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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영석 Nov 17. 2019

어떤 사랑

그리고 사랑해

“괜찮아. 나는 괜찮아.”


누나는 매일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있었다. 뭐가 그리 괜찮은지 누나는 아무리 서운하고 기분이 안 좋아도 괜찮다고 했다. 


“괜찮아 나는 걱정 없으니 너는 밥 잘 챙겨 먹고 다녀. 추운데 옷 따듯하게 입어 감기 걸리지 말고.” 


누나는 매일 아침 항암에 좋다는 쓴 채소들을 넘기고 매일 무수한 알약들을 가까스로 삼켜내며 내 끼니를 걱정했다. 누나는 수많은 주삿바늘로 양쪽 다 시퍼렇게 멍들어버린 팔뚝을 가지고 끊임없이 계속되는 항암 치료를 버텨내며 내 감기를 걱정했다. 누나의 유서 아닌 유서를 보았을 때 나는 누나가 괜찮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누나의 스마트폰 메모장에 조용히 자리하던 유서는 이렇게 시작한다.


“이게 유언장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병원 치료 포기하고 싶다. 나한테 정말 왜 이러는 거야.”


누나에게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었던 말이 거기에 있었다. 사실 괜찮지 않았던 누나가 거기에 있었다. ‘괜찮아’라고 하던 누나의 웃는 얼굴 안에 누나의 우는 마음이 있었다. 나는 ‘괜찮아’라는 말이 얼마나 아픈 말인지 이제야 알게 되었다. 누나는 그 많은 약들을 삼켜내야 하는 부담감과 두려움으로 6년이 넘는 투병 생활의 마지막 6개월 동안 물 한 모금 못 마시고 떠났다. 그게 아팠던 어머니 아버지는 매년 누나의 기일마다 술이 아닌 물을 올린다. 유서의 마지막은 이렇다.


“제가 죽으면 장기는 기증해주시고 보험금으로 석이 유학 뒷바라지해주세요.”


나는 뒤늦은 후회를 하며 외국에서 돌아왔다. 열심히 살아 꼭 보답하겠다고 외국에 나가 공부하던 나를 떠올리면 끔찍하다. 저 혼자 잘 살아 보겠다고 죽어가던 누나를 뒤로했던 끔찍한 내가 거기에 있다. 


누나는 선생님이 되고 2년 후부터 아팠다. 선생님이 되고 누나는 기부를 시작했고 투병 생활 6년 동안에도 기부를 놓지 않았다. 어린 동생은 "제가 조금 여유로워지면 할게요." 라며 거리의 많은 손을 뿌리쳤을 때, 누나는 자신이 아파도 더 아픈 사람들을 위해 살았다. 그 기부는 이제 우리 가족이 이어서 하고 있다. 얼마 전 책 한 권을 읽으며 누나의 심정도 이랬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울었다. 책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슬퍼할 필요 없다. 슬픔은 이럴 때 쓰는 것이 아니다.”*


누나에게 평생을 못해준 동생은 누나를 잃고 슬픔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누군가 슬픔은 이럴 때 쓰는 게 아니라고 한다. 누나의 유언장 마지막 문장을 기억한다.


“그리고 사랑해.”


사랑이라는 것. 나는 슬픔을 알게 되었지만 동시에 사랑이 주는 위대함과 감사함을 알게 되었다.


어떤 사랑은 사람을

울게 하고

알게 하며

살게 한다


*김진영 <아침의 피아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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