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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먹을 건데?

가방에 두고 까먹은 내가 나빴어.....

by 연하일휘

붉은기가 감도는 면은 입안에 통증과 함께 작은 쾌감까지 몰고 온다. 지나친 괴로움을 상쇄할 달걀 프라이까지 하나 얹으면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짧은 행복의 시간이다. 작은 그릇 위에 한두 입 먹을 분량의 면을 덜어 놓고, 달걀을 반으로 잘라 올린다. 아, 김을 안 넣었네. 불닭볶음면에서 끝맛을 고소하게 만들어주는, 자른 김과 참깨가 들어있는 조미김 봉지를 깜빡했다. 뒤늦게 싱크대에 올려져 있을 작은 봉지 하나를 찾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난다.


예전에 살던 집은 식탁이 없어 거실에 작은 상 하나를 펼쳐 식사를 하곤 했었다. 부엌과 거실을 오가는 것이 귀찮기는 하지만, 누나가 밥을 먹을 때면 가까운 곳에 앉아 슬금슬금 허벅지에 등을 기대는, 강아지의 작은 애교는 덤이었다. 부엌에서 조미김 봉지를 들고 왔을 때, 방으로 도망치는 강아지의 뒷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상 위에, 작은 접시 위에 덜어 놓았던 라면과 달걀이 그대로 사라져 있다. 너, 그거 매운 건데. 동물병원에서 원장선생님에게 잔소리를 듣고, 습관 하나가 더해졌다. 강아지가 입을 댈 수 있는 곳에는, 함부로 음식을 방치하지 않기. 그래, 그건 누나 잘못이었어.


강아지 간식을 사 와서는, 제때 정리를 안 하고 바닥에 던져둘 때마다 저 혼자 봉투를 찢어 간식을 꺼내먹는 녀석이다. 평소에는 누나가 먹는 음식에 입을 댄 적이 없었는데. 그런 똘똘한 녀석이기에 누나 음식은 탐내지 않으리라 생각한 것은 잘못된 판단이었다. 그래도 크게 아프지 않아서 다행이야. 입을 댄 네가 아니라, 제대로 챙기지 않은 주인 탓이지. 귀여운 녀석을 키우면서 하나씩 배워나간다.






오전, 언니에게서 도움 요청이 들어왔다. 병원에 다녀와야 하는데 형부가 월차를 쓰지 못하는 날이라 한다. 운전을 담당하는 나, 그리고 아기 돌보미로 어머니. 함께 조금 먼 거리에 있는 언니네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들어서자마자 어머니는 오랜만에 보는 손주를 안아 든다. 벌써 100일이 지나 방긋방긋 웃으며, 간간이 할머니 말에 대답도 하는 손주의 재롱에 어머니는 푹 빠져들었다. 조금 더 길게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내 출근 시간이 다가오며 집을 나서야 하는 어머니의 눈에는 아쉬움이 가득하다.


"언니, 샌드위치 잘 먹을게."


언니는 고맙다며 샌드위치 하나를 사다 준다. 점심으로 함께 먹을까 하다가도, 결국 시간에 쫓겨 저녁 도시락으로 당첨. 집으로 돌아와 다급히 출근 준비를 한다. 물이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여러 차례 쓸어내리며 거실로 나오니, 아가가 내 가방 주변을 맴돈다. 다가가니 하얀 덩어리를 입으로 조심스레 갉아내느라 누나가 가까이 온 줄도 모른다. 아, 가방에 샌드위치 담아 놓고 까먹었었구나. 녀석이 입을 대던 샌드위치를 잡아채니 아쉬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다행스럽게도 빵과 치즈를 살짝 갉아먹었을 뿐, 많이 먹지는 않았다. 가슴을 쓸어내린다. 출근 직전에 강아지를 안고 또 병원에 달려가게 될까 걱정했는데, 이 정도면 아가에게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정도다. 알아, 까먹은 누나가 나빴지. 누나 잘못이야. 아쉬움이 뚝뚝 떨어지는 아가에게는 다른 간식 하나를 건네주고 출근 준비를 이어간다. 간간이 헛웃음이 나온다. 요 녀석이 조심스레 갉아먹던 그 모습이, 그리고 남은 흔적이 귀여운 탓이다.



ⓒ 연하일휘



남자친구에게 흔적 사진을 보내니, 아쉬움을 전해온다. 음, 왜 아쉽지? 나는 먹을 건데? 오늘의 저녁 도시락이 아가와 함께 나눠먹는 샌드위치가 되었을 뿐인데. 강아지와 한 이불을 덮고 자고, 누나를 깨울 적이면 잔뜩 얼굴을 핥아 대기도 하는 녀석이라 그런가. 강아지가 입댄 흔적에도 별다른 찝찝함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외국의 한 여성이, 강아지 침에 있는 어떤 박테리아 어쩌구 덕분에 사망에 이르렀다는 기사를 본 적도 있었던 것 같기는 한데. 에이- 그러면 이미 진즉 나는 아팠겠지. 손을 휘휘 저어 생각을 날려버리고선 집을 나선다.


강아지는 사람 먹는 음식을 먹으면 안 되지만, 사람은 강아지가 먹는 음식을 먹어도 괜찮다는 글을 읽었었다. 양파, 파, 고추, 포도, 초콜릿 등. 강아지에게는 독이 되지만, 사람들은 즐겨 먹는 음식들이 있는 탓이다. 그리고 강아지 사료나 간식도, 나는 동물병원에서 판매하는 것만 사다 먹이니 뺏어 먹어도 큰 문제는 되지 않을 터다. 물론, 그렇다 해서 아가의 사료나 간식을 뺏어 먹을 생각은 없지만.


출근을 하고서도 웃음이 새어 나온다. 아가가 조심스레 갉아먹던 샌드위치의 맛이 궁금하면서도, 계속해서 떠오르는 탓이다. 아가가 한 입, 그리고 나머지는 누나가 다 먹는 샌드위치. 미안해, 아가야. 대신 저녁에 가면 맛난 간식 더 챙겨줄게. 오늘은 조심성을 더 키울 수 있었던 날, 예쁜 할아버지인 아가와 함께 사는 것을 잊지 말자.


다행스럽고도 작은 웃음이 계속해서 새어 나오는 날.



ⓒ 연하일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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