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noring a War Hero: 국가 경영의 지혜
2017년 1월 미국 해병대는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병력을 전투부대에 배치한다고 발표하였다. 3명의 여성 해병대원이 North Carolina에 주둔하는 미 해병 8사단 1대대의 기관포 사수, 소충수 및 박격포병으로 임무를 부여받은 것이다. 그러나, 이들 3명의 여성 대원보다 65년 앞서 실제 전투 현장에 투입되어 美 해병대 역사상 가장 치열한 전투에서 혁혁한 무공을 세운 여군 용사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한국 출신의 미 해병 Reckless 하사이다.
Staff Sergeant Reckless 하사(1949 - 1968)는 미 해병 제 1사단 제 5 연대 대전차 중대 무반동화기 소대의 수송병 군마(軍馬)로 1952년 10월 입대하여 1953년 정전까지 한국전에 참전한 제주 암말이다. 미 해병대 역사상 유일하게 정식 계급장을 획득한 동물 용사로서 2개의 퍼플 하트 훈장, 해병대 모범 근무장, 한국과 미국의 대통령 표창에 빛나는 Reckless 하사는 1960년 11월 미 해병 5 연대 본부인 Camp Pendleton에서 성대한 전역식의 영예를 받으면서 현역에서 은퇴하였다.
Reckless 하사의 무공과 무용담은 한때 세간의 기억에서 사라지는 듯했으나, Sgt. Reckless: America's War Horse의 저자인 Robin Hutton과 동료 참전용사의 노력으로 다시 빛을 보게 되었다. 한국전 정전 60주년을 하루 앞둔 2013년 7월 26일, 미국 버지니아주 국립 해병대 박물관의 Semper Fidelis 기념공원에서는 James Amos 해병대 사령관을 비롯하여 주요 해병대 지휘관 및 동료 참전용사와 가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Reckless하사의 동상 제막식이 거행되었다.
She wasn’t a horse. She was a Marine, a real Marine.
Reckless 하사는 한국전쟁 당시 서울 성수동에 위치한 서울경마장에 소속된 '아침해'라는 이름의 경주마였다. 마침 75mm 무반동화기의 탄약 수송을 위한 수송용 군마(Pack horse)를 찾고 있던 소대장 Eric Pederson 중위는 경마장에서 '아침해'를 첫눈에 알아보고, 지뢰에 다리를 잃은 누이의 의족을 사기 위해 돈이 필요했던 말 주인에게 $250(현재가치 약 $2,500)을 주고 구입한다. 하루아침에 '아침해'의 인생은 경주마에서 군마로 운명이 바뀌어 미 해병대에 이병으로 입대하고, 무반동화기의 별명을 따서 'Reckless'라는 새로운 이름도 얻게 된다.
142cm의 키에 410kg의 몸무게의 Reckless는 Pederson중위의 무반동화기 소대에서 Pack horse, 즉 물자 수송마의 보직을 부여받는다. 특히, 무반동화기의 특성상 전선에서 계속해서 사격 위치를 이동해야 하는 무반동화기 대원들에게 무게가 11 kg에 달하는 탄환을 보급해 주는 임무에 Reckless가 안성맞춤이었다. 한 번에 6개에서 많게는 10 개까지의 탄환을 지고 무반동화기 대원들에게 운반하는 훈련과 함께, Reckless는 전선에서 신호를 주면 땅바닥에 엎드리거나 참호에 숨는 실전 훈련도 받는다.
평상시에는 일반 보급물자를 나르고 통신선 설치 등의 임무를 수행한 Reckless는 금세 부대원들과 친해져서, C-ration이나 콜라는 물론 맥주까지 얻어 마시고 밤에는 부대원들의 막사로 쳐들어가서 같이 자기도 하였다. 수송마로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 Reckless는 산악지형의 전선에 통신선을 설치하는 임무에 있어 혼자서 일반 병사 12명의 몫을 해내었다고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주목할 Reckless의 역할은 탄약 수송마로서의 활약이다. 말은 피식 동물의 특성에 따라 수상한 소음에 도망을 하는 것이 본능이지만, Reckless는 신기하게도 무반동화기의 큰 발사 소음뿐 아니라 전선의 다양한 소음에 빨리 적응하였다. 또한 심한 경우 45도 경사의 산악지형의 전선에서도 Reckless는 지치지 않고 신속하게 탄약을 혼자서 전달하였는데, 1953년 2월의 어느 전투에서는 하루 동안 24번에 걸쳐 1,600kg의 탄환을 전달하면서 32km의 거리를 이동했다고 한다.
한국전쟁의 막바지인 1953년 3월 한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한 일진일퇴의 치열한 공방 속에, 3월 26일 중공군의 총공세에 밀려 27일 새벽 미 육군과 해병대는 판문점 인근의 Reno 고지와 Vegas 고지로부터 후퇴한다. 하지만, 후방에서 전열을 가다듬은 미 해병 5 연대는 곧바로 27일과 28일 이틀에 걸친 반격을 통해 Vegas 고지를 탈환한다. ‘Vegas 고지 전투’(Battle for Outpost Vegas)로 알려진 이 전투에서 Reckless는 72시간 동안 빗발치게 쏟아지는 포탄과 탄환을 무릅쓰고 무반동화기 탄환을 동료 부대원들에게 전달하는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당시 Vegas 고지를 둘러싼 미군과 중공군 간의 공방은 3월 한 달 동안 미 해병 1사단은 1,000여 명 그리고 중공군은 그 두배에 달하는 사상자가 발생할 정도로 치열하고 처절하였다.
소대장 Pederson 중위의 기록에 따르면, Reckless가 27일 하루 동안 51차례에 걸쳐 4,000 kg에 달하는 386개의 탄환을 탄약보급소로부터 전선의 무반동화기 사수들에게 험준한 산등성이를 타고 전달한 거리는 무려 56 km에 이르렀다. 뿐만 아니라, 한 번은 파편이 왼쪽 눈 위를 스치면서 부상을 입었고 또 한 번은 왼쪽 옆구리가 찢어지는 부상을 당했지만, Reckless는 부상 치료를 받고는 다시 임무 수행을 위해 전선으로 나섰다. Reckless는 이러한 용맹성과 전우애로 인하여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같이 근무했던 해병전우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심을 얻었다.
This mare will never have anything on her back again but a blanket.
1953년 7월 한국전쟁의 휴전이 이루어지고, 본국으로 돌아간 많은 전우들은 Reckless가 미국으로 전배 되길 원했다. 한국전 말기에 Reckless 소속 부대의 대대장으로서 Reckless의 무공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많은 정보를 수집하여 나중에 그에 대한 책까지 출간한 Andrew C. Geer 중령을 포함하여 많은 옛 전우들이 노력한 덕에, Reckless는 1954년 11월 10일 드디어 전쟁 영웅의 대접을 받으며 미국 땅을 밟게 되었다.
미 해병 1사단 5 연대 본부인 Camp Pendleton에 배속된 Reckless에게 내려진 1사단 내부 규정은 “앞으로 담요 외에는 어떤 것도 등에 지지 않도록 할 것”이었다. 1959년 8월 31일 Reckless는 하사로 진급한다. 한국에서부터 당시 해병 1사단 사령관으로 Reckless에게 병장 진급식을 거행해 주었던 Randolph Pate 대장은 이제 미 해병대 사령관으로서 Reckless의 하사 진급식을 직접 주재하였다. 이날 진급식에는 Reckless 하사를 축하하는 19발의 예포와 함께 해병 5 연대 소속 1,700명의 병사들이 열병식을 거행하였다. Fearless, Dauntless와 Chesty 세 마리의 숫 망아지를 낳은 Reckless 하사는 1960년 11월 10일 성대한 전역식을 마지막으로 현역 복무에서 은퇴하였고, 1968년 5월 13일 20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다.
한국전쟁 정전 60주년 하루 전인 2013년 7월 26일 미국 버지니아주에 있는 국립 해병대 박물관에서는 Reckless 하사를 기념하는 특별한 행사가 거행되었다. 미 해병대의 신조인 Semper Fidelis “언제나 충성스러운”에 따라 명명된 Semper Fidelis 기념공원의 한 언덕에서 Reckless 하사를 기념하는 동상 제막식이었다. Reckless 하사의 기념 동상은 조각가 Jocelyn Russell의 작품으로, 한국전에서 전선의 동료에게 전달할 4개의 무반동화기 탄환을 등에 지고 가파른 언덕을 오르는 Reckless의 생생한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미 해병대 박물관 역사상 최초의 동물 용사를 위한 동상 제막식에는 James Amos 미 해병대 사령관 부부, 부사령관 부부 및 주임원사 등 해병대 주요 간부들과 함께 Reckless 하사의 옛 전우과 그 가족들이 참석하였다. 이날 행사에 참석하여 전우를 대표하여 축사를 Harold Wadley 병장(전)은 Outpost Vegas 전투 당시 Reckless의 무용을 다음과 같이 회상하였다:
“Surely, an angel had to have been riding that mare,” he said. “Winston Churchill once said, ‘If you find yourself going through hell, don’t slow down.’ Well, Reckless never slowed down.”
분당 500발에 달하는 적군의 포화와 아군의 포화가 공중에서 서로 충돌하는 와중에서도 끊임없이 전선의 동료들에게 탄환을 보급하는 자신의 임무를 무사히 수행하는 Reckless를 보고 있었다면, 신이 보낸 수호천사가 Reckless를 보호하고 있다고 믿을 수밖에 없었을 것을 같다.
2016년 7월에는 영국의 동물 보호 자선단체인 PSDA가 군부대 및 민방위대에서 복무한 동물들의 뛰어난 용기와 헌신을 인정하여 수여하는 PSDA Dicken Medal이 Reckless 하사에게 추서 되었다.
Reckless 하사의 인생, 아니 마생 역정(馬生 歷程)을 보면 두 가지 의문이 든다.
첫 번째는 보통 말은 피식 동물로서 잘 놀라고 쉽게 겁을 내는 동물로 알려져 있는데, Reckless 하사는 탄환과 포탄이 쏟아지면서 소란스러운 전장에서 어떻게 지속적으로 자신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인가?
아마도 Pederson 소대장과 Reckless를 처음부터 맡아서 돌보며 훈련시킨 병사들이 군 입대 전에 고향에서 말을 다룬 경험을 가지고 말의 특성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Reckless 하사가 입대해서부터 병영생활뿐 아니라 임무 수행을 위한 훈련과 전선에서의 실제 상황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긍정적’ 피드백과 경험을 통해 전장의 상황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잘 길들여졌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Reckless 하사는 무반동화기 소대원들을 자신이 암말 리더로서 거느리는 말 떼의 일원으로 인식하고, 그들의 리더로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두 번째는 미국민들은 한 마리 말에 대해서 이렇게 많은 사랑뿐 아니라 존경과 예우를 베푸는 것일까?
우선 Reckless 하사의 먀생 역정(馬生 歷程)은 소설보다 더한 반전과 감동이 있는 실제 스토리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미국이라는 민주공화국에 체화된 국가 경영 노하우라고 생각한다. 국민의 생명과 안위를 지키는 것이 국가의 제일 중요한 의무라고 할 때, 자신의 생명에 대한 위험을 무릅쓰고 동료 전우와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행위야말로 국가가 그 구성원들로부터 가장 필요로 하는 행위이다. 따라서 국가와 국민은 그러한 희생을 감수한 구성원에 대해서는 최대의 예우와 명예를 부여하여 만인의 본보기를 만듦으로써, 그 구성원을 사후적으로 보상할 뿐 아니라 모든 구성원들에게 사전적으로 동기 유발하는 메커니즘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그 대상이 말(馬)이거나 개(犬)와 같은 동물일 경우에도 똑같은 원리가 작동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21세기에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는 대한민국. 진정한 애국의 의미를 되찾고 국민의 반을 구성하는 여성의 기여과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고 인정하고자 하는 오늘날, Reckless 하사의 무공은 우리나라에서도 재조명되어야 할 한국 역사의 일부이기도 하다. 65년 전 시대를 앞서 갔던 Reckless 하사의 본보기가 우리의 젊은 세대들에게 재조명되는 기회가 있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