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으로 인한 건망증
창 너머로 건너온 몇 가닥의 햇빛이 강의실을 밝힌다. 붉게 물들이는 난로의 빛이 없어도, 제법 포근한 날이다. 벌써 봄이라도 찾아오는 건지. 한껏 웅크리고 여러 겹으로 껴 입던 나날들 이후에 찾아온 따스함이 몸을 잔뜩 늘어지게 만든다. 너무 이른 춘곤증이라도 오는 것일까.
수업 시간표에 맞춰 교재들을 정리하다 문득 아침 출근 정경이 떠오른다. 배변패드를 정리해서 쓰레기통에 버리고, 분명 손을 씻은 것까진 기억이 나는데. 그 이후에 다시 새 배변패드를 꺼내 깔아 놓았는지 기억이 도통 나질 않는다. 만약 깜빡했으면, 집 청소 당첨인 날일 텐데.
강아지 배편 패드는 화장실 앞이 제 자리다. 본래 마당에서 뛰놀며 키우던 녀석을 독립할 때 데려오면서 집안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밖에서만 볼일을 봐 하루에도 여러 번 산책을 나가곤 했었다. 여러 종류의 배변 패드를 사용했었지만, 언제나 실패. 그러다 폭신폭신한 러그 위에 패드를 깔아주자 그제서야 집안에서도 볼일을 보기 시작했다. 그 감촉이 아마 흙을 밟는 것처럼 폭신해서 그랬던 것일까. 추측만을 했었지만.
러그 위에 강아지가 쉬야를 한다. 흡수되지 못하고 흘러넘칠 액체들이 선명히 떠오른다. 발바닥에 묻은 소변은 찰박거리는 소리와 함께 거실 이곳저곳에 발자국을 남길 터다. 조금 더 간다면, 방 안에 깔아놓은 이불과 베개에도 그 발자국 몇 개가 남아있겠지.
하아- 작은 한숨을 내쉰다. 퇴근하고 싶다- 언제나 출근을 하며 하는 생각이지만, 오늘은 유독 그 생각이 강해진다. 강아지의 보들한 털을 부비면서, 간식 몇 개를 입 안에 물려주면서. 온 집안 대 청소를 하기 전, 참사를 미리 막을 수 있을 텐데. 이런 심정과는 대조적으로 똑딱. 수업 시작이다.
오전 수업이 시작되며 반쯤 잠에 취해 있는 몇몇 학생들을 깨우는 것으로 수업이 시작된다. 그래도 지각하지 않은 건 너무 착하다- 작은 칭찬을 덧붙이며 수업을 진행하지만, 마음은 반쯤 콩밭으로. 아니, 집으로 날아가 있다. 난로의 열기조차 조금은 덥게 느껴지는 포근한 날. 텀블러에 담긴 커피를 빨아들이면서, 늘어지는 몸을 조금씩 끌어올린다. 나른하고 노곤하고. 이른 춘곤증과 청소에 대한 부담감이 퇴근에 대한 욕구를 점점 더 증폭시킨다.
드디어 맞이한 퇴근길, 평소보다 조금 더 마음이 급하다. 퇴근하자마자 조카가 이모를 찾을 것을 알기에, 최대한 빨리 그 참사를 정리해야 한다는 조급함덕분이다. 한낮의 햇빛으로 데워진 차 안 공기는 텁텁하다. 책장을 톡톡 털어낼 때, 먼지 섞인 공기가 풍기는 그 냄새처럼. 조금 내린 창으로 스며드는 공기도 영 만족스럽지 못하다. 가장 귀찮아하는 청소에 대한 부담감이다.
조카의 하원 차량이 오기 전, 집 앞에 주차를 하고 빠른 걸음으로 집으로 들어선다. 고개를 돌려 화장실 앞을 마주했을 때, 하얀 배변패드 두 장이 얌전히 깔려있다. 보송보송한 그 모습을 보아하니, 강아지도 내가 출근한 후 꿀잠에 깊이 빠졌던 모양이다. 유독 나른했던 오늘, 퇴근하고 싶다는 욕구가 불러일으킨 작은 건망증이었을까.
계단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천천히 조심스레 올라오는 발걸음, 그리고 모! 라며 외치는 조카의 목소리. 안도감과 나른함 속에서 조카를 품에 안아 든다. 그래, 오늘은 이모랑 무엇을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