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솔하게 담아낸 나의 장애 이야기
꽤 오랜 시간을 다른 사람들의 생각 속에 갇혀 살았다. 날 병신이라 보면 어떡하지, 하등 쓸모없는 사람이라 여기면 어쩌지, 이 세상에서 도태시켜 나락으로 빠뜨리면 어떻게 하지, 와 같은 다른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나의 부족한 부분들을 마구잡이로 넣어 빠져나오지 못한 채 한참을 갇혀 살았다.
나로서 존재하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의 머릿속만 배회하였기에 나를 채울 여력조차 없었기에 이제라도 나를 되찾기 위해 텅 비어버린 것들이 꼼꼼히 살펴보았다.
비어있는 곳을 채우고자 했다. 쉴 새 없이 움직였다. 구멍 난 나의 어딘가를 채우기 위해 그림을 그리고 닥치는 대로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전시회를 다니고 뮤지컬을 보고, 부단히 애썼다. 그렇게 다니다 보니 채워진 것만 같았다. 날 가엾이 여기던 알 수 없는 사람들보다 한 뼘 정도 앞서 나가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착각일지도 모른다. 부족한 부분들을 채우면 완전체가 될 것이라는 착각. 세상에 태어나 울음소리를 낸 순간부터 우리는 완전체 인간에서 불완전체 인간으로 전락한다. 배가 고파서 울고 잠이 와서 울고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해 울고 뜻하는 바를 이루지 못해 울고. 온전히 나만 존재하던 엄마의 뱃속에서 나와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끊임없이 익명의 누군가와 나를 비교하고 혹은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채우고자 한다.
누구나 사소하거나 중요한 결핍을 안고 산다. 누군가를 움직이게 하는 힘이 결핍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죽을 때까지 이 결핍을 완전히 채울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결핍은 마약과도 같다. 결핍의 한 부분을 채우면 또 다른 결핍이 나타나버리고, 애를 쓰면 쓸수록 어디선가 결핍이 계속해서 튀어나왔다. 많은 것을 얻었다 생각할 때에도 얄팍한 결핍들은 계속해서 솟아났으며 이렇게 살아가는구나 싶기도 한다.
나의 주된 결핍 중 하나는 만세를 하고 싶은 욕망이다. 무더운 여름에 꽉 막힌 겨드랑이를 시원하게 열어젖힐 것이라는 구질구질한 나의 욕구. 어느 순간에서부터 이 결핍을 내 등에 업은 채 지내야 한다는 숙명을 직시하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결핍은 메우는 것이 아니라 직시하는 것이다. 결핍은 결핍으로 두고 똑바로 마주 보면서, 나의 취약성을 쿨하게 인정하고 채워나가려고 노력하는 그 모든 행위들이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
모든 행동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다.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특정 활동을 하고 그럼으로써 자아가 완성되는, ‘결핍’이 원인이 되어 ‘나’라는 결과가 나오는 그런 패턴들. 나의 결핍은 장애가 아니다. 아무렴 장애가 장애가 될 순 없지. ‘나’라는 존재 자체의 사소한 옵션일 뿐 전부가 될 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