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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ee Oct 20. 2021

5m 사이의       인생


올해 초 회사가 새로운 사무실로 이사했다. 이전 사무실은 창문이 거의 없었기에 이번 사무실에 창문이 많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기뻤다. 빽빽한 빌딩 숲의 강남이지만 창밖 너머 조금의 여유가 있길 바라며 새 사무실로 출근한 첫날. 들뜬 마음으로 종종거리며 걸어가 바라본 창밖엔, 약 5m를 사이에 두고 큰 회색 건물이 우뚝 선 채 햇볕을 막고 있었다. 강남의 모 유명 재수학원이었다.


우리 사무실이 위치한 3층 창문 밖을 보면 그 큰 회색 건물 3층에서 재수학원 아이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훤히 볼 수 있다. 과장 조금 보태 무슨 책을 펴놓고 있는지 보일 정도다. 칠판을 향한 채 우리 건물을 등지고 앉아있는 아이들. 그 아이들은 회사 내 가장 일찍 출근하는 편인 내가 출근하기 전부터 퇴근하는 그때 까지도 그렇게 앉아있다.


봐도 봐도 적응이 되지 않았던 장면은 점심시간에 몇 십 명의 아이들이 재수학원 건물 앞 계단에 빽빽하게 앉아있는 풍경이었다. 나름의 작은 여유를 즐기는 광합성 시간처럼 보였다. 여유를 보내는 시간치고는 전깃줄 위의 참새들처럼 빼곡히 앉아있는 모습이 왠지 아이러니하게 느껴져 지나가는 사람마다 쳐다보는 진풍경이기도 했다.


그 아이들을 보고 있자면 재수생 시절의 내가 많이 생각난다. 신촌 M 재수학원으로 매일 새벽 여섯 시 반에 지하철을 타고 가 밤 열한 시에 집에 들어오던 그때. "왜?"라는 물음 한 번 던진 적 없이 그저 열심히 울고 웃으며 하루를 살아냈던 때였다. 수능이라는 인생의 첫 대실패를 맛보고 15시간을 공부하면서도 나는 왜 더하지 못하는지 죄책감이 남던 때. 애씀에 힘을 부여하고 믿음으로 버티며 스물의 하루하루를 보냈다. 공부 외에 모든 것들이 마음의 부채로 남는 때인 만큼, 학원 앞 계단에 앉아 잠시 햇볕을 쬐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겐 엄청난 사치 일지도 모른다.


일하다 좀체 머리가 돌아가지 않고 마음마저 비뚤어 질 땐 종종 빈 회의실로 피신하곤 한다. 그리곤 불이 꺼진 공간에 잠시 앉아 한숨 섞인 숨을 고른다. 고요하고 어둑한 공간 속에서 창밖을 내다보며 홀로 바라보는 그 아이들의 등. 얼굴조차 본 적 없는 아이들이지만 너무나 익숙하고 안쓰러운 내 모습이라 자꾸 '너희가 고생이 많다'며 혼잣말을 하곤 했다.


칠판과 책상만을 향한 채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살아 냈던 그때의 나의 등 뒤에, 5m를 사이에 두고 한 건 물 건너 지금의 내가 있다. 그 당시에도 구체적으로 그리는 미래는 없었지만 그래도 지금처럼 여전히 어설픈 모습은 아니었다. 지금 즈음이면 이미 인생의 정답을 찾아 누구보다 멋지게 정면 돌파하고 있을 줄 알았겠지.


그 시절로부터 8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하면, 아니 오히려 그때만큼 치열하지도 않으면서 끊임없이 "왜?"라는 물음을 던지느라 멀리 가지도 못했다고 한다면 그 시절의 나는 지금의 나를 어떻게 생각하려나. 겨우 5m 차이처럼 느껴진다면 말이다. 그땐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이 없어서 아무것도 몰랐 다면, 지금은 목표가 있어도 인생에 변수가 너무 많 다는 걸 알기에 또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살아간다. 당장의 하루 앞도 확신할 수 없는 스물여덟의 오늘.


겨우 5m 거리에 선명한 목표 하나 없는 지금, 나는 훨씬 더 불안해야 하는 걸까. 다행이라면 그래도 괜찮다고 대답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의 목표만 바라보던 그 시절과 달리 더 뾰족한 목표 없이 부유하는 상태로 살아도 그런대로 괜찮다. 그때의 나보다 딱 하나를 더 알아서다. 무슨 일이 있든,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결국 나는 괜찮다는 결론을 내릴 거라는 것.


왜 나는 이것밖에 안 되는 인간이냐며 슬퍼했던 날에도, 지지부진한 나의 속도에 진절머리가 나는 날에도 내린 결론은 결국 다 괜찮을 거라는 것이었다. 지금은 안 보이는 것들이, 자꾸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는 모래알 같은 시간이 지나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의미를 드러내곤 했으니까. 섣불리 어떤 결론을 내리고 내 마음에서 종결짓지만 않는다면 언제나 그랬다. 결말을 비워둔 채 시간과 내가 그렇게 힘을 합치면 조금 더 담담하고 단단한 문장으로 이야기를 마무리지을 수 있었다.


여전히 인생에, 그리고 마음에 위기가 올 때 마다 의연하긴 물론 개뿔이다. 배게 잎에 눈물 자국 만들어가며 누구보다도 열심히 힘들어한다. 그래도 재수 시절 이후로 약 8년간 반복된 학습 속에 이제야 비로소 아주 조금 몸에서 힘을 빼고 파도를 타는 중이다. 좋은 순간도 나쁜 순간도 결국 지나가는 순간이고, 또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겠지 하며 말이다. 그러기에 나는 시간이 조금 걸릴지라도, 하나의 이야기 끝에 구체적으로 어떤 결말을 쓰게 될지 몰라도 해피엔딩으로 먼저 결론내릴 수 있는 사람임을 믿는다.


온전히 만족스럽진 않아도 군데군데 비어있고 돌아가고 앞으로도 또 기똥차게 헤맬 것 같지만 그런대로 지금이 썩 나쁘진 않다. 지금까지의 8년이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의 8년도 그럴지도 모르겠다. 과거의 내 모습을 보니 미래의 내가 보인다. 재수학원과 사무실 사이의 5m 남짓한 거리, 그 사이에 나의 인생이 있었고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지만 뭐, 나쁘지 않다. 5m가 아니라 같은 공간에 있더라도 괜찮을 거라는 게 지금의 내가 내린 결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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