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이 오사무 - 인간 실격
삶은 무엇인가?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아마도 이 물음들은 살아가는 동안 끝까지 쥐고 가야 할 질문들인 것 같다. 누구든지 스스로에게 물어봤을 것이며, 누구든지 또 그 대답에 대한 나름의 고민을 들고 있을 것이다. 이처럼, 일본에서도 개인의 삶과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해 깊숙이 탐구하고 이야기를 써 내려간 한 비극적인 사나이가 있었다.
그는 39년이라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하지만 그 39년이란 시간 동안, 무려 다섯 번의 자살 시도를 할 만큼 그의 삶은 온통 우울과 비극으로 상징된다. 도대체 무엇이 그를 그토록 괴롭혔을까? 그는 무엇 때문에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것에 있어 수많은 시도를 한 것일까? 이는 그의 마지막 작품인 <인간 실격>을 이해하는 것에 있어 필수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부분이다.
주인공의 이름은 '다자이 오사무(본명: 쓰시마 슈지)', 1909년 일본 아오모리 현 쓰가루에서 나름 부유한 집안의 11남매 중 열 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고리대금업으로 졸부 집안이 되었고, 그는 그런 자신의 가정 배경에 부끄러움을 많이 느꼈다고 한다. 당시 일본은 여전히 봉건적 계급의식이 강하게 남아 있었다. 그래서인지 전통적으로 뼈대 있는 명문 가문의 집안이 아닌 졸부 가문은 종종 경멸의 대상으로 여겨지곤 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의 집안에선 그에 대한 기대가 많았다. 하지만 다자이 오사무는 자신이 그러한 역할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예민하고 섬세한 감수성을 지녔으며, 집안의 부와 권위가 자신에겐 속박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어린 시절은 그리 비극으로만 보이진 않는다. 오히려 그는 장난꾸러기에다 학창 시절 공부를 정말 잘해 식구들의 이쁨을 받고 자랐던 아이였다. 초등학교에선 전 과목 수재 등급에 학급 반장까지 도맡아 왔으며, 졸업생 대표로 표창상도 받았다고 한다. 중학교 시절에도 늘 수석 자리를 놓고 다투었으며, 고등학교도 문과 중 6등이라는 우수한 성적으로 당당히 합격했다. 하지만 그의 성적은 극적으로 떨어지고 마는데, 이는 그가 문학에 빠지고 나서부터의 일이다. 동시에 '베니코(다자이의 첫 번째 부인)'라는 여성과의 교제가 시작된 시기이기도 하다.
그렇게 다자이 오사무의 첫 번째 자살 기도는 1929년, 히로사키 고교 3학년 재학 중에 일어난 일이었다. 다자이는 고교 진학 후 당시 시대적 사조였던 공산주의 사상을 접했는데, 이는 자신의 출생 신분에 대한 원망과 절망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처럼 그는 가지지 못한 자들에 대해서 일종의 죄의식 같은 걸 평생 품고 있었다. 천성이 섬세하고 극도로 예민한 감수성을 지닌 사람이었던 것이다. 때문에 그는 타인에 대한 시선을 한 시라도 놓칠 수 없었다. 하지만 단지 공산주의 사상을 접하고, 천성적으로 예민한 사람이었다는 점에서 그의 첫 번째 자살 기도를 설명하기엔 뭔가 좀 부족하다.
더 자세히 그의 삶을 들여다보자. 1929년 12월 10일 밤, 칼모틴을 복용함으로써 다자이의 첫 번째 자살 미수 사건이 일어난다. 그런데 그날은 2학기 기말고사가 시작되기 전날이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어렸을 적부터 수재, 천재로 이름을 떨쳤던 그는 문학에 빠져 시험공부를 전혀 하지 못했다. 그런 상태에서 시험을 치렀다가 가족들의 믿음을 저버릴까 봐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란 거다. 나름 양반 집안에서 태어난 그에게 있어, 주위 사람들을 통한 좋은 인품을 가진 바른 청년이라는 그의 이미지가 실추되는 것에서 올 두려움. 그런 부담감이 가장 크지 않았을까 싶다.
이후에도 다자이의 삶은 굉장히 복잡다단하게 흘러간다. 다자이와 그의 가족 간의 정치적 신념의 충돌(당시 그의 큰형은 의회 의원에 당선되어 장차 중앙 정계에 진출하려 했다), 폐결핵에 걸려 27살에 요절한 셋째 형의 일, 병약했던 모친과 엄한 아버지에서 비롯된 내적 갈등은 그에게 있어 인간과 인간의 삶에 대한 공포로 다가오게 만들었다. 그렇게 1930년 11월 29일, 당시 결혼 준비에 있던 그는 다른 여인과 함께 바다에서 같이 자살 기도를 행하는 기행을 펼치기 시작한다.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여인만 죽고, 다자이는 산 것이다. 이는 두 번째 자살 기도였다.
이때쯤 되어서 그는 이제 가족들에게 더 이상 신임을 얻을 만한 존재가 아니었다. 집안 식구들을 실망시킨 데에서 비롯된 그의 행동이 되려 믿음이 깨져버린 일이 된 것이다. 또한 여자를 죽게 만들고 자신만 살아남았다는 사실은 안 그대로 예민한 감수성을 지닌 그에겐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는 더더욱 비합법 운동에 관여하게 되었고, 거처를 자주 옮겨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복잡한 여자 문제와 마약, 술에 찌든 상태로 창작활동에만 전념하여 대학 수업은 거의 듣지 않았다고 한다. 사실상 대학 졸업은 불가능했다. 문제는 계속해서 형을 속이며 학비와 생활비를 받았던 그였다. 결국 생활비를 끊겠다던 형의 말에 대학 졸업이 불가능하다는 사실과 자신의 가족을 속였다는 죄책감 때문인지, 그는 세 번째 자살 기도를 행하고 만다. 이때 다자이는 죽음이라는 것에 숭고함을 덧붙여 생각하기 시작했다. 끊임없는 자기 비난과 우울로 도저히 타개할 수 없는 상황 앞에서 죽음만이 일종의 처세술이 된 것이다. 사실 일본이란 나라 자체에서 통하는 죽음의 인식은 꽤 독특하긴 하다. 일본에서는 죽은 이를 두고 '호토케 님'이라 칭하는데 부처님 또한 '호토케 님'이라고 부른다. 이는 '죽음'이란 게, '모든 것을 용서하고 미화시킨다'는 일종의 신앙적인 인식이 깃들어 있는 단어라는 점이다.
네 번째 자살 기도는 그를 절정으로 치닫게 만든다. 맹장염과 폐결핵으로 당시 병원에 입원해 있었던 그는, 치료 약물에 중독되고 만다. 그렇게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는데, 그는 그때 자신이 사람들로부터 버려졌다는 느낌을 받는다. 말 그대로 자기혐오에 빠져 '인간 실격'이라는 타이틀을 자신에게 붙이고 만다. 설상가상으로 첫 번째 아내인 하쓰요는 불륜은 저지른다. 그녀는 다자이와의 관계에서 안정감을 찾지 못했고, 또한 그의 가족들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한 여자였다. 다자이와 하쓰요는 둘 다 동반 자살을 꾸리게 되는 데 여기서 다자이는 그녀를 떠나보낸다. 그는 또 살았다. 하지만 다자이는 하쓰요가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해, 믿었던 사람들이 모두 그의 곁을 떠났다는 상실감에 사로 잡혀 버린다.
그에게 남은 것은 문인으로써의 삶뿐이었다. 그는 일본 격동기에 작가의 삶을 살겠다 다짐한다. 그리고 나름대로 성공한 시기를 이어나가기도 한다. 이 시기에는 새로운 가정을 꾸리게 되기도 하고, 기독교의 영향으로 인해 나름 밝고 건전한 작품이 쓰이기도 했다. 이렇게 나름 전후 인기 작가로 부상한 다자이는 개인적인 시점을 사회적 지점으로 확장시키며 무뢰파, 데카당스 파라 불리는 호칭을 얻게 된다.
하지만 다자이는 결국 또 자기 파멸로 이끌리게 되는데, 문제는 일본이란 나라였다. 패전 후의 일본 사회상에 대해서 그는 엄청난 실망과 환멸을 느낀다. 전쟁에서 패배한 일본은 당시 사회적, 정신적 공백 속에서 매우 혼란스러워했다. 극심한 사회적, 경제적 혼란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도시들은 파괴되고, 물자와 인프라는 고갈되었으며, 전쟁의 피해자들은 정신적, 신체적으로 고통을 겪었다. 그래서인지, 패전 직후의 일본은 사실 다자이 오사무뿐만 아니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작가들이 꽤나 많았던 시기였기도 하다. 다자이는 자아 상실과 무의미한 사회적 변동에 분노했고, 그 분노는 그로 하여금 삶의 마지막 지푸라기를 뽑아 버린 것이다. 자기 자신이란 '존재의 무의미'와 '사회적 역할의 부재'. 그는 살아있음의 의미를 찾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게 1947년 말에서 1948년 초까지 쓰인 소설이 <인간 실격>이다. 1948년 6월 13일, 그는 당시 연인이었던 야마자키 도미에와 함께 다섯 번째 자살 기도를 행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로부터 며칠 뒤인 6월 25일, <인간 실격>이 출간되어 그의 마지막 작품으로 지금까지 남게 된다.
그대들은 인간답게 살고 있는가?
나는 분명히 말하지만 다자이 오사무를 딱히 좋아하지도 않고, 또한 그의 인생이 불쌍하다거나 하는 일종의 동정과 연민과 같은 감정을 느끼지도 않는다. 솔직히 말하면 <인간 실격>을 읽고서 불쾌했다는 독자들이 꽤 많다. 나도 그 축에 속한다. 다만, 겉으로 도배된 내용만 보았다면 이는 작품의 반쪽짜리만 본 것이다. 지금 현대 사회에 있어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은 정말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특히 2030 청년 세대들에게 말이다.
우리는 사회를 살아가는 데에 있어 눈에 보이지 않는 일종의 '기준'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일정 수준 이상의 기준을 세우고선, 그 기준에 부합하면 '정상'이고 그렇지 못하면 '비정상'으로 사람을 가르는 습관이 있다. 물론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은 어느 시대마다 있긴 해 왔다. 시대마다 요구하는 특정 인재상이 있고, 그 능력에 부합하면 더 많은 기회와 더 풍족한 보상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기준에 못 미치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는 인간이 아니게 되는 것일까? 그렇다면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기준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베르테르를 보았을 때와 비슷하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어떤 길로 가는 지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채 유령처럼 관습을 따라가면서, 그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는 이들을 두고 도리어 '도태'와 '낙오자', '실패자'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근데 한 번 생각해 보자.
수능 성적이 그 사람의 능력을 대변해 주는 보편적 기준이 될 수 있는가?
돈의 액수가 그 사람의 능력과 인간성을 다 설명할 수 있는가?
작중 주인공인 오바 요조는 자신을 '익살꾼'이라 칭하며, 사람들의 기준에 부합하여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광대처럼 연기를 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표명한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닌데, 사람들 사이에 끼려면 어쩔 수 없이 연기를 하며 살아가야 해.'
앞서 말했듯 다자이는 자신이 전통적인 뼈대 있는 가문이 아닌 졸부 가문이라는 점에 부끄럼을 느낀다고 했다. 이러한 점을 보았을 때, 그는 어려을 적부터 사회적인 시선, 즉 사회가 요구하는 그 기준에 부합하지 못했다는 것에 대해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었단 걸 알 수 있다. 그래도 그의 어린 시절을 보면 나름 우수한 영재였다는 점에서, 다자이는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사회적 기준에 부합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했다. 지금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말이다.
이 정도 대학은 나와 줘야지.
이 정도 스펙은 가지고 있어야지.
이 정도 연봉은 벌어 줘야지.
이 정도 아파트 평수는 갖춰 줘야지.
이 정도...
물론 인정한다. 대부분의 집단은 자신들이 정해놓은 기준 아래에서 더 잘난 사람들을 뽑으려 할 것이다. 자신들에게 적합한 인재를 뽑기 위해선 아무나 막 받아낼 순 없으니까. 그리고 그 특정 집단에 들어가고자 하는 이들은 당연히 그들이 내놓은 일정 기준치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도 맞다. 사람 사는 건 다 다르기에 정답은 없다. 누군 이렇고, 누군 저렇고 따질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이것들이 과연 '사회의 보편적인 기준이 될 수 있는가?'라는 점을 생각해 보자는 거다. 남들이 정해놓은 기준에 목을 매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또한 거기에 좀 부합하지 않으면 도태된 인간이라고 치부하는 게 과연 맞는지.
현재 대한민국 청년들 중에선 사회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소위 말하는 '은둔형' 혹은 '고립형'인간들이 많다고 한다. 이미 인구대비 히키코모리 비율이 일본을 넘어섰다는 기사도 나오고 있다. 물론 이걸 측정하는 방식이 정확한 지표를 나타내는가에 대해선 알 수 없다. 다만, 젊은 층에 속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예전과는 확실히 사회에 대한 인식과 바라보는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점이다. 20대 청년 중 사망원인 50%가 '자살'이다. 20대에 죽은 사람들 중 절반 이상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얘기다. 코로나 때는 더 심각했다. 이게 과연 정상적인 사회인가? 당연히 자살이란 행위를 정당화하는 건 아니다. 애초에 내가 내 목숨을 스스로 끊을 권리 같은 건 없다. 개인의 자유 범위에 포함될 수가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생각해 봐야 할 점은, 그들은 왜 스스로 목숨을 끊었냐는 것이다. 당시에 그들은 어떤 감정을 품고서 해선 안 되는 일을 기꺼이 저지른 건지, 같은 시기를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대들은 인간답게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은 그대들의 나침반이 자신들의 손에 쥐어져 있는가를 물어본 것이다.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나를 인간으로 대하며 산다는 것이다. 그러니 보이지 않는 시선에 내 정신을 구속하지 말고, 어떠한 시험이 닥쳐오면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서 스스로 책임을 지는 자야 말로 진짜 자신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인 거다. 남들을 두고 폄하하고 비하하는 인생, 혹은 내가 아닌 남의 기준에 맞추지 못했다고 자기 파멸로 치닫는 인생. 유한한 삶을 그런 식으로 낭비한다는 게, 그게 얼마나 아까운가.
세상은 넓다. 그 누구도 본인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는다. 그러니 이왕 살 거면 내 손에 나침반을 쥐고, 내가 여행해 보고 싶은 장소를 용기 있게 걸어 나가는 인생이 죽음 앞에서 덜 후회스럽지 않을까? 혹시 모르는 일이다. 꽤 멋진 풍경이 당신 앞에 기다리고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