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솔하게 담아낸 나의 장애 이야기
토요일 아침, 밀린 잔업이 남아 주말 근무를 하기 위해 새벽 여섯시 알람을 맞춰놓고선 새까맣게 잊은 채 금요일 밤에 잠들었다. 갑자기 울려댄 알람에 놀라 여전히 꿈 속인 상태로 일어나던 찰나 어떤 것이 마룻바닥인지 침대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상태에서 발을 디뎠다. 그대로 쿵. 뽀각. 그렇게 새끼발가락이 부러졌다.
한참을 울었다, 숨이 넘어갈 정도로, 쓰러졌던 6년 전의 기억이 떠올라서.
한 번 겪어봤다고 해서 아무렇지 않아지는 것은 아니다. 한 번 겪어봤던 것이라서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지가 떨릴 정도로 공포로 다가왔다.
어두컴컴한 병실 안에서 누군가의 감시를 받으며 침대에 온몸이 꽁꽁 묶인 것마냥 누워있는 나는 마치 관 속의 시체와도 같았다. 내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세로 2m, 가로 1m로 보통의 관 크기와 별반 차이가 나지 않는다. 더군다나 병원 침대의 낙상방지용 사이드 레일을 올리면 더욱더 그런 형태였다. 두번 다시 이런 일을 겪고 싶지 않아 누구보다 열심히 몸을 챙겼다. 엄마가 직접 달인 홍삼을 매일 아침 한 잔씩 먹고 루테인, 칼슘, 비타민D, 활성비타민, 유산균 등등.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잡아먹힌 척수이지만, 이를 메우는 것 혹은 주변 척수들을 활발하게 하는 것은 나의 노오력에 비례한다고 ‘척수야 사랑해’ 카페에서 이야기했다. 전문적인 의학적 지식을 가진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곳에서는 나보다 하루라도 일찍 아팠던 사람이 의사가 되는 기이한 곳이다.
건강염려증이라고 하기엔 거창하고, 건강걱정증정도 되는 듯하다. 장애인이 되기 전에는 숨이 넘어갈 정도로 아픈 것이 아니면 병원에 가지 않았다. 지금은 종이에 손가락만 베어도 병원에 갈 정도로 유난스러운 사람이 되었다. 누구보다 바이러스에, 세균에, 염증에 그리고 스트레스에 민감한 사람이 되고야 말았다. 상처가 난 이 손가락 사이로 나의 척수를 갉아먹었을지도 모르는 악덕한 바이러스가 침투하면 어쩌지, 약해빠진 나의 정신이 아주 약한 정도의 스트레스에 힘없이 져버리면 어쩌지라는 끝도 없는 걱정들.
이런 걱정들이 나의 뇌를 갉아먹고 있을 무렵 침대에서 떨어져 발가락이 부러지는 사건이 있었다. 우리집 침대는 라지킹 사이즈로 가장 큰 사이즈임에도 불구하고 또 떨어질까 침대 정중앙에서 자고 자고 일어났을 때 그날처럼 다리에 갑자기 힘이 안 들어갈 것만 같은 기분에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발가락이 부러진 건 척수염 재발이 아닌 순전히 나의 실수였다.) 민감함과 예민함이 합쳐지면 히스테릭해진다. 나의 히스테리는 울음으로 표출되었다.
그만 울고 싶어 충동적으로 정신과를 찾았다. 척수염이 발병했을 때에도 가지 않았던 정신과를 온전한 나의 실수로 부러진 새끼발가락 덕분에 가게 되었다.
가면서도 정신과는 어떤 곳인지, 어떤 사람들이 가고 어떤 약을 주는지 잘 알지 못했다. 하루 종일 발가락만 바라보고 있는 내가 한심해서 충동적으로 간 곳이었고 내가 그리는 정신과의 장면조차 불확실했다.
“발가락이 부러진 이후 잠을 잘 못 자겠어요. 또 아플까 무서워요.”
“음, 병원은 가보셨어요?”
“네.”
“재발..했대요?”
“아뇨. 재발은 아니고, 앞으로도 재발 가능성은 없다 하더라고요.”
선생님은 나를 보더니 빙그레 웃었다. 나를 믿지 못하는 건지, 의사를 믿지 못하는 건지 물었다. 나를 못 믿는 것 같아요, 그럼 한 우물만 몇십년을 판 의사를 믿는 건 어때요, 6년 아팠던 사람보다 30년을 넘게 한 학문을 판 사람이 훨씬 더 정확하지 않을까요.
맞다. 맞는 말이다. 선생님의 말의 의미를 머리로는 다 이해하지만 나의 정신은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정신’이라고 칭하는 것도 머릿속에 있는 뇌를 뜻하는 것일 텐데 이토록 분리되어 행한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사람들이 무심코 내뱉는 말 한마디에도 쉽게 상처를 받았다. 어느날 직장동료가 다른 사람을 향해 ‘뭐야, 너 장애인이야?’라는 말을 내뱉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다. 상대가 던진 지갑을 한번에 못 잡았을 뿐인데 장애인 취급을 받는 건 멀뚱히 서있는 장애인을 비하하는 것인지, 지갑을 받지 못한 비장애인을 비하한 것인지, 아니면 둘 다 비하한 것인지 여전히 판단이 서질 않는다. 결국 말을 던진 사람만 제외하고 모두가 기분이 상한 상태로 돌아서고야 말았다. 돌아서는 순간에 뒤에서 ‘왜 이렇게 예민하게 굴어!’라는 외침에 개새끼라고 중얼거렸다.
나의 이런 예민함들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고 싶지 않지만 내가 써내려 가는 이 글에 솔직해지기 위해선 역시나, 난 예민한 사람인 것을 인정하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