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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아 Aug 29. 2022

두려움을 이겨내는 것만큼,

진솔하게 담아낸 나의 장애 이야기


 장애인이 되고 나서 죽어도 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버스 타기’이다. 운전을 하거나 전철을 타는 것은 크게 문제없이, 여느 비장애인과 똑같이 할 수 있지만 버스는 불가능에 가깝다. 다리를 못 쓰는 것도 아니고 고작 팔 하난데 그래?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생각보다 팔의 기능은 다양한 곳에서 발휘되고 있다.

 불안감이 나를 잡아먹었던 그날 어디로든 떠나지 않으면 심장이 너무 조여 쪼그라들 것만 같아 나의 상황에 대한 판단 없이 버스를 탔던 적이 있었다. 종종 깜빡 잊곤 했다. 대입에 지쳐 도망치듯 버스에 올라탄 고등학생의 나처럼, 군대로 떠나버린 첫사랑을 잊기 위해 아무 버스나 올라 타 종점까지 가버린 스물한살의 나처럼, 그토록 가고 싶었던 대기업의 최종면접에서 떨어져 눈물을 삼키며 올라탔던 20대 중반의 나처럼 20대 후반의 나도 무작정 버스를 타고 카드를 찍었다. 앉을 자리를 찾는 그 순간에 버스는 출발했고 그 반동으로 중심을 잃은 나는 그대로 넘어지고 말았다. 아픔보단 쪽팔림이 컸고 쪽팔림보단 좌절감이 컸다. 운이 좋게도 말보다 행동이 앞선 승객 덕분에 무사히 일어나 하차문 바로 앞에 있는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팔을 하나 못 쓴 이후로 단순하게 무거운 것을 못 들겠다, 밥 먹기가 어렵겠다, 박수를 못 치겠다, 이렇게나 안일하게 생각했던 과거의 나에게 생각 짧은 이 친구야 너 버스 타다가 쪽팔려서 죽을 수도 있어,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그렇게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은 말을 탄 커다란 동상이 있는 공원이었다. 연세가 지긋하신 어르신들이 산책도 하며 장기를 두고 있었고 종종 인스타그램에서 보였던 대형 카페가 이곳이구나 했다. 힘들게 간 것에 비해 길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서 집으로 돌아갈 걱정을 했다. 경험해보지 않은 곳에서 오는 막연함보다 이미 겪은 것에 대한 두려움이 날 더욱 숨통을 조이게 했다. 모아 놓았던 돈들은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던 지라 근처 전철역까지 걷고 또 걸었다. 역시 버스보다 내 두 다리가 편한데, 라는 생각을 하다가 두 다리라도 멀쩡해야 할 텐데, 라는 생각까지 하곤 했다. 한참을 걸어 흐른 땀인지 지나가는 버스를 보면서 넘어졌던 생각이 떠올라 흐른 식은땀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지만 전철역에서 나오는 에어컨 바람은 나의 끈적끈적한 땀들을 모조리 식힐 만큼 기분 좋게 시원했었다.

 두려움은 일상에서 많은 불편함을 가져다준다. 그러나 그 불편함을 이겨내라고 두려움을 훌훌 털어내고 도전하세요, 라는 속 편한 이야기는 하지 못하겠다. 나도 하지 못하는 것을 감히 누군가에게 권유할 수가 있겠는가.

 버스를 타고 떠난 그곳에서 나는 장애물을 이겨내자! 할 수 있다!라는 이런 열정들이 아니라 내가 하지 못하는 건 과감히 포기하고 할 수 있는 것에 매진하자, 도전이 늘 멋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목적지에 가기까지는 수많은 방법이 있다. 걸어서 가든 버스든 전철이든 무엇이든지 자신의 열정과 노력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한 사람이 모든 방법을 취할 순 없고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 써먹으면 된다. 나는 버스를 포기하고 걸어가는 것을 택했다. 걸어가는 동안 친구에게 전화 한 통도 하고 주변 풍경도 보고 사진도 찍으며 목적지에 다다라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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