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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뜩 찡그린 웃음

왜 이렇게 예쁜 걸까

by 연하일휘

시선의 끝에 붉은 혈흔이 묻어 있다. 애틋함과 걱정과 애정 등 여러 감정들이 뒤섞인 그 시선은 손이 쥔 가위의 떨림으로 거두어진다. 소리조차 전해지지 않는 가위질은 떨어지지 않는 시선으로 다시 이어진다. 아마 형부가 내뱉었을 작은 한숨을 전해 받아 영상 너머에서도 함께 내뱉는다. 형부의 긴장감과 두근거림이 전해진 탓이다. 울음을 터트리려던 아기는 채 가누지도 못하다 잔뜩 찡그린 표정을 짓는다. 아빠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웃음과 비슷한 표정이 스쳐 지나간다. 그 작은 아가의 배냇짓을 바라본다. 언니가 건강한 아들을 출산한, 긴장과 두근거림의 시간이 지나간다.


형부에게서 영상과 사진들이 도착한다. 갓 출산을 한 언니의 품에 안긴 조카가 칭얼대는 소리와 함께 잔뜩 쉰 언니의 목소리, 그리고 출혈로 인한 수혈이 필요하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임신 초기부터 건강상의 문제로 마음을 졸였었기에, 괜찮느냐는 연락을 계속해서 건넨다. 수혈은 하지 않고 빈혈약을 처방하기로 했어요- 형부의 연락을 받은 뒤의 엄마의 목소리도 한껏 잠겨있다. 다만 어제보다는 조금 더 밝아진 듯한 목소리다.



"너 오늘도 오전 출근이지?"



이른 아침부터 어머니는 아쉬움 가득한 목소리다. 입원 기간 동안 양가 부모님만 1회의 면회가 가능하다는 소식 덕분이다.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어머니의 아쉬움을 전한다. 조카 병원을 다녀온 후 연락해 보겠다던 여동생은, 내가 출근을 한 사이 어머니와 함께 언니에게 다녀왔다. 어지럼증과 추위에 걷는 것이 힘들다지만, 언니는 어머니의 면회 시간에 맞춰 걸어 나왔다 한다. 한껏 밝아졌을 어머니의 표정이 눈앞에 보이는 듯하다. 언제나 타박하는 듯한 말만 하지만, 종종 표정에서는 그 따스함을 감추지 못하신다.


퇴근 후 언제쯤 언니에게 전화를 걸까, 고민을 하던 찰나에 여동생이 먼저 언니에게 전화를 건다. 여동생과의 통화에 건너에서 괜찮느냐는 말 한 두마디를 건네고, 나는 조카의 손에 이끌려 집안 이곳저곳을 끌려다닌다. 여동생과 언니의 통화가 길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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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는 네가 엄마랑 언니한테 갔다 오는 게, 할 이야기도 많고 낫지 않을까."



오전에 여동생에게 어머니를 부탁하며 건넸던 말이다. 아이를 낳아보지도, 낳고 싶지도 않은. 무엇보다도 신생아 육아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나보다는 여동생이 언니와 대화가 잘 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예상이 들어맞았다. 언니와 여동생은 제왕절개라는 공통점, 무엇보다도 이미 첫째를 수술해 보았기에 서로 나눌 이야기가 더욱 많았던지 통화가 길어진다. 그럴 때면, 그만 통화하고 자기와도 놀아주라며 떼를 쓰던 조카지만, 오늘은 이모가 읽어주는 책에 푹 빠져있다. 동생이 태어나면서 조금 터 커버린 것일까. 엄마의 통화가 끝나자 엄마의 품으로 달려들며 안긴다.


언니가 어떻게 알고 케이크 사다 줬냐고 하네- 여동생이 동네에 생긴 카페에서 구입한 케이크를 작은 출산 선물로 사 들고 갔다 한다. 모유 돌면 나는 단 게 땡겨서 그랬는데- 품에 안기는 조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여동생이 미소를 짓는다. 엄마의 기분 좋은 목소리가 전해지니 조카는 엄마의 가슴에 고개를 부빈다. 아련한 시선이 조카에게 향한다. 조카가 갓 태어났을 때를 떠올리는 듯하다.



"나는 얘 신생아 때 거의 보질 못해서, 영 모르겠다."



조카가 태어났을 때, 나는 백일해 예방접종을 하지 않았었다. 육아에 큰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는 나와, 여동생 둘 모두의 판단이었다. 그리하여 요 녀석이 백일이 지나기 전에는 몇 번 얼굴을 마주하지도 않았었다. 이번에는 언니의 출산과 여동생의 출산에 대비하며 접종을 위해 일정을 조정한다.


아이가 생기니까, 다른 아이들도 다 예뻐 보이더라고요- 제부의 말에 나는 웃으며 대답했었다. 나는 여전히 우리 조카만 예뻐-


나는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어린 동생들을 돌보던 기억들이 만들어낸 성향일지도 모른다. 여전히 다른 어린아이들을 보며 예쁘다 여기지 않건만, 왜 내 조카는 이렇게 예쁜 건지.


오랜만에 핸드폰에서 여러 차례 진동이 울린다. 형부가 올려주는 조카의 사진과 영상들에 집중한다. 찡그리는 것인지 웃는 것인지도 잘 분간이 가지 않는 그 배냇짓을 몇 번이나 멍하니 바라본다. 아쉽다. 우리 이모바라기 조카의 신생아시절을 조금 더 담아둘 것을. 그 아쉬움에 새로운 조카의 사진과 영상들에 집중한다. 이상하다. 나는 분명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는데. 왜 이렇게 예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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