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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영석 Nov 17. 2019

새로 배운 습관

2018년 07월 01일 광화문 교보문고


“이게 뭐예요?”

“뭐요?”

“여기 책 앞에 쓰신 거요.”

“아, 책을 산 날짜와 장소를 적어둔 거예요.”

“이걸 왜 적어두시는데요?”

“그냥요. 이유는 없어요. 그냥 제 습관이에요.”

“우와 그 습관 제가 조금 배워도 되나요?”

(웃음) “네 얼마든지요.”


지인 분의 책 앞 장에 날짜와 장소가 적혀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책을 깨끗하게 읽는 걸 선호하는 사람이기에 당시에 그것이 왜 그렇게 매력적으로 느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유 없는 습관이 왠지 이유 없이 멋있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그때부터 새로운 습관을 만들기 시작했다. 물론 아직 완벽히 내 것이 된 건 아니지만, 책을 새로 살 때면 가장 앞 장에 그날의 날짜와 장소를 잊지 않고 기록해두려고 한다. 그리고 처음 기록을 했던 날의 일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책 앞에 작은 기록 하나로도 삶이 아름다워진다고 생각했다. 책을 읽으며 좋은 문장이 있는 페이지를 접어 놓듯이 이 작은 기록 하나가 나의 계절 한 귀퉁이를 접어 놓겠지. 그리하여 한 번씩 펴본 계절로 걸어 들어가 나는 계절의 모서리에 물을 줘야지. 아름다운 추억으로 자라날 것들. 살면서 얼마나 많은 계절에 들러 물을 주고 돌아올지. 살아가며 나는 더 많은 계절에 접혀 있기를. 그렇게 나는 삶과 함께 늙어 가야지. 


기록을 하는 유익함 중에 좋은 것 중 하나는 지난날의 나를 오늘의 내가 만날 수 있다는 것. 거기에는 나뿐만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도 함께 등장한다. 나만의 영화는 누가 만들어주지 않으며, 나의 역사를 누가 기록해주지 않는다. 그것을 온전히 나의 힘으로 하는 것. 이것이 '기록하는 유익함'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짧은 메모가 되었던, 긴 글이 되었던, 한 장의 사진이 되었던 어떤 형태로든 가능하다.


2018년 07월 01일

광화문 교보 문고


삐뚤빼뚤 짧은 시간에 썼을 날짜와 장소를 조용히 바라본다. 덕분에 여행을 한다. 현재가 아닌 과거로. 떠나야 우리는 돌아올 수 있다. 과거는 오래전에 살았던 집이라서. 이제 더는 매일 머무는 곳이 아니라서. 시간을 내어 찾아가야 하는 곳이며 아늑하지만 그립고, 아득하지만 기쁜 곳이다. 그곳에서는 기쁘기도 슬프기도 불행하기도 행복하기도 하였다. 


벽이 단단히 서 있는 이유는 우리에게 추억을 걸어 두게 하기 위함이고 우리는 문을 열고 들어가 걸려있는 시간을 바라본다. 그리워한다. 문을 닫고 돌아온 현재는 어떤 모습으로 벽 위에 걸릴까. 우리는 돌아보거나 나아가거나 삶은 둘 사이를 오가는 것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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