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정 Aug 11. 2022

#1 박선아

어쩌면 우리 모두의 이야기


 남편의 퇴근을 기다리며 저녁을 준비하던 선아에게 저장되지 않은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심규정씨 보호자분 되시나요?”

 휴대폰 너머로 들려오는 다급한 목소리들 사이에서 또렷하게 들려오는 것은 남편의 이름이었다.

 “네, 제가 아내인데요.”

 “구급대원입니다. 심규정씨가 지금 교통사고를 당하셔서 한국대병원으로 이송 중이니 보호자분께서 와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몸 안의 모든 장기들이 빠르게 낙하하는 느낌이 들었고 조만간 구토라도 할 것마냥 속이 울렁거렸지만 이상하리만큼 눈물이 나지 않았다. 오히려 선아는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닌 사람처럼 지금 당장 자신이 무엇을 하고 어떤 걸 챙겨서 나가야 할 지 생각했다.

 선아는 27살에 고아가 되었다. 고아가 되던 그 날도 선아는 저녁을 먹던 중 구급대원의 전화를 받았다.

 “박종인, 최영애님 자녀분 되시나요?”

 그 날과 바뀐 것이 있다면 호칭이었다. 선아는 지갑과 우산을 챙겨 나가면서 그가 좋아하던 카스테라 한 입만 먹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빗길에 미끄러진 18톤의 화물차가 중앙선을 넘어 규정이 운전하는 차량을 덮쳤다고 한다. 비가 오는 날에는 300건 정도의 교통사고가 일어나고 사고를 당한 사람 중 3명 정도만 사망한다. 택시를 타고 가는 선아의 눈에는 하늘에서 독극물이 내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장마철에 5000명 정도의 사람이 교통사고를 당한다면 규정은 과연 어느 쪽인걸까. 확률의 문제였다고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는 현실이었다. 선아가 받아들이지 못 한다고 해서 현실은 바뀌지 않지만 말이다.

 규정은 죽지 않았다. 이상하리만큼 눈에 띄는 타박상도 없었다. 왼쪽 머리가 크게 함몰되어 있는 점만 제외하면 깊은 잠에 빠진 사람같았다. 금방이라도 눈을 떠서 그렇게나 좋아하던 카스테라를 크게 한 입 먹을 것만 같았다.


 “이렇게 말씀드리게 된 것에 대해서는 너무 죄송하고 안타깝고 뭐라고 표현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장기기증 코디네이터의 말이 끝나자마자 착하게만 살아온 규정이 마지막 가는 길마저 그의 삶과 너무 닮아 선아는 울음을 터뜨렸다. 미워하지도 원망하지도 못하게 마지막까지 사람들을 살리고 가는 그의 모습때문에. 27살에 고아가 된 선아는 망원동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태어났을 때부터 어엿한 대학생이 되고, 번듯한 직장을 다니는 사회인이 될 때까지 선아는 늘 부모님과 함께였고 늦은 나이에 어렵게 얻은 외동딸인지라 부모님이 더 애지중지 선아를 키웠다. 그런 부모님을 선아는 졸음 운전을 하던 덤프트럭 운전자에 의해 잃었다.

 종인과 영애는 망원동에 파는 카스테라를 굉장히 좋아했다. 결혼기념일이나 생일과 같이 케이크를 먹을 일이 있으면 그들은 꼭 망원동에 있는 빵집에서 카스테라를 사서 초를 불었다. 선아는 기일마다 카스테라를 사서 초를 붙였다. 그 곳에서 선아와 규정은 만났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 선아씨 부모님이랑 저랑 취향이 맞나봐요. 저도 이 카스테라 엄청 좋아하거든요.”

 “보통 자기가 일하는 곳에서 파는 건 질려하지 않나요?”

 “저는 이 카스테라 공짜로 먹으려고 여기서 일하는걸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규정의 웃음소리는 유일한 가족을 잃은 선아의 슬픔을 떨쳐낼만큼 호쾌하고 시원했다. 가족이 되는 것이 뭐가 그렇게 어려운 일이냐며 자신이 기꺼이 가족이 되어주겠다던 규정과는 그렇게 길지 않은 연애 끝에 결혼을 하게 됐다. 선아는 한편으로 규정과의 사이에서 자녀가 없는 것을 다행이라 여겼다. 자신과 가족이 되면 모두 다 불행해진다라는 규칙이 선아에게 생겨버렸다.

 선아는 중환자실 앞에 한참을 앉아 뇌사자가 다시 깨어날 확률, 기적이 일어날 확률에 대해 검색했다. 자신에게 일어난 이 불행이 0.0001%의 확률로 일어난 것이라면 규정도 0.0001%의 확률로 깨어나서 선아야 놀랐지 하하하하하하하하라고 호쾌한 웃음을 담아 불러주지 않을까 하고.


선아는 길을 걷다가 유난히 불행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듯한 해사한 얼굴들을 보면 분노가 치밀어 오다가도 차분해졌다. 저 중 규정의 장기를 받아 새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착하고 도덕적 신념이 강한 사람만이 장기기증을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가혹했고 친절하게 선택권을 쥐어주지 않았다. 장기기증 코디네이터의 물음이 한 차례 더 이어지고 난 후, 선아는 규정의 손을 잡고 속으로 100까지 헤아렸다. 100을 넘어 200, 300까지 세는 도중에도 규정은 일어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고 선아는 규정의 손을 놓았다.

 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아갈 수는 없었다. 규정이 떠나고 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선아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다. 직장 동료들의 동정심 가득한 눈빛과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 위로의 말들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불연속적이었던 충격의 시간들을 보내고 난 후, 정신을 차려 규정의 이름으로 가입했었던 보험증서를 꼼꼼히 살펴보았다. 이런 일이 생길지 모르고 보험을 들 때만 해도 일어나지 않을 일마냥 가입을 했던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2년에 한번씩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나오는 건강검진을 받고, 주기적으로 내시경을 하며 고장난 것을 그때그때 고쳐가며 그렇게 80의 노인이 될 때까지 살 줄 알았는데 안일했다. 선아는 낮은 확률의 사람이었다.

 선아는 규정의 유품을 정리했다. 낚시 용품을 정리했고, 서핑 용품을 정리했다. 서핑이라니. 우리 참 용감하게도 살았다. 수영이라고는 개헤엄밖에 못 치는 우리였는데 요즘 서핑이 유행이라며 겁도 없이 서핑보드를 사서 양양으로 한번씩 나갔다. 그곳에서 만났던 사람들에게도 규정의 소식을 전해야 했다. 책과 콘솔 게임팩 등 작은 물품들을 정리했다. 결혼기념일마다 사진 촬영을 하자며 맞춰둔 옷도 정리했다. 두 번 다시 이런 약속은 누구와도 하지 않겠다고 생각하며. 규정의 물건들이 조각조각 나서 불에 타서 연기가 되어 잘 도착하길 빌었다.

 한동안 집에 박혀 나오지 않다가 마지막으로 남은 서류들을 정리하기 위해 시청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환승을 위해 내린 곳은 선아와 규정이 처음 만났던 망원동 빵집 근처였다. 괜히 가보고 싶어졌다. 생각해보니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아 카스테라를 사서 공원에서 먹으면 될 것 같았다.

 임대문의.

 오랜만에 간 빵집 앞에 A4용지에 적혀있는 글자.

 “가게 내놓으셨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