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와 취향에 대한 생각
20대 젊은 날들엔 취미라는 단어를 마음에 품고 살았다. 학창 시절엔 특별한 취미생활을 즐길 여유가 되지 않았기에 공부하러 들른 도서관에서 읽는 과학동아 한 권이 꿈을 키우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유일한 수단이자 학업에서 벗어나는 돌파구였다. 스무 살이 되고서부턴 친구들과 어울리느라 매번 방학 때마다 한 짐 둘러매고 떠나는 여행이 취미이자 특기였던 시절도 있었다. 자신감이 넘치고 세상에 대한 탐구심이 강했던 시절, 자취조차 해보지 않았던 내가 방학 통째로 서울에 머무를 정도였으니 내 인생에 있어 그때의 호기심을 이겨낸 시절은 없었던 것 같다. 직장에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내 돈 쓰며 즐기는 취미란 걸 즐길 수 있었는데 시간적 여유만 생기면 여전히 여행을 다녔고, 매일 새벽 수영장부터 가는 게 일과의 시작이었다. 그때는 그저 지금 순간을 즐기자는 생각으로 하루하루 보내왔는데 그 시절을 기록으로 남겼으면 ‘수영’이란 주제로도 책 한 권 만들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운동에 심취한 날들이었다. 아이 낳고 기르며 우연히 독서를 취미로 가지게 되었다. 집 밖에 나가지 않고 아이가 잘 때 고요히 할 수 있는 일이 책 읽기밖에 없었다. 읽다 보니 따라 쓰게 되고 내 생각 또한 글로 풀어나가는 과정을 몇 년에 걸쳐 행하고 있는데, 그 과정속에서 취향이란 단어를 발견했다. 단순히 행하기만 하는 취미 활동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자신만의 온전한 취향을 찾고 기록하는 일의 재미를 알게 되었다. 취미만으로 지속하기 힘든 일에 취향이 함께 하면 꾸준히 지속할 힘이 생긴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 책을 읽기만 하면 기억에 남는 것도 없고 지루함을 동반한다. 읽기에 쓰기를 더하면 재미가 증가하고 기억에 남는 것도 많아지는데, 단순히 읽고 쓰는 행위를 넘어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기록이 필요하다. 블로그든 인스타그램이든 누구나 볼 수 있는 공개된 공간에 내가 읽은 책을 기록하면서 남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책 사진 한 장을 찍기 위한 아이템이 필요했다. 연필이든 노트든 플래그든 무엇이든 함께하면 예쁜 사진 한 장을 찍을 수 있다. 조금은 과시하기 위한 사진 한 장을 찍기 위해 나는 학창 시절에도 없었던 문구에 대한 욕심이 커졌고, 좋은 노트와 펜을 쓰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책 사진의 뒷배경이 되는 나무의 색깔과 결까지도 관심 두게 되었고 그렇게 내가 좋아하는 색감의 가구를 찾으며 내 취향을 찾아가게 된다. 때론 짙은 색이 좋았다가 자연스러운 오크의 색상이 좋을 때도 있었고, 깔끔한 흰색이, 자연의 모습이 좋을 때까지. 그때그때 다른 배경에 관심 가지는 나를 보면서 나는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구나! 깨닫게 된다. 책을 읽지 않을 때는 몰랐던 나의 모습들이다. 살림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책과 친해지면서 이상하리만큼 가구에 관심 두는 나를 발견했고, 아기자기한 소품을 좋아하는 나를 마주하면서 취향이란 이런 거구나 생각하게 된다. 단순히 취미를 즐길 때와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그리고 달라지는 취향을 기록하다 보니 나란 사람을 더 자세히 알게 된다. 조금 더 세밀하게 내면과 소통하고서는 물건을 살 때도 아무렇게나 덜컥 사버리는 일이 줄고 여러 차례 생각하고 보고 느끼며 신중하게 선택하게 되었다. 나의 취향을 존중하기 위해서. 그리고 사람을 보는 시선 또한 변해버렸다. 무언가 대단해 보이는 실적에만 집중하는 사람보단,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정확히 알고 그 일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자기만의 방법으로 걸어 나가는 사람이 아름다워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닮아가고 싶은 모습도 그런 모습이다. 나만의 향기가 풍기는 사람, 나만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 나이가 들어갈수록 조금 더 단단히 쌓아가고 싶은 건 취미가 아니라 취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