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놓고 흘려보내도 되는 시간이니까.
토도독- 핸드폰 자판 위로 움직이는 손끝마다 작은 기계음이 따라온다. 너무 일찍 눈이 뜨였다. 조금 더 잠에 빠져들려 한껏 이불속을 웅크려도 오지 않는 잠에 결국 핸드폰을 손에 쥐고 만다. 아, 오늘 화요일인데- 동생에게 일정을 묻기 위해 톡 하나를 보낸다. 아이 둘을 키우느라 정신이 없었다며, 뒤늦게라도 연락을 해 보겠다는 답이 돌아온다.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언니와 여동생은 2개월의 터울로 아이를 낳았다. 여동생이 지난주쯤, 언니를 찾아가 함께 아이를 돌보며 실컷 수다를 떨고 왔단다. 다음에는 엄마도 같이 가면 어때? 내 제안에 언니와 어머니에게 연락을 해보겠다는 말 이후로 별다른 이야기가 나오질 않았다. 여동생과 어머니, 언니의 시간만 맞추면 될 이 일정에 내가 끼어든 것은 어머니를 먼저 모시고 와야 하는 탓이다.
"너는 언니랑 좀 더 놀고, 내가 엄마만 픽업하면 되잖아?"
여동생은 멀리 나간 김에, 또 오랜만에 언니를 마주한 김에 길게 자매 간의 대화를 나누고 싶을 텐데, 출근 덕분에 어머니는 먼저 집을 나서야 하는 상황이다. 손녀와 함께 가고 싶은 어머니는 여동생의 차를 타고 언니네로 가면, 내가 따로 어머니와 먼저 돌아오기로 이야기를 해 놓았다. 그런데 나는 병원에서 '감기'라는 처방을 받고 말았기에, 아기 얼굴도 제대로 못 보게 생겼다. 그저 손주를 마주할 때마다 얼굴이 밝아지는 어머니를 위한 운전기사 역할이다.
운전을 하는 시간은 그저 흘려보내는 시간이다. 음악을 듣거나, 강연을 듣지만, 무언가 생산적인 것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아니다. 운전에 집중하다 보면, 생각에 빠져드는 것은 불가능. 그럼에도 그런 시간이 좋다. 강제적으로 부과된 듯한, 여유를 보내는 시간을 좋아한다.
잠을 많이 자는 것이 싫어한다. 길게 자고 일어나면 개운함보다도 작은 두통과 함께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고 만다. 그렇다고 치열하게 살거나, 시간을 알뜰히 사용하는 것도 아닌데. 게으름 속에서 하루를 보낸 뒤에 찾아오는 자책감이 싫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보내는 의미 없는 시간은 좋아. 죄책감 없이 흘려보내도 되는 시간이니까.
아버지의 병원 진료가 있는 날이면, 어머니와 아버지가 병원에 들어간 이후 잠깐의 시간이 주어진다. 가볍게 주차장 주변을 걷기도 하고, 핸드폰을 손에 잡은 채 작은 화면에 빠져들기도 하고, 커피 한 잔을 사들고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기도 하고. 명확하게 끝나는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아, 걸려올 전화를 기다려야 한다. 그 애매한 시간 동안은 무언가에 집중하기가 어렵다. 결국 별다른 생산성 없이 시간을 흘려보낸다. 하지만 그 시간은 마치 쉼표처럼, 죄책감 없이 주어지는 작은 일탈 같아.
어쩔 수 없는 시간이잖아- 무엇인가를 해야 하는데,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일상 속에서 그 시간은 작은 여유를 건네준다. 마음 놓고 쉬어도 되는, 쥐고 있는 것들을 내려놓는 짧은 시간이다. 운전기사 역할도 싫어하지는 않는다. 운전에만 집중하는 그 시간도 가족을 위하면서도, 마음 놓고 흘려보내도 되는 시간이니까.
여동생의 연락을 기다린다. 해야 할 일들 몇 가지를 적어 책상 앞에 붙여 두었지만, 잠시 회피할만한. 흘려보낼만한 시간을 기대한다. 가끔은 그런, 의미 없는 시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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