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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네니 Oct 27. 2024

관계에 있어서는 과거에 머무르고 싶다

관계 맺음에 대하여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많은 시간이 흘렀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 것만큼은 자신 있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들어 문득 자신 없는 일 중의 하나가 된 느낌이다. 특히나 여러 차례의 진급 누락은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음을 알게 해 주었고, 자신 있게 손들 수 있는 일 또한 없음을 인정하게 해 주었다. 여기서 끝날 것 같은 자존감 하락은 육아를 통해 만들어진 관계까지 확장되었다. 나름대로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한 지난날이었다. 아이들에게 좋은 것을 먹이고 도움이 될 만한 놀거리를 제공했으며, 많은 경험을 할 수 있게 나들이도 자주 떠났다. 그저 안전하게 먹고 쑥쑥 크기만 하면 되는 영아기를 지나 유아기가 되니 아이가 배워오는 것도 궁금해하는 것도 많아진다. 당연히 유치원의 힘을 빌렸고, 그곳에서 배우는 것이 충분하다 믿고 나아갔다. 아이가 원할 때 겨우 미술 사교육을 시작했고 원치 않는 것은 과하게 시작하지 않았다. 아이는 아이의 속도에 맞게 자랐다. 한글을 읽는 것도 늦었고 새로운 세상에 관심 가지는 것도 빠르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 모든 것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그저 행복이 삶의 1순위라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랬던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고 사교육을 당연하게 시켜온 주변 사람들을 만나면서 내 마음도 덩달아 흔들리기 시작했다. 학년이 높아질수록, 학업의 차이가 벌어질수록 내가 너무 미리 접하지 않게 이끌었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주변 아이들은 교육을 과하게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의 속도대로 흘러가는 게 맞다고 생각해 왔던 믿음에도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아이를 재촉하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했다. 아무 잘못 없는 아이를 위한 과한 표현은 결국 나를 채찍질하는 외침이었다. 엄마가 부지런히, 많은 것을 제공해야 아이가 쏙쏙 받아먹을 것이란 잘못된 믿음. 어느 날의 일요일, 아이와 함께 영어 듣기를 하고 있는데 졸음이 밀려왔다. 도저히 참지 못해 아이에게 잠깐의 휴식을 제안하고 낮잠을 잤다. 잠에서 깬 후 학창 시절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공부를 시작하기만 하면 잠이 왔던 그때의 모습을, 시험 기간에도 10시면 꼬박 잠자리에 들었던 그날의 내 모습이 말이다. 그래, 나도 그랬는데 아이에게 내 모습 이상의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결국 모든 것은 부진했던 나의 지난날을 뛰어넘게 만들기 위한 내 작은 욕심이 아니었을까. 


숲에서 노는 것, 곤충을 관찰하고 알밤을 따는 것조차 돈을 지불하고 행해야 하는 세상에 살고 있음을 마주하고 마음에 부담이 커지기 시작했다. 무언가 하나 프로그램을 등록하려 해도 엄마들의 정보력 싸움이 시작되고 빠른 선택을 요하게 된다. 특정한 시기마다 몸은 회사에 있지만 신경은 언제나 아이를 위한 활동에, 프로그램 등록에 온 정신을 집중한다. 신청하지 않으면 마치 우리 아이만 뒤처지는 것처럼 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아이를 위한 활동을 찾아 나서는 일에 전전긍긍한다. 그러다 보니 내 마음은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아이를 위함이란 핑계로 나를 구렁텅이에 빠뜨리는 느낌이 들었다. 정작 나 자신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마음으로 살아가면서 왜 아이만큼은 꼭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걸까.

 과하게 많은 활동을 시켜야 아이를 잘 키우는 것처럼 느껴지는 세상이다. 주변의 엄마들을 만나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과거에는 무엇을 했는지 듣게 되고 정보의 홍수 속에 빠지는 일이 잦아진다. 나는 일하느라 바빠서, 여력이 안 돼서 시키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했는데 또 다른 워킹맘은 일을 하면서도 아이의 시간표를 다양하게 짜서 부지런히 움직인다. 퇴근 후에도 주말에도, 만나는 사람의 범위가 아이와 관련된 사람이 많아지다 보니 그 관계 속에서 자연스레 교육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게 되고 그 이야기들은 내게 또 다른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그렇게 문득 예전의 순수했던 관계를 떠올리게 된다. 아이가 뒤집고 걷고 뛰는 것만으로도 함께 즐거웠던 그 시절의 인연이, 과하게 신경 쓰지 않아도 그저 흘러갔던 그 시절을 그리워하게 된다. 인간의 관계 맺음은 어디까지 나아가게 되는 걸까. 나는 그저 편안하고 즐거운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진화하지 못하고 퇴색하는 방향이 될까 봐 오늘도 옳음의 정의를 찾아 헤맨다. 워킹맘의 정신력은 어디까지 열려있어야 할까. 조금은 자유롭고 편안한 일상을 살아가고 싶다. 육아의 순간마다 과하지 않음을 유지하는 평정과 엄마의 마음 돌봄이 필요하다. 가끔은 조급한 마음에도 브레이크를 걸면서, 과거의 편안했던 그 시절을 떠올리며 온화한 엄마가 되어볼 것. 나를 위한 오늘의 숙제를 떠올리며 사랑 가득 담은 눈빛으로 아이를 바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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