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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영석 Nov 17. 2019

패럴림픽

나란히 걸어가는 사람

패럴림픽을 보며 패럴림픽이 무슨 뜻인지 궁금하여 찾아보았더니 '파라'와 '올림픽'의 합성어라고 한다.


'파라'는 척추 상해자들끼리의 경기에서 비롯된 단어에서 시작되었지만 이후에 그리스어 '파라'로 변경되었고, 그리스어 '파라'는 '옆에 나란히라는 의미'를 가지며 '올림픽과 나란히 치러지는 축제'라는 의미를 되새긴다. 


그리스어 '파라'라는 단어 하나가 마음속에 들어와 기억 하나를 비집고 들어갔다. 누나가 많이 아플 때 말을 잘 못한 적이 있었다. 한 번은 의사소통이 거의 불가능하여 누나에게 요즘 책 읽는 연습을 하고 있는지 물었었다. 누나가 요즘은 피곤한지 잠을 많이 자서 책을 거의 읽지 않는다고 어머니께서 누나 대신 대답하셨다. 


누나가 또 무엇을 말하려고 해도 나는 전혀 알아듣지 못하였다. 그게 답답했던 나는 누나에게 누나가 책 읽는 연습을 게을리하면 나를 비롯한 가족들과 대화를 하기가 힘들다고 의사소통이 돼야 대화를 이어나가는데 누나가 하는 말을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면 어떻게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겠냐고 누나가 앞으로는 책 읽는 연습을 많이 했으면 좋겠다고 아주 철없고 못난 소리를 했던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왜 그리스어 '파라'라는 단어의 의미처럼 행동하지 못하였을까. 옆에서 나란히 누나의 마음을 이해해주었어야 했다. 누나와 책 읽는 연습을 같이한다거나, 누나가 지금 말하는 게 조금 힘들면 하고 싶은 말을 글로 쓰면서 대화하자라던가. 얼마든지 누나를 이해할 방법이 있었지만 하나뿐인 동생이란 놈은 누나에게 상처가 되는 소리만 터진 입이라고 아무 생각도 없이 지껄였다. 


나는 누나를 이해하려고 맞춰보려고 해보지도 않고 오직 내 생각과 의견에 누나가 맞춰야 하고 그걸 누나가 이해해야 한다는 식으로 말했다. 내가 뱉었던 못난 몇 마디에는 누나가 없었다. 오직 나만 있었을 뿐. 


이런 이기적인 몇 마디에 누나는 얼마나 아팠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아프다. 

내가 뱉어내는 말들에 너는 없고 나만 있다면, 옆에 나란히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사랑하는 사람은 옆에 나란히 걸어가는 사람이다.

우리는 강요하지 않고 강요받지 않으며 동등하게 이해하고 이해받으며 옆에서 나란히 걸어가야 한다. 


그걸 항상 쉽게 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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