딸아이처럼 고집이 세고 자신만의 생각이 분명한 아이들은 마음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환경 변화를 부모 뜻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걸 몰랐던 거죠.


수학 공부방에 예고 없이 보내기보다는 긴 시간을 두고  '왜 그 공부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차근차근 알려 주었더라면 거부감이 덜 했을 텐데 말입니다. 저 역시 '엄마 노릇'을 처음 하던 때라 모든 게 서툴렀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후 3년쯤 지나 6학년이 되어서 아이가 일기장에 써 놓은 글을 봤어요.


*나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수학 공부방을 울면서 다녔었다. 그 후에 미술학원도 울면서 다녔었다. 나는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하면 나도 모르게 자꾸만 눈물이 나왔었다.



아이 입장에서는 오래전 '과거'라는 생각에 '다녔다'를 '다녔었다' '나왔다'를 '나왔었다'로 표현을 한 거죠.


그런데  '다녔다' '나왔다'로 표현해도 지난 시절에 대한 표현으로 충분합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라는 과거를 나타내 주는 단서가 앞에 있으니까요.



**나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수학 공부방을 울면서 다녔다. 그 후에 미술학원도 울면서 다녔다. 나는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하면 나도 모르게 자꾸만 눈물이 나왔다. 



'-었' 하나 뺐을 뿐인데 훨씬 문장이 가볍고 매끄러워 보입니다.


오래전 제가 일기를 쓸 때도 과거의 일임을 드러내기 위해서 '아빠가 선물을 사 오셨다'에서 만족을 못 하고 '아빠가 선물을 사 오셨었었다.'라고 표현을 한 적이 있거든요. '-었'을 무려 두 번이나 넣었습니다.  그 기억이 퍼뜩 떠오르더군요. 어릴 때는 뭔가 끊임없이 첨가하는 게 더 멋져 보이곤 했던 거죠.





그러나 살다 보면 뺄 것 빼고 가볍고 담백한 것이 좋다는 사실을 서서히 알게 되지요. 덜어내어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경쾌하게 움직이다 보면 삶도 글쓰기도 보다 쉬워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과거'를 떠올리며 글을 쓰실 때는 문장을 자연스럽게 해 줄 '과거 시제'에 조금 신경을 써 보시면 어떨까요? 굳이 지난 과거를 그렇게 무겁게 만들어서 이고 지고 끌고 다닐 필요는 없지 않나 싶어요.


(오후에 딸아이 독서노트를 들추다가 턱턱 걸리는 문장들을 만나다 보니 갑자기 포스팅이 글쓰기 이야기로 이렇게 바뀌고 말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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