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아 Sep 12. 2022

우리가 만들어야 할 변화

진솔하게 담아낸 나의 장애 이야기

 장애인이 된 후 사회에 첫 발을 들일 때 가장 먼저 한 생각은 ‘세상 살기 좀 좋아졌다’였다. 비록 그 생각은 왔다갔다 하는 중이지만 말이다.

 나는 장애인 전형으로 공무원이 되었다. 재활전문병원에서 퇴원을 한 후에도 공식적으로 낙인찍히는 것이 두려워 한참을 장애인 등급을 신청하지 않았다. 나라에서 주는 혜택을 받는 사회적 약자가 되는 것이 이질감이 들어 꽤 오랜 시간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는데, 손수 장애인 등급을 신청하면서까지 공무원이 된 것은 순전히 먹고살기 위함, 즉 생존이 목적이었다.  

 내가 공무원 시험을 쳤을 무렵만 해도 그에 대한 인기는 실로 대단했다. 취준생들에게 취업 준비 어떤 거 하고 있는지 물어보면 열에 아홉은 공무원 준비를 하고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뉴스를 틀기만 해도 역대 최고 경쟁률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떠들어대니 장애인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시험을 치는 내가 치사하고 비겁한 기분이 들어 속이 뒤틀리는 것만 같았다. 이 시험을 치기 위해 고의적으로 장애인이 된 것도 아닌데 말이다.

 대부분의 수험생들은 시험에 대한 정보, 의지를 다지기 위해 합격생들의 합격수기, 힘든 수험생활의 위로를 얻기 위해 닥공사나 독공사와 같은 공무원 카페를 이용한다. 나는 딱 한번 방문하고 그 이후로는 일절 들어가지 않았다.

 ‘장애인은 왜 따로 뽑냐? 커트라인도 훨씬 낮은 데다가 우리 같은 사람들이 들어갈 자리를 쟤네들이 그냥 꿰차는 거 아닌가. 출근하면 이거 못하니까 해주세요, 저거 해주세요, 할 거 아니야.  그럴 거면 안 하는 게 맞지 않나. 심지어 말도 못 해. 장애인이니까 배려해야 한대잖아.’

 실제로 내가 본 댓글이다. 대댓글로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달렸지만 저 댓글 하나로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 탓에 더 이상 볼 수가 없었다.

 현실은 가혹하다. 장애인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저소득층, 한부모가정  경제적 약자 혹은 복지 사각지대에 위치한 취약계층에게 새로운 복지제도가 만들어지면 다른 계층의 사람들은 역차별을 운운하며 반론을 제기한다. 직접적인 지원에 국한되어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사회로 들어올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준다거나 기회를 제공하는 것조차도 어떤 (수의) 누군가에게는 불합리하고 불공평하며 심지어는 구역질 나는 사회라며 소리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경제권을 소유하지 못한 채 그들의 세금으로 지원금을 받으며 생활하는 것에 대해서는 납득할 수 있는 사회인지 한번 물어보고 싶다. 거시적으로 생각했을 때 사회적 약자들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그 안에서 일하며 세금을 내며 정착하여 지원금 없는 계층으로 성장하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의 존재 가치라고 본다.

선진국들일수록 누구나 잘 살 수 있도록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온 힘을 다하고, 반대로 후진국들일수록 공정한 사회 따위 개나 줘 버리며 지배층들이 피지배층들을 마구 수탈하고 학살하는 등 온갖 만행을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  -나무위키, 공정 검색 결과


 작년 7월, 대한민국은 유엔무역개발회의에서 선진국으로 선정되었다. 2020년 경제규모로 볼 때 세계 10위를 차지했고, 주요 7개국(G7)에도 초청될 정도로 높은 성장을 보였지만, 왜 아직도 인터넷상에는 시민 의식이 바닥을 치고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은 사람이 훨씬 많다는 것을 인지하고는 있으나 소수의 사람으로부터 난도질을 당하는 건 나, 우리의 몫인 걸까?

 

 소수의 사람들이 꾸린 엉망진창 속에서 변화를 만들려는 시도는 얼마나 쉽게 좌절될 것인가. 유튜버로 활동 중인 위라클님과 원샷한솔님은 진창 속에서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한 도전에 힘쓰고 있다. 그들의 좌절은 얼마나 많이 있었을까. 나 또한 이렇게 작게나마 소리치기 위해 글을 쓰고 있지만 쓰기까지의 과정이 힘들었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돌아오는 질타와 편견들을 버텨낼 수 있을지, 할 수 있는 것보다 할 수 없는 것이 더 많을 거란 편견으로부터 어떻게 뚫고 나올 것인지, 그 기회조차 주지 않는 사회 속에서 얼마나 많은 좌절감을 맛보아야 하는지. 그렇게 느리게 느리게 나아가다가 또다시 퇴보하는 걸 참아내면서 어떻게 지치지 않을 수 있는지에 대한 것들을 토로하면서 말이다.

 쉽게 하는 착각 중에 하나가 모든 사람들은 같은 출발선상에 있다는 것이다. 같은 위치에 서있는 사람들의 능력이 고만고만하기 때문에 멀리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고 착각을 한다. 그러나 사실은 우리가 모두 같은 출발선상에 있는 것은 아니다. 뒤를 돌아보면 우리에게 바통을 쥐어준 사람이 존재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바통을 이어받아 달리기 시작한다. 그 간격이 세대라는 것이다. 가끔 가다가 그 바통을 낚아채 반대로 뛰는 끔찍한 사람이 나타나기도 하며 바통을 잃어버려 갈피를 못 잡고 헤매는 경우도 생긴다. 인내심을 가지고 조금만 기다리고 뒤쫓아 가다 보면 운 좋게도 그 바통을 이어받을 기회가 생길 것이다. 수많은 시간이 흐른 후 돌아본다면 우리는 꽤나 멀리 올바른 길을 가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다음 세대의 사람이 그 바통을 이어받아 앞으로 나아가겠지. 지금의 내가 달려나갈 수 없는 그 거리까지 말이다. 오만해지지 말자, 이렇게 올바른 길을 닦아준 선대들을 위로하며, 더 먼 길을 가야 할 후대들을 아끼며.  

이전 13화 그래 인정, 난 예민한 사람이에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