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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아 Sep 04. 2022

우리의 물음엔 비장애인이라면, 이라는 가정은 없어

진솔하게 담아낸 나의 장애 이야기


 병원에서 본 신기한 광경이었다. 보통의 가정집이라면 보기 힘든 시디신 열대과일들과 각종 건강 보조식품들을 중간에 두고 대결하듯 누가 더 아프고 힘들고 눈물겨운 삶을 살아왔는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광경은 멀리서 지켜보던 나로선 웃음이 나올 만큼 기이했다. 심판은커녕 상품도 없는 그 대결에서 사람들은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침 튀기는 싸움을 하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곳에서의 승자는 말없이 가만히 지켜만 보는 나였다.

 대결의 끝은 늘 나로 향했다. 젊은 아가씨가 애달파서 어쩐대(젊어서, 여자라서 애달프진 않아요), 시집도 못 가는 거 아닌가 (제 인생의 목표는 결혼이 아닙니다), 아기도 똑같이 장애 있으면 어떡한대(선천적인 것 아니고 후천적인 바이러스고요, 그건 낳아봐야 아는 거죠)와 같은 희롱과 연민이 적절한 배합으로 섞인 그런 걱정 같은 것들. 그때의 나는 나의 아픔에 취해 내가 세상에서 제일 가여웠고 애틋하여 맞아요, 난 루저고요, 앞으로도 이런 비루한 생활을 하고 있겠죠라고 스스로를 더욱더 애처롭게 여겼다. 지금의 나라면 ‘응, 무지개 반사’라고 외치겠지.

 동정을 한 몸에 받던 병원 생활 도중 또래의 남자가 입원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를 향하던 화살들이 이젠 저기로 돌아가겠군, 찰나에 안도의 한숨이 담긴 생각을 했다. 나와 같은 병명이지만 장애의 범위가 달랐던 그 사람.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간병인들의 부추김으로 불편한 기색이 가득한 표정으로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신경계 재활전문병원 특성상 평균 나이가 60대를 웃돌아 2~30대의 환자들이 입원을 하면 꺼려하면서도 기묘한 소속감으로 인스턴트성 무리가 만들어진다. 젊은 층의 환자들 중 교통사고를 당해 사지마비가 오거나 뇌를 크게 다쳐 인지장애로 소통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은 편이었다. 나보다 두 살이 많았던 그 남자는 휠체어만 탔을 뿐 정상적인 소통이 가능했다.

 “상지 장애가 나을까 하지장애가 나을까?”

 “야, 그걸 질문이라고. 빼박 상지지. 나 화장실도 나 혼자 못 가.”

 “오빠, 나 밥도 내 손으로 못 떠먹어. 코 박고 먹어야 함.”

 생존의 요령이 없던 그 시절의 나와 그 오빠는 종종 네가 낫니 내가 낫니 이런 류의 유치한 대화를 하곤 했다. 서로를 보며 ‘그래도 내가 쟤보단 낫지’라는 무례한 위안을 삼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부러워했다. 캔 마개 혼자 딸 수 있어서 좋겠다, 젓가락질 잘해서 좋겠다, 바닥에 떨어진 동전 주울 수 있어서 좋겠다, 쉼 없이 글을 쓸 수 있어서 좋겠다. 남들이 들으면 웃을 법한 그런 일들을 부러워하며 하고 싶어 했다. 우습게도 그 가정 안엔 비장애인이라면, 이라는 것은 없었다.

 언젠가 한 번은 그 오빠가 나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넌 네 발로 걸을 수 있어서 사랑도 할 수 있는 거야. 난 다가갈 수가 없어.”

 반박할 수가 없었다. 나는 연인을 만나러 가기 위해선 10킬로그램만큼의 용기를 들면 되는 것이었지만 그는 물리적으로 가는 길이 험난하여 1톤 정도의 용기를 짊어지고 가야 했다. 그런 점에 비추면 내가 그보다 조금은 아주 약간은 더 낫지 않냐는 비겁한 생각을 해본다.

 6년이 지나 지금은 그 오빠와의 연락은 명절에 덕담 한 마디씩 하는 정도에 그친다. 나나 그나 힘들었던 기억을 다시금 상기하고 싶지 않았던 모양인지 내가 먼저 퇴원하는 그 길에도 한국인들이 말버릇처럼 하고 다니는 ‘나중에 밥 한끼 하자’라는 말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도 인스타 팔로우는 되어 있어 간간히 그의 안부를 휴대폰 너머로 보곤 한다. 잘 살고 있는 것 같아 안도감이 든다.

 우연히 길을 가다 다시 만나게 된다면 ‘오빠의 동력은 뭐였어?’라고 물어보고 싶다.

 나를 움직이게 하는 힘은 전제를 없애는 것이다. 나라는 존재 자체만으로 보게끔 말이다. 장애인 치고 일 잘해요, 장애인 치고 예뻐요, 장애인 치고 성격 좋아요, 장애인 치고... 없어도 되는 수식어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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