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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기에 채울 수 있는

커피 향으로 하루를 채우다

by 연하일휘

커튼 사이로 빼꼼- 작은 존재감을 드러내던 햇빛이 조금 더 진해졌다. 점차 밝아지는 방 안에서 몸을 일으키려 하지만, 작은 통증이 머리를 통통 두드린다. 심하지는 않지만, 휴일에 늘어지기에는 충분한 핑곗거리다. 이마 위로 팔을 얹어 머리를 지그시 누른다. 두통약이 남아있던가, 유통기한 지난 건 아닌가. 몸을 일으켜 약통을 확인하는 것조차 귀찮아지는 휴일이다.


손바닥에 촉촉한 것이 닿았다 떨어진다. 몇 차례 손바닥을 쓸듯 지나쳐가는 강아지의 혓바닥에서 작은 어리광이 느껴진다. 누나, 날씨 너무 좋은데- 아가의 속마음이 전해진다. 기력이 이불로 빨려 들어간 듯, 무겁게 몸을 짓누르는 이불 밖을 나서기가 쉽지 않다. 일어나려는 작은 뒤척임 하나에 잔뜩 신이 나 폴짝거리는 강아지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다시 그대로 이불속으로 파고들었을지도 모른다. 춥지 않은 날이다. 얇은 외투 하나를 걸치고 모자를 푹 뒤집어쓴 채, 강아지와의 산책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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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하늘에 얇은 붓으로 구름 몇 점을 그려놓았다. 가을 하늘이 진한 파란색을 뽐낸다면, 겨울은 색소가 옅어진다. 바람도 불지 않고, 햇빛이 따스하게 몸을 데우는 시간. 잔뜩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의 뒤를 따라 공기 냄새를 맡는다. 봄도, 겨울도 아닌 그 어중간한 따스함을 지닌 오늘은, 별다른 냄새가 느껴지지 않는다. 공기조차도 그 정체성을 잃고 냄새를 잃어버렸나 보다.


짧은 산책을 마치고 간식 하나를 물려준 뒤에 다시 이불속으로 엉금엉금 기어들어간다. 코끝을 찌르는 지린내가 어디에선가 솔솔 풍겨온다. 이불인가? 옆에 있는 강아지 담요인가? 아니면 바닥에 깔린 요? 이것저것을 들고 킁킁거리지만, 정확한 냄새의 출처를 밝히지 못했다. 배변패드에 쉬야를 할 때 발에 묻은 소변 때문일까. 혹은 강아지가 이불에 실수를 한 것일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종종 실수를 하는 아가이기에 원인도 밝혀지지 않는다.


이불과 요, 그리고 담요를 꺼내 차례대로 세탁기를 돌린다. 다행히 전기장판에서는 냄새가 나질 않는 것을 보면, 위에 덮여 있는 애들만 문제였던 모양이다. 침구 청소기를 꺼내 전기장판과 베개를 여러 차례 쓸어내린다. 먼지가 잔뜩 묻어 나올 줄 알았건만, 필터함에는 머리카락만 가득하다. 이렇게 빠지니까 숱이 줄지. 천천히 얇아지고 줄어드는 머리카락에 나에게도 노화가 찾아오고 있음을 느낀다.


커튼을 걷고 창문을 연다. 집안 가득히 햇빛이 내리쬔다. 겨울은 태양의 높이가 낮아진다고, 해가 질 시간대가 아님에도 집안으로 잔뜩 들어온다. 집안을 배회하던 먼지 냄새들이 어느새 맑은 공기로 대체된다. 그 공기에서도 계절을 알 수 없는, 아무런 냄새도 느껴지지 않는다.


커피 한 잔을 끓인다. 향이 강해 호불호가 갈린다던 베트남 커피다. 커피를 좋아해 콜드부르 기구를 구입한 적도 있었고, 그라인더와 드립퍼까지 마련하였건만 언제나 인스턴트커피로 돌아온다. 캡슐 커피마저도 주기적으로 물통을 세척하는 귀찮음에 멀어지고 말았다. 고운 가루 위로 뜨거운 물이 내려지자 진한 커피 향이 가득 풍긴다. 그대로 식탁 의자에 앉아 커피를 한 모금 입안에 가둔다.


씁쓸한 맛이 입안을 메운다. 고소한 듯, 코끝을 살짝 아리는 특유의 향이 간질거린다. 냄새가 없는 오늘이기에 더욱 향이 짙게 느껴진다. 금세 폐를 차게 식히는 겨울 냄새가 풍길지 모르지만, 오늘 하루는 내가 만든 향으로 하루를 채운다. 없기에 채울 수 있어 더욱 좋았던, 일요일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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