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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영석 Nov 17. 2019

생각하는 만큼

자- 인생은 간단하고 행복한 거야

하루는 운동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데 초등학교 3학년이나 4학년 정도로 되어 보이는 아이들 여러 명이 앞에서 걸어가고 있었다 한 아이가 같이 놀다가 넘어졌는지 얼음주머니를 광대뼈 쪽에 대고 있었고, 옆에 아이는 그 아이를 부축하고, 또 그 옆의 아이는 다친 아이의 것까지 킥보드를 두 대를 끌고 가고, 자전거를 타고 발맞춰 가는 아이는 집에 가서 다친 아이가 해야 할 일들을 설명해주고 있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여 아이들의 대화가 들릴 듯 말 듯한 거리에서 뒤따르고 있었다



“뭐야 대박!”

‘왜? 왜?”

“구급차야 구급차!”

“무슨 일 있나 봐!”

“어디? 어디? 가보자!”



아이들은 일제히 우르르 구급차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다친 아이마저 구급차로 인해 자신의 아픔 따윈 잊어버린 듯이) 그 모습마저도 귀여워 구급차가 뭐가 그리 신기하다고 저리 뛰어갈까 하며 피식 웃었다. 뛰어가는 아이들에게서 시선을 거두며 떠오르는 하나의 생각은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구급차를 보고 아무렇지 않을 정도로 무뎌진 건지였다.


어릴 때는 크리스마스만 되어도 마음이 두근거려 숨기지 못하고 있으면 어머니는 나에게 갖고 싶은 것이 있는지 물으셨고 무선 조종 자동차를 갖고 싶다고 말했더니 산타 할아버지가 들을 수 있게 하늘에 대고 말하면 선물로 주실 거라고 하셔서 하늘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 지르던 나였는데 그리고 크리스마스 아침 트리 밑에 정말로 있는 무선 조종 자동차를 발견하고는 크게 감격하여 크리스마스는 왜 일 년에 한 번뿐일까 한 달에 한 번이면 좋을 텐데 라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며 기뻐하고 기대하던 나는 어디로 갔을까. 생각해보면 선물을 두고 간 사람이 아버지였거나, 학교 선생님이었거나, 이름 모를 아저씨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부터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나이를 먹을수록 그리하여 알게 된 게 많아질수록 이제 나는 세상만사가 다 그저 그런 일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고 생각하고 있던 건 아닐까.



“그건 너가 그렇게 생각하니까 그런 거지. 세상에 얼마나 재밌고 신기한 일이 많은데. 나는 얼마 전에 살면서 생전 처음으로 소개팅 어플로 만난 친구랑 대화를 하는데 너무 재밌더라 야.”



무뎌짐은 너의 마음의 문제라고, 소개팅 어플이 너를 구제해줄 수 있을 거라고 말하던 친구에게서 전자는 그럴듯하여 고개를 끄덕였지만, 후자는 단호히 사양했다. 그러나 나라는 세계의 원이 언제부터 성장을 멈춘 건지 생각하면 그 친구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그 친구는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원의 크기를 늘려가고 있는 것이었을 테니.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부터인가? 

아니면 직장을 들어가고 나서부터?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원은 이제 더는 커지고 있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사실 친구가 택한 방법도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방식에 있어서 나라는 사람과는 맞지 않지만) 여하튼 사람은 다른 사람을 만나면서 그 사람의 세계만큼 나의 세계도 넓어질 수 있으니까. 그게 우리가 모든 관계로부터 스스로 더욱 성장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그리고 꼭 관계로부터가 아니어도 자신 스스로 원을 성장시킬 수도 있는데 나는 요즘 그 두 가지 모두 무뎌진 느낌이 들었다.


그럼 나는 이러한 매너리즘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며 할 생각치고는 꽤나 멀리 간 것 같지만 집으로 걸어서 돌아오는 길도 꽤나 멀었기에 돌아오는 동안 내린 결론은 이거다.



사람을 만나고 책을 읽을 것.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강연을 내킬 때 한 번씩 들을 것. 



나이가 들면서 ‘나는 절대 ‘라떼 이즈 홀스’를 늘어놓으며 자신이 만든 틀 안에 스스로를 가두는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했는데 자신의 원을 그대로 내버려 두기 시작하면 언젠가 원은 틀이 되어 그런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은 어떤 외부의 자극으로도 열리거나 넓어질 수 있는데 그중 가장 좋은 방법은 사람을 만나고 책을 읽고 강연을 듣는 것이다. 


이 세 가지는 공통적으로 갖는 것이 있는데 바로 셋 다 이야기를 가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그 이야기 안에는 공통적으로 배움과 공감의 기회가 있다는 것. 공감은 내가 아는 것을 네가 알아줄 때 생겨나는 친밀감으로 배움을 통해서 형성되는 감정이다. 어떤 정보나 경험에 대한 배움이 있어야 나눠서 공감을 할 수 있으니. 


그러고 보면 아는 게 많아질수록 세상만사가 다 그저 그렇다는 나의 불만은 정말 친구 말대로 내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될 일이었다. 아는 게 많아질수록 오히려 나는 더 넓은 세상을 갖고 또 누군가의 세상과 포개어질 수 있을 테니까.


마이클 밀스 감독의 ‘비기너스;라는 영화에 좋아하는 장면이 있는데 꽃을 들고 있는 사진을 보고 주인공이 독백을 하는 장면이다. 어머니를 많이 따랐던 주인공이 다 큰 성인이 되어서 어머니를 회상하며 말하는 이 부분을 잠시 옮겨 오자면 이렇다.



이건 어머니 침실에 걸려 있던 사진이다.

어릴 땐 내가 엄마께 꽃을 드린다고 생각했다.

이젠 엄마가 내게 꽃을 주는 거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자 인생은 간단하고 행복한 거야

너에게 전해 주고 싶었던 거란다



인생은 결국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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