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덕에 나도 웃어.
조그마한 입들이 모여 만들어내던 재잘거리는 소리들이 점점 커진다. 조용히 해라- 자습 감독을 봐주는 선생님의 목소리에 고요해지는 것도 잠시, 아이들의 입이 다시 열린다. 벽 하나를 경계로 1학년 아이들의 목소리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일정 음역대를 벗어난, 장난이 섞인 큰 소리는 선생님의 제지에도 멈추지 않는다.
"쌤, 죄송해요. 00이랑 00이 밖으로 나와."
문을 열고 교실로 들어선다. 자습 감독을 봐주는 선생님에게 사과를 건네고, 가장 목소리가 컸던 두 명을 밖으로 데리고 나온다. 그제야 고요해진 교실, 내일이 시험이라 잔뜩 예민해진 학생도 다시 문제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쉬는 시간이 되자, 잠시 아이들을 앉혀놓고 잔소리를 시작한다.
"바로 내일이 시험이라서, 2, 3학년들 공부에 집중하고 있는 거 알잖아. 너희가 다른 사람들 공부를 방해할 권리가 있니?"
아직도 초등학생 티를 벗지 못한 1학년들이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다. 아직도 해맑고 천진난만한 아이들은 학원 자체 시험을 보지만, 긴장감이 엿보이질 않는다. 아직 어리니까 어쩔 수 없지. 어린아이들의 장난기를 알지만, 다른 학생들을 위해 잔소리를 할 수밖에 없다. 지금 2, 3학년 아이들도 이맘때는 똑같았지. 당연한 사실에 혼을 내는 마음이 불편하다.
"선생님, 아까는 죄송해요. 선생님 불편하게 해 드리려는 것은 아니었는데........"
자습 감독을 봐주던 선생님에게도 여러 차례 사과를 건넨다. 선생님으로서는 기분이 나쁠 수도 있었는데, 웃으며 전해주는 괜찮다는 말에 마음을 좀 놓는다.
시험기간이다. 평일에도 늦게까지 아이들의 공부를 봐주고, 주말에도 보충 수업이 진행되는 중이다. 차곡차곡 쌓이는 피로 때문인지, 점차 예민해지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아이들이 문제를 풀며 반복되는 실수에 잦은 지적을 하게 된다. 너, 시험 볼 때는 이거 진짜 실수하면 안 돼- 평소보다도 조금 더 엄하게, 아이들을 가르친다. 아이들도 시험에 대한 긴장감으로 예민함이 겉으로 드러난다.
"쌤은 앞자리가 9나 1이었으면 좋겠다. 진짜로."
"그러면 9점 맞아도 돼요?"
"물론. 대신 다음날, 나 우느라 안 나올 거야."
아이들이 웃는다. 간간이 웃음을 건네며, 힘든 시험기간을 함께 버텨나간다. 점수가 잘 나오지 않으면 가장 속상한 것은 아이들이겠지만, 나 역시도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로 속상하다. 왜애- 쌤이 이거 그렇게 강조했잖아아- 시험지를 보며 소리를 지르고 싶은 마음을 치워둔 채, 아이에게 초점을 맞춘다. 그 잔소리를 들어가며, 놀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가며 공부를 했는데. 네가 제일 속상하겠지.
"시험 보고 운다는 건, 네가 열심히 한 덕분인 거야. 너는 노력을 할 줄 아는 애야. 다음 시험은 쌤이 더 많이 공부시켜줄게."
이제 시험대비 마지막 날. 오늘 하루, 아이들에게 총정리를 해 주고 나면 시험기간이 끝이 난다. 오늘, 먼저 시험을 보는 아이들의 점수가 궁금하다. 집에 가기 전에 눈물을 글썽이며 시험에 대한 걱정을 토로했던 아이들이 있었다. 요것도 이해 안 되고, 저것도 안 되고. 저 시험 망할 것 같아요. 어떡해요?
"너 잠을 안 자서 그래. 오늘 집에 가자마자 자고, 5시에 일어나서 공부해. 뇌는 일어나서 3시간 뒤에 가장 잘 돌아간대. 너 실수만 안 하면 점수 잘 나올 거야."
울음을 터트리려던 아이의 어깨를 토닥이며 배웅했다. 시험에 대한 압박감에 수면 시간을 극단적으로 줄였기에, 조금 더 자라는 잔소리도 더해준다. 그리고 오늘 출근 전, 전화가 온다. 이미 울음을 터트렸는지, 울먹이는 목소리 사이로 훌쩍임이 들려온다.
"쌤, 저요. 100점 맞았....."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울음을 터트린다. 역시, 네가 잘할 줄 알았어- 거봐, 너 잘할 거라 그랬지? 연이은 칭찬들에 울음을 멈추고 다른 과목들 점수도 줄줄이 이야기를 한다. 올해 초에 학원에 들어와 늦은 공부를 시작한 아이였다. 작년보다 점수들이 껑충 뛰어올랐다. 늦게 시작한 공부인 만큼, 선생님들을 붙잡고 찡얼찡얼거리면서도 열심히 하더니. 노력의 결실을 맺기 시작한 아이가 기특하다.
누적되는 피로에 내뱉던 한숨이 줄어든다. 출근 전, 지끈거리는 머리를 먼저 붙잡곤 했었는데 오늘만은 꽤 가벼워졌다. 아이들을 가르치며 즐거운 순간들이 참 많지만, 가장 행복한 순간이 아닐까. 슬픔의 눈물이 아닌 기쁨의 눈물이라니. 아이가 시험을 잘 보면, 오히려 내가 더 고마워진다. 잘 따라와줘서, 그리고 이런 기쁨을 전해줘서.
조금만 더 힘내자. 피곤해도 웃을 수 있는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