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대학 입학 결과를 되돌아보며
올해 3년 만에 3학년을 다시 맡으면서(재작년부터 순차적으로 데리고 올라온 학생들이라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과학중점반을 담임으로 신청하는 도전을 해보았다. 수학을 싫어해 영어과에 온 입장에서 그리고 지난 9년간의 3학년 담임을 오롯이 인문반 입시만 담당해온 입장에서 과학중점반(소위 자연반) 입시는 내 입시 인생의 최대 도전이자 종점을 찍을 것이라고 직감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코로나 19로 인해 개학이 늦어진 상황에서 학생들에게 독서과제를 주고 보고서를 제출하게 하였다. 피드백을 해주고자 이메일을 연 순간 우리 반 1번의 독서-책 제목도 기억 안 난다- 보고서 주제가 '양자컴퓨터'였다. 이어서 다른 학생들 중에는 '맥스웰 방정식 탐구', '깁스 자유에너지 탐구' 등의 어려운 낱말들로 가득 채운 보고서를 보며 아연실색했다.
문과 위주로 (작년에는 경제반을 맡아 주로 경제 책을 많이 읽었었다.) 가르쳐 온 내가 이런 보고서를 대상으로 감히 제대로 된 피드백을 해줄 수 있을까라는 심각한 자괴감과 두려움에 빠지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과학도서들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슈뢰딩거의 고양이'실험으로 양자역학을 촉발시킨 당사자인 '슈뢰딩거'조차 양자역학은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없으며, '아인슈타인' 역시 거부반응을 일으켰던 이 이론을 학생들이 읽고 탐구한다고? 그럼 나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힘들어도 꾸역꾸역 읽어 나갔다. 세부적인 공식들이나 이론들 앞에서 문과생의 한계를 절감하기도 하였지만 그럼에도 영화나 만화에서만 나왔던 시간 탐험, 양자 세계, 양자 폭탄 및 전자총이 현실감 있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덧 수업시간에 양자역학을 가지고 농담하고 있는 나 자신과 학생들의 놀라움이 섞인 반응들을 즐기고 있었다.
오늘은 양자역학의 세계를 탐험...... 할 것이 아니라 양자역학 책을 읽으며 느낀 인문학적 관점을 같이 나눠보고자 한다.
양자역학의 핵심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실험으로 전자나 빛이 2개의 구멍을 통과한 후 스크린에 나타나는 모습을 관측하는 실험이다. 대상이 입자일 때는 즉 실험자가 관측을 할 때는 슬릿 중 한 군데로만 빛이 통과한 흔적을 뒤의 스크린에 남기지만 관찰하지 않을 때는 양쪽 슬릿(구멍) 모두를 통과한 빛의 흔적을 스크린에 남긴다. 즉, 빛이라는 대상이 입자(관측할 때)냐 파동(관측하지 않을 때)이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과를 남겨 과학자들에게 심오한 과제를 남겨준 것으로 유명하며 이로 인해 양자역학에 대한 격렬한 토론들이 생겨난다.
(자세한 것은 전공자에게 물어보자.)
양자역학 관련 책을 읽으며 계속 반복되는 말 중의 하나는 '측정'과 '중첩'이었다. 그렇다면 측정의 주체자는 누구인가? 과학자들? 공기? 빛?
쉽게 얘기하면 피 관측자의 여집합이라고 보면 될 듯하다.
환경을 떼어놓고 보면 그 물제(빛)는 양자역학의 법칙에 지배를 받아 파동으로서 A와 B 구멍을 동시에 통과할 수 있는 말도 안 되는 현상을 보여줄 수가 있다.
그렇다면 원자로 이루어진 우리 인간 역시 빛처럼 양쪽 모두를 동시에 통과할 수 있을까? 그럴 순 없다.
인간은 환경(측정자)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도 관찰당하는 순간 A와 B 슬릿 모두를 통과할 수 있는 가능성 대신 어느 하나 만을 통과해야 하는 운명을 가지게 되는지는 모르겠다.
우리도 원래는 빛나던 존재였다.
입자도 되고 파동도 되며, 서로 극단의 장소(A, B 슬릿)를 모두 경험할 수 있는 가능성이라는 잠재력을 지닌 존재였다.
하지만 태어나면서부터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의 꾸준한 시선과 돌봄 속에서 관측당해왔다.
그들의 관찰에 의해 그리고 환경의 압박에 의해 우리는 가능성을 제거 당한채 하나의 목표(A 슬릿)를 향해서만 달려 나간다.
의사, 판검사, 변호사, 고위 공무원, 대기업 회사원 등 부모님들이 정해주는 직업만을 가능성이라고 생각한 채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학교 시험이라는 측정을 당하며 그나마 있던 B슬릿을 향해 꿈꿔왔던 가능성도 사라지게 된다.
특히 진로진학을 담당하며 학생들과 부모님들을 상대하다 보면 이러한 현상을 자주 경험한다. 자녀의 대학입시조차 주변 엄마 친구들, 친척들의 시선이라는 눈치를 살피는 경험을 말이다. (물론 나 조차도 쉽지 않을 듯하다.)
그래도 언젠가는 해당 학생들의 꿈과 역량이 얼마나 이루어지고 향상되었는지 판단하는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