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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아 Aug 12. 2022

나는 장애인이 되기로 했다.

진솔하게 담아본 나의 이야기

 건강하던 내가 하루아침에 마비가 온 건 전날 회식의 부작용이었던 것인지, 6개월동안 지속적으로 가스라이팅 해오던 남자친구 때문이었는지, 승승장구하던 내 인생을 누군가 시기하여 저주를 퍼부은 것인지, 어떤 이유에서 시작된 것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척수염은 크게 시신경척수염과 횡단척수염 두 가지로 나뉘는데, 나같은 경우는 두 가지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억지로 끼워 맞추자면 횡단척수염에 더 가깝겠다고 진단했다. 원인불명. 어떤 바이러스나 세균, 곰팡이, 기생충 등에 의한 직접적이 감염 때문인지, 일종의 자가면역 반응에 의해 내 척수를 바보같은 나의 면역체제가 공격을 해서 생긴 것인지 이유를 알 수 없다고 했다. 척수염이 발병하기 3일 전 장염이 걸린 것이 아마 신호탄이었던 것 같다.

 의사는 원인을 알 수 없다 했지만, 스스로 생각해보기엔 내 몸 안엔 언제나 염증이 존재했던 것 같다. 어릴 때부터 난 예민한 아이였다. 사람들과 환경의 변화를 누구보다 빠르게 알아챘으며 그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학교에서나 회사에서 모진 말을 듣고 오면 분리수거를 하지 않은 채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쓰레기 매립장에 그냥 묻어 두었다. 그것들이 독이 되어 내 몸 안에 번진 건 아닐까. 다른 사람을 공격할 수 없으니 바보같이 날 갉아 먹은 것은 아닐까.

 할 수 있는 모든 치료가 끝날 무렵에도 염증이 갉아 먹은 척수는 여전히 비어 있었다. 마음 같아선 척수를 꺼내 신경들을 모조리 다 묶어서 연결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것은 불가능했고 여전히 불가능하다. 이젠 나 자신도 현대의학도 그 어떤 것으로도 나의 병을 치료할 수 없었다. 여전히 나의 오른팔은 움직이지 않고 왼손으로는 동전 하나 집을 수가 없다. 그러다 한편으로는 내가 아이돌이나 배우가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다, 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도 했다.

 “지난 과거로 돌아갈 수 없으니, 앞으로 살 방법을 찾아보세요.”

 대학병원을 퇴원할 때 당시의 재활의학과 교수님이 나에게 했던 말이다. 아, 나는 앞으로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겠구나, 한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삶을 살아야 하는구나. 아무와도 공유할 수 없는 절망이라면 이게 전부 내가 만들어낸 악몽은 아닌 것인지 헷갈렸다. 대학병원에서 장애인 등록을 권유했으나 거절했다. 스스로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이렇게 장애인이 된다고? 나는 교통사고를 난 것도 아니고, 선천적으로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것도 아닌데? 반감이 컸었다. 반감이라기보단 마음 한켠에 이 악몽에서 깨어날 거라는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재활전문병원에서 6개월, 집에서 3개월의 시간을 무기력하게 보내다 보니 앞으로 내가 살아갈 삶들을 이렇게 흘려보낼 수 없겠단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제일 먼저 한 것은 동사무소에 가서 장애인 등록이었다.

 장애인이 되고 나니 내 세상만 무너질 뿐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달라진 게 없었다. 도대체 난 전생에 어떤 죄를 지었길래 감당할 수 없는 무게를 쥐어주는 것인지 원망스럽고 억울했다. 신은 감당할 수 있는 무게의 짐만을 준다는데 난 얼마나 단단한 사람이길래 이렇게 무거운 짐을 주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장애인이 되고 나서도 이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마음과 현실과 타협하는 마음이 산불과 소방관처럼 싸워댔다. 어떤 날은 작게 피어오르는 불이 물조리개로도 쉽게 잡혔지만 또 다른 날은 산을 다 뒤덮을 정도로 큰 불이라 헬기가 와서 꺼도 손 쓸 수 없을 정도였다. 불안, 공포, 두려움, 스트레스, 편견따위의 크기조차도 가늠되지 않아 괴로움을 넘어서 내가 힘들고 괴로운 것이 맞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보통 이 정도면 이만큼 괴롭고 아픈 것이 맞나, 나만 이만큼 힘든가, 내가 지금 괴로운게 맞는지에 대한 생각이 들 때에는 오히려 웃음이 새어 나왔다.

 가까운 사람들은 나에게 늘 ‘생각하기 나름’, ‘마음먹기에 달렸다’라고 했다. 그런 상투적인 표현은 그다지 도움되지 않았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깎아내렸고 이것도 못하는 바보등신이라 칭했다. 하지만 악플러는 행복할 수 없다. 생각의 끝에 도달했을 때 스스로를 받아들이기로 다짐했다. 그러자 이 세상이 와닿기 시작했다. 장애인이 되면서 27년을 살아오던 내 터전이 무너졌지만 오히려 다시 일어설 발판이 되었다. 20년을 가까이 살아오던 동네도 재건축이니, 재개발이니 들어가기 시작하는데 고작 20대 후반에 이런 방지턱이 뭐가 문제가 될쏘냐. 나는 다른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명함을 하나 더 가지고 있을 뿐이다.

 언제나 행복할 것 이라 생각했지만 인생이란 그러하듯, 예기치 못한 순간에 비극이 찾아온다. 행복이 영원하지 않듯 비극 또한 지속되지 않는다. 비극과 행복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삶. 그 찰나 속에서 영원을 찾아내는 것이 우리의 삶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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