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과 세상이 늘어난다.
두꺼운 철문을 밀어내는 소리에 작은 발걸음이 다가온다. 동그란 눈을 뜨고선 이내 얼굴을 찡그리듯 함박웃음을 짓는 조카를 마주하며, 함께 웃음을 지어 보인다.
"이모 안아. 이모 안아."
두 팔을 벌려 다가오는 조카를 안아 드니, 며칠 못 본 새 더 묵직해진 듯하다. 얘 더 큰 것 같아- 품에 안기는 조카의 길이도 훌쩍 길어졌다. 너, 이모가 며칠 못 보러 왔다고 그새 또 커버리면 어떡해- 이모 아쉽게. 뺨을 부비는 감촉에 꺄르륵거리며 조카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터져 나온다.
"고구마 머글래요. 고구마."
야무지게 손가락으로 식탁을 가리키는 조카를 의자에 앉혀 주니, 고구마튀김을 두 손으로 잡고 오물거리기 시작한다. 아빠가 솜씨를 발휘했다는 고구마튀김. 평소에는 튀김옷을 하나하나 다 벗겨내며 먹더니만, 오늘은 장난도 치지 않고 얌전하다. 이모도 머거요- 손에 들고 있던 고구마를 쑥 내민다. 너 언제 이렇게 말이 늘었어?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구마를 받아먹으니, 조카가 배시시 웃는다. 아이들은 쑥쑥 큰다지만, 내가 보지 못한 모습들이 너무나도 아쉽다.
"이모가, 이모가."
조카가 '이모가'라는 말을 반복한다. 장난을 칠 때마다 제지하면, '가, 가아'라며 투정을 부리던 녀석이다. 같이 앉아서 맛있게 튀김을 먹는 중인데, 이모 집에 가라구?
"이모가, 이모가. 안자이써요."
아이구, 맞아. 이모 앉아 있어. 문장을 내뱉는 조카가 신기해 잔뜩 칭찬을 해 주었더니만, 새로운 문장의 시도였나 보다. 굳이 과장하려 하지 않아도, 애정 섞인 칭찬이 입 밖으로 쉴 새 없이 새어 나온다. 오랜만에 보는 애틋함에, 그럼에도 이모를 반겨주는 조카가 고마운 탓이다.
이모 없는 새, 훌쩍 커버린 모습을 보여주려는 듯 조카가 잔뜩 신이 나 여러 문장들을 내뱉는다. 새로 산 장난감들도 자랑하고, 새로 산 책들도 보여주다 흥이 넘쳐난 듯 조카가 노래 한 구절을 부르기 시작한다.
"나무까지에 시처럼~"
"우와! 노래 너무 잘 부른다!"
조카의 모습을 지켜보던 여동생과 제부도 깜짝 놀라며 반응한다. 노래를 들으며 단어 한 두 개를 따라 부른 적은 있지만, 저 혼자서 한 소절을 다 부른 것은 또 처음이란다. 잘한다, 잘한다! 온 가족이 모여 박수를 치며 함께 노래를 부른다. 제자리에서 껑충껑충 뛰며 같은 소절을 반복하는 조카는 제 노래와, 가족들의 칭찬에 잔뜩 신이 났다.
조카의 말문이 점점 더 트여간다. 뜻도 모르고 엄마아빠 말을 따라 하던 것이 엊그제였는데, 이제는 저 스스로 문장을 만들어낸다. 표현이 늘어간다. 표현이 늘어가는 만큼, 아이의 세상이 넓어지고 있음을 또 느낀다. 예전에는 그냥 지나쳤을 것들에 관심이 늘어간다. 책에 그려진 그림, 사진 속 사람들의 모습, 엄마와 아빠의 행동, 장난감에 그려진 무늬. 아이의 손가락과 눈길이 닿는 곳마다, 함께 고개를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늘어간다.
"이모! 이모오!"
함께 책을 보다 잠시 엄마아빠와 대화를 나누는 이모가 불만스러운 듯, 이모의 손을 책 위로 쭉 끌어당긴다.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자동차 위로 이모 손을 안착하더니, 당당하게 소리친다! 에띠 푹푹! 그래그래, 이모가 딴짓해서 미안해. 동그란 정수리에 쪽- 사과의 뽀뽀 한 번을 건네주고 함께 책을 본다. 평소라면 굴착기가 흙을 파는 모습만을 흉내 냈을 녀석이 오늘은 부분 부분마다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말을 한다. 문제라면, 아직 네 말을 다 알아듣지 못하는 이모의 이해력이 문제겠지..?
"바퀴? 바퀴?"
"바퀴가 특이하지? 특이해?"
"트-기해? 특이해!"
국어를 공부하며, 처음 배우는 것이 언어와 사고와의 관계다. 결국 언어가 먼저냐, 사고가 먼저냐. 그 관계에 있어서 처음 공부할 때 골머리를 싸매곤 했더란다. 이게 대체 뭐가 중요해서, 사례까지 달달 외워야 하는 건지. 하지만 조카의 모습을 보며 학자들의 고민에 공감한다. 네 표현이 늘어나며 세상이 넓어진 걸까, 세상이 넓어지며 표현이 늘어난 걸까. 이게 이토록 궁금한 걸 보면 말야.
말도, 세상도 점차 늘어나는, 넓어지는조카를 품에 안고 함께 책을 읽는다. 조금만 천천히 크자. 이모가 못본 모습들이 너무 아쉬워서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