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솔하게 담아낸 나의 장애 이야기
이번 여름은 유독 더웠다. 더위도 많이 안 타고 땀도 많지 않은 나는 여름이 그리 싫지 않았다. 불과 6년 전까지는 말이다. 척수염이 다녀간 내 몸뚱이는 기후와 계절의 영향을 많이 받는 몸으로 혼자서 퇴화해버렸다. 그토록 싫어하던 여름이 지나가는 끝무렵에서 내가 너를 싫어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1. 민소매를 입지 못한다.
키는 작지만 몸매가 예쁘다는 이야기들을 꽤나 들었던 20대 초반의 나는 민소매와 홀터넥을 즐겨 입었다. 우리 몸에는 신경이 운동신경과 감각신경이 있는데 나의 경우에는 운동신경만 죽었다. 흔히들 운동신경이 죽으면 마비만 생각한다. 나 또한 그랬다. 중추신경과 근육을 이어주는 운동신경들이 부분적으로 죽은 상태라 운동신경에 연결되어 있던 근육들도 같이 죽었다. 즉 어깨뼈를 잡아주던 근육이 죽어 오른쪽 어깨뼈는 살짝 빠져있는 상태이며 그 주변을 감싸는 근육들도 죽어서 뼈만 앙상하게 드러난 상태로 움푹 꺼져있다. 왼쪽과 오른쪽 어깨의 너비 차이는 눈에 도드라질 정도로 드러나는 편이다. 어깨가 드러나는 보트넥을 입었던 적이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나의 이상한 어깨로 향하는 눈들을 견디기가 힘들었다. 나의 어깨를 보는 것이 아닐지도 모르는데 모두가 나의 어깨를 보는 것만 같았다.
2. 허리가 저리다.
여름의 기간 중 극혐하는 기간은 장마다. 할머니들이 날이 꾸물하면 허리가 쑤신다, 무릎이 아프다, 하는 것처럼 나 또한 허리에 폭이 넓은 복대를 칭칭 감아 있는 힘껏 조여 전기가 통하는 듯 저려온다. 견딜 수 없이 허리가 저려오면 그날은 꼭 비가 온다. 틀린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나의 이런 속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나를 기상청보다 적중률이 높다고 했다. “네가 허리에 손 올리고 콩콩대고 있으면 그날은 꼭 비가 오더라.”
3. 에어컨 바람으로 쉽게 굳어진다.
해가 지날수록 지구는 점점 더 뜨거워지는 데다가 덥기로 유명한 대구에 살고 있는 나는 여름만 되면 매일매일 에어컨과 싸우고 있다. 나의 멍청한 척수염은 오른쪽 어깨와 왼쪽 손가락을 먹어버렸다. 약해진 손가락 근육을 쥐어짜 내듯 오래 쓰면 경직이 일어나는데 추울수록 경직이 더 빨리 일어난다. 사무직인 나로선 꽤나 고역이다. 내가 일하는 사무실은 중앙냉방으로 사무실 내에서 조절할 수 없고 관제센터에서 전체적으로 조절을 해야 하는 시스템이다. 에어컨 바람을 맞으면서 20분 정도 쉬지 않고 문서 작업을 하면 손가락이 빳빳하게 굳고 힘이 빠져서 키보드를 누를 수조차 없게 된다. 그럴 때면 기지개를 켜고 주물러주는데 실은 그게 여간 귀찮은 일이다. 카페에서 에어컨 바람을 바로 맞으면서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한 문단을 쓰고 나서 손가락을 지속적으로 주무르고 있다.
4. 겨드랑이에 땀이 찬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몹시 부끄럽지만, 이게 제일 불편하고 혐오스럽다. 죽어버린 오른쪽 어깨는 앞으로도 옆으로도 벌리는 것이 불가능하다. 언제나 살과 살이 꼭 붙어있는 상태인데 여름이 되면 죽을 맛이다. 어느 정도의 통풍이 되어야 하는데 꽉 닫겨 있으니 고생하는 건 내 코다. 어디선가 자꾸 꼬릿꼬릿한 냄새가 올라와 미칠 지경이다. 그래서 여름만 되면 데오드란트가 필수다. 없으면 못 산다.
5. 비키니 입지 못한다.
외국에서는 날씬하든 뚱뚱하든 상관없이 해변가나 수영장을 가면 비키니를 입은 채 여름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나라도 어느 순간부터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은 채 비키니를 입고 휴양을 즐기기 시작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곳에 나는 없다. 비키니뿐만 아니라 원피스형 수영복조차 꺼려진다. 고용량 스테로이드 부작용으로 여드름이 등, 가슴, 온몸으로 번졌고 시간이 꽤나 많이 지난 지금은 흉터로 남아있다. 약으로 핀 여드름은 생각보다 진했고 컸다.
쭉 나열하다 보니 더욱 명확해졌다. 앞으로도 계속 싫어할 것 같다.
지구 온난화로 지구가 점점 더 뜨거워지는 것이 속이 상하다 못해 화가 난다. 나조차도 이리 뜨거운데 너마저 뜨거워지면 어떡하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