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누나가 방해가 됐던 거구나?
피부 위로 닿는 냉기가 싫어 이불속으로 잔뜩 몸을 웅크린다. 조금만 움직이면 추위에서 벗어나겠지만, 일요일이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무기력에 잔뜩 빠져버린 휴일이다. 바닥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핸드폰으로 손을 뻗을까- 그마저도 귀찮다. 새벽에 몇 번이나 깨 버린 터라, 아침부터 두통이 찾아왔다. 아무것도 안 할 거야- 오늘 하루는 귀찮음에 지기로 마음먹는다.
바르르 떠는 강아지가 얼굴께로 다가선다. 이불을 걷어올려 품 안으로 꼭 안아준다. 조금 차가워진 몸이 안쓰러워 여러 차례 쓰다듬으며 열기가 오르기를 기다린다. 더위에 헥헥 거리는 아가가 안쓰러워 미용을 했건만, 다시 또 날이 추워질 줄은 몰랐다.
아- 강아지 옷도 빨아야 하는데- 추워하는 녀석이 안쓰러워 겨울 옷을 여러 벌 꺼내 입혀 주었지만 오래 입질 못한다. 털이 복슬할 때 입히던 옷이라 그런가- 헐렁한 옷이 금세 흘러내려버린다. 한쪽 팔을 벗은, 혹은 치맛자락처럼 두 앞발이 모두 빠져나와 질질 끌리는 모습을 보면 귀여워 웃음이 터져 나오지만, 냄새만은 그렇지 않다. 흘러내린 채로 소변을 보니, 옷에도 잔뜩 묻어나는 것이 문제다.
까슬한 털을 쓰다듬는다. 머리부터 꼬리께까지 쓰다듬어주면 기분 좋다는 듯 뒷다리를 쭉 뺀다. 그러다 아예 몸을 발라당, 뒤집으며 앞발로 내 손을 꼭 잡는다. 배를 쓰다듬으라는 신호다. 등과는 달리 배 쪽의 털은 보들하다. 천천히 쓰다듬어주다 배에 있는 작은 혹에서 손을 멈칫거리게 된다. 몇 년 전 생긴 혹, 병원에서는 더 커지거나 하면 검사를 하자고 미뤄둔 상태다. 나이가 들며 이곳저곳에 이유 없는 이상들이 생겨난다.
노화가 진행된다. 한 번 떨어진 면역력은 쉽게 오르지 않는다. 15살이 된 아가가 한 번 아프면 여러 갈래로 뻗어나간다. 항생제를 조금 길게 쓰면 설사를 하고, 설사를 하면 또 한 달가량을 병원신세를 져야 하는. 어느새 약해진 췌장이 비명을 지른다. 다행스러운 것은, 비싼 항생제를 사용하면 그 부작용이 작다는 것일까. 크게 해 주는 것 없이도 하루하루 곁을 지켜주는 녀석이 고맙다. 다만,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노화가 안타깝다.
노화가 아가에게만 찾아오지 않는다. 요즘은 내게 더 노화가 직접적으로 찾아온 느낌이다. 부비동염 치료를 시작으로 병원에 가는 날이 많아진다. 항생제가 유익균도 다 죽인다더니만, 딱 그 상태다. 스스로도 떨어진 기력에 점차 여러 의욕들이 저하되는 것을 느낀다.
"너 꺾이는 중이네. 나도 딱 그 나이 때 아파서 병원 계속 갔었어."
끊임없는 병원 신세에 언니가 한 마디를 건네준다. 아, 나 꺾이는 나이구나- 아직도 여전히 어린아이 같은데, 어른이라 하기에는 마음도 정신도 어리숙한데 몸만 늙어가나 보다. 어떻게 해야 어른이 될 수 있을까- 괜히 울적해져 이불속으로 얼굴을 파묻는다.
탁- 탁- 품에서 빠져나간 강아지가 내 머리를 톡톡 친다. 왜애- 이리 와- 다시 품에 안으려 해도 도망을 친다. 그리고 누워있는 누나가 마음에 안 드는 듯, 제 얼굴로 내 머리를 밀어대며 일어나라 떼를 쓴다. 결국 아가의 어리광에 몸을 일으키고 만다. 산책 가고 싶은 걸까- 물이라도 한 잔 마실 겸 거실에 나갔다 오니, 만족스러운 얼굴로 이불 위에 제 자리를 잡은 강아지가 보인다.
아, 편하게 눕고 싶은데 누나가 방해가 됐던 거구나?
슬쩍 그 위로 이불을 덮어주니 고개만 쏙 빼놓고는 감실감실 두 눈이 감겨간다. 새벽에 여러 차례 누나가 깰 때마다, 요 녀석도 함께 깨어나다 보니 깊은 잠을 자지 못한 모양이다. 덕분에 이부자리에서 쫓겨나 가볍게 청소를 시작한다. 그래도 네가 낫다- 네 덕분에 청소라도 하네- 아가 덕분에 웃으며 꽤 기분 좋은 하루를 시작한다. 오늘은 산책이라도 다녀오자. 아프다는 핑계로 무기력에 빠져있던 나를 꺼내는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