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감사하지만 자주 연락을 드리지 못해 죄송했던 학교 선배인 형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모바일 결혼식 청첩장을 보내주셔서 보고 있는데 얼마 안 되는 순간들이지만 함께했던 시간들이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가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나이가 드니 눈물이 많아졌다.)
“먹고 싶은 거 있음 뭐든 말하고 다 사줄게. 그리고 도와주다가 피곤하면 무조건 집에 자러 가라. 내 설계도 중요하지만 니 건강도 중요하니까. 그러니까 우선 밥부터 먹자. 뭐 먹고 싶노.”
건축과에서는 저학년들이 고학년들의 졸업전시회를 돕는 오더와 시다(또는 헬퍼)라는 개념이 있었고(시다라는 단어는 시다바리라는 일본어의 줄임말이지만 당시의 현실감을 위해 그대로 사용합니다. 부디 널리 이해를.) 나는 형님을 돕는 자리에 배정되었다. 처음 형님을 만났을 때 형이 내게 건넨 말은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내 건강을 챙기라는 거였고 우리는 밥을 먹으러 갔다. 한창 긴장한 탓에 밥이 어디로 넘어가는지는 몰랐지만 도와주러 온 사람에게 이거 만들어야 하고 저거 만들어야 하고 가 아니라 밥부터 먹자라고 하는 사람에게서 갓 지은 밥처럼 따듯한 온기를 느꼈던 순간이다.
“영석아 특급 시다 덕분에 내가 대상을 받았다!”
형이 졸업전시회에서 대상을 받았다고 연락해 온 메시지의 첫마디는 ‘특급 시다 덕분에’였다. 나의 노력보다 너의 노력이 이 상을 받을 수 있게 했다고 말해주는 형을 보며 이 사람이 나중에 건축가가 되어 회사를 이끌어 나갈 때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존중받으며 일할 수 있을지 부러웠다. 그게 내가 되어보고 싶었던 적도 있지만 나는 지금은 다른 일을 하고 있으니 패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밤 급하게 연락을 받아 찾아간 어두컴컴한 장례식장에서 형의 수척한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그날 우리 모두에게 말해준 것만 같은 “와줘서 고맙다.”는 짧지만 담담한 말이 내 마음에 남았다.
올해 처음으로 나간 북마켓에서 깜짝 방문하여 내 손에는 커피를 쥐여주시고 자신의 손에는 내 책을 쥐고 돌아가시던 형님의 뒷모습이 참 많이 든든했다. 그리고 다시 오늘 형님이 보내준 청첩장을 보며 많지 않아도 나에게는 소중한 순간들이 스쳐 지나가며 뭉클하며 울컥했는지도 모르겠다.
“행님 간다.”라는 말이 참 형님스럽다고 생각했다. 언제나 힘들 때든 그렇지 않을 때든 묵묵히 일희일비하지 않는 모습을 나 또한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던 사람. 그런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가는 길이 아름답고 소중하기를 바라며 축하드리는 마음으로 글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