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견'이라는 단어가 아프다.
바들거리는 몸이 뜨끈하다. 창밖 풍경이 좋은 것인지, 혹은 필사적으로 의사 선생님을 보지 않으려 하는 건지, 아가는 품 안에서 창문 너머만을 바라본다. 잔뜩 떨리는 몸이 안쓰러우면서도 작게 웃음이 나오고 만다. 동물병원에만 들어서면 조건반사처럼 떨리는 요 녀석, 자주 오고 싶지 않지만 와야만 하는 곳이다.
아가의 몸무게가 줄었다.
"얘 몸이 너무 뜨끈한데, 스케일링 받아도 될까요?"
"검사 결과만 괜찮으면 걱정 안 해도 돼-"
쿨한 선생님의 대답을 믿으며 조심스럽게 등을 쓰다듬는다. 매년마다, 주기적으로 받는 스케일링을 위해 병원에 들렀다. 아침 식사는 건너뛰고, 산책인 줄 알고 살랑거리며 걷던 녀석은 병원으로 향하는 길인 것을 눈치채고는 잔뜩 걸음이 느려졌다. 그 마음 알지- 천천히 아가와 발을 맞추며 걷다 병원 근처에서는 결국 품에 안아 들고 만다. 바들거리며 누나 팔을 꽉 쥔 채, 놓아주지를 않는다.
나름 관리를 해 준다고 해 주지만, 치주염이 말썽이다. 요즘 물도 많이 마시고, 그만큼 소변 양도 늘었는데. 아무래도 치주염 탓에 열이 오른 탓은 아닐까, 혹여 신장이나 췌장과 같은 다른 곳에 무리가 가지는 않았을까.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이 길다.
"혈액 검사 결과는 다 정상이네."
길게 두 줄로 뻗은 종이에 형광펜으로 줄 몇 개가 그어진다. 걱정했던 심장, 간, 신장. 이 세 가지에 관련된 지표 위로 색이 덧씌워진다. 먹는 것도 조심해서 잘 먹이니까, 장수하는 거야- 언제나처럼 이 나이대치고는 건강하다는 소견이 돌아온다. 그제야 작게 한숨을 내쉰다. 씁쓸한 웃음이 비칠 것만 같다. 건강한 장수견. '장수'라는 단어가 아프다.
조금 비싸더라도 사료나 간식은 모두 동물병원에서 구입하는 중이다. 새로운 간식을 시도할 때마다 선생님에게 물어보며, 아가가 먹어도 되는지를 확인받는다. 재발률이 높은 요로결석을 예방하기 위함도 있지만, 이제는 병원에서도 장수견 소리를 듣는 아가의 건강을 계속 확인하기 위해서다.
팔을 꽉 쥔 채 놓아주지 않다, 의사 선생님 손에 들려간다. 스케일링을 하고 마취가 풀릴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시간, 집으로 돌아와 전화가 오기만을 기다린다.
걸음마다 허전하다. 그 옆을, 뒤를 채우던, 혹은 앞을 가로막던 살구색의 형체가 없는 탓이다. 어디를 가든 졸졸졸 따라붙던, 타박거리는 아가의 발소리가 없으니 집이 적막하다. 몇 시간 되지 않는 시간이건만, 보고 싶다. 어느샌가 분리불안은 강아지가 아니라, 내게 와 버렸다.
전화가 걸려온다. 마취가 다 풀리지는 않았지만, 네 다리를 꼿꼿이 세운 채 일어나 있는 녀석을 품에 안는다.
"이게 마지막이어야 할 것 같아. 마취가 위험하네."
아침에는 보이지 않던 사모님이 카운터에 앉아있다. 스케일링하는 동안 작은 이벤트가 있었던 탓인지, 치아관리를 잘해줘야 한다는 말들이 덧붙는다. 이제는 나이때문에라도 마취가 위험할 것 같다는, 그 말에 그저 씁쓸하게 웃고 만다. 여동생네 노견을 함께 키우며, 언젠가는 나도 그 말을 듣게 되리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마음이 편치만은 않네-
강아지 유모차에 탄 녀석은 잔뜩 긴장한 듯싶더니만, 어느샌가 편한 자세로 나른하게 늘어져 있다. 햇살이 따스한 날, 간간이 걸음을 멈춰 아가를 쓰다듬는다. 그래도 지금은 아픈 곳이 없으니 다행이다. 집으로 들어서니, 아직 힘이 돌아오지 않아 다리가 연신 미끄러진다. 관절이라도 다칠까, 아가를 품에 안고 쓰다듬는다. 감실거리던 눈이 스르르 감기며 도로롱 소리와 함께 잠이 든다. 조금만 더 천천히 너의 시간이 흐르기를 바라는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