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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영석 Nov 17. 2019

여행의 이유

여행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것들

제주도 여행을 왔다가 돌아가는 길이다. 떠나올 때의 마음과 돌아갈 때의 마음이 다른 것이 여행의 매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이번 여행은 가벼운 마음으로 떠나와 무거운 마음으로 돌아가는 여행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 마음의 무게 또한 다시 어느 곳으로 기울어져 흘러가겠지만 아직 잡고 있는 어떤 것들을 오늘은 조금 잡아둘 생각이기에 몇 자 적기로 마음먹었다.


언젠가 소중한 사람이 나에게 해주었던 말을 요즘 많이 생각한다. 마음이라는 하천을 잘 들여다보고 잘 흘러가도록 잘 보내주라는 말. 우리 안에는 슬픔만큼이나 기쁨과 환희의 하천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고마운 그 말.


여행을 떠나온 첫날은 3년 전 핀란드에서 누나가 하늘나라로 떠났다는 연락을 받았던 날이다. 음력으로 기억하는 기일은 지난주이기에 지난주에 누나를 만나러 추모공원에 다녀왔지만 나에게 더 선명한 날은 사실 매년 같을 수밖에 없을 테니 그래서 이번에는 내 마음의 하천을 들여다보고 흘러 보내려 떠나왔다. 조용하고 차분한 여행을 할 수 있는 제주도라서 더 좋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좋은 시간을 보냈고 함께해준 친구에게 참 고맙다.


여행의 마지막 날인 오늘 오전에는 SNS로 접한 유명한 카페를 찾았다. 조용한 언덕에 있는 카페의 건물을 바라보다가 문득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있는 봉분에 시선이 머물렀고 삶과 죽음은 서로의 반대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토록 가까운 곳에서 인생이라는 하나의 여정 안에 함께 내재하고 있다*는 하루키의 문장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예정보다 일찍 돌아가게 된 친구에게로 걸려온 갑작스러운 전화 한 통이 그랬고 내가 이 여행을 떠나온 출발점이 그러했다.


나는 무력감에 나약한 사람이다. 서울로 돌아가는 동안 나의 마음은 조금 무거우며 조금 무력하여 나는 한없이 나약해질지도 모르겠지만 무력감은 나로 하여금 다시 글을 쓰게 한다. 그 어떤 강인함도 상실 앞에서는 무력하다* 라고 또다시 하루키가 말했듯이 내가 지금 다시 글을 쓰는 것은 자연의 섭리 앞에서 나약해질 수밖에 없는 한 인간으로서 잃어버렸거나 잊어버렸을 어떤 강인함을 스스로에게 다시금 되새기는 일인지도 모른다. 


아무쪼록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나의 안녕과 당신의 안녕을 바라며.



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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