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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함이 커지는 순간

위장조차 얌전해지는 그 순간

by 연하일휘

보도블록 위로 내딛는 발걸음에 힘이 실린다. 다음 수업이 시작되기 전, 식사를 할 수 있는 10분 남짓한 시간이 빠듯한 덕분이다. 비어있는 배속에서 음식을 넣으라며 요동을 치는 것도 한몫을 한다. 오전 수업을 하며 크게 허기를 느끼지 않는 편인데, 피로가 누적된 덕분인지 오늘은 유독 힘겨웠다. 애꿎은 빨대만 입에 넣고 시계만을 보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편의점에 달려가려 했건만, 손에 쥔 빗자루를 깜빡했다. 공복이 길어진 만큼 빗자루질이 거칠어진다. 미세먼지 때문인지, 강의실 안의 먼지들 때문인지 목이 칼칼하다.


다급히 편의점으로 갔지만, 손에 쥐고 나온 것은 삼각김밥 두 개. 빵보다는 그래도 밥이 배는 차겠지. 짧은 시간 내로 허기를 채울 만한 선택지는 많지 않다. 열어놓은 창 앞에서 오물거리며 허기를 메운다. 잰걸음으로 움직인 덕분인지 몸에서는 열이 올라, 흘러 들어오는 바람이 선선하다. 급한 식사 덕분인지, 급한 불만 꺼졌을 뿐 더 내놓으라는 위장의 땡깡이 시작된다. 텀블러에 녹차 티백을 하나 우려내며 후회를 곱씹는다. 대체 왜 매일 도시락 싸는 것을 까먹는 거야.


하얀 후리스 팔뚝에 붉은 자국이 생겨버렸다. 아이들 문제를 채점하다 실수를 한 탓이다. 에효- 만족스럽지 못했던 식사와 피곤함, 그리고 작은 실수들이 얹어지니 목소리가 점점 낮아진다. 커피라도 한 잔 더 마실까. 녹차로는 충족되지 않는 카페인의 충전이 시급하다. 요즘 다시 시작되려는 불면증에 카페인을 줄이려 노력하는 중인데. 악순환을 끊는 게 쉽지만은 않다.



"쌤이 평소에 주말 숙제를 얼마나 내지?"


"2장이요."


"우리 일주일을 안 보잖아."


"안 돼요, 쌔앰....."



수업이 마무리될 때쯤, 일주일간 해야 할 숙제를 안내한다. 일주일을 쉰다는 말에 아이들이 덜컥 겁을 먹었다. 반짝거리는 눈으로 간절하게 바라보지만, 알잖니. 내가 숙제를 얼마나 열심히 내주는 쌤인지.



"금. 토. 일. 월. 딱 4일 간만, 하루에 한 장씩 풀자. 4장. 명절에는 실컷 놀고."


"감사합니다. 와!!!"



작은 환호가 터진다. 그래, 내가 좀 많이 독한 쌤이기는 해도, 명절까지 공부하라고 압박을 크게 넣지는 않아. 평소에는 매일 10문제 정도, 하루에 한 장정도 숙제를 내주는 편이다. 그러니 이 정도면 빠른 학생들은 오늘 내로 마무리를 하고 일주일의 휴가를 실컷 즐길 터다. 안도의 표정으로 신나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온다.



"새해 복 많이 받아라. 세뱃돈도 많이 받고. 덕담은 더 많이 받기."


"쌤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한 아이가 앞에서 우물거리며 조심스레 새해 인사를 건네더니,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하나 꺼내 내 손에 쥐어준다. 초콜릿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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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이렇게 비싼 걸. 고마워. 쌤이 마음 잘 받을게. 대신 초콜릿은 네가 먹어줄래?"



평소에 용돈을 모으고 모아 먹고 싶던 초콜릿 하나를 사 먹었다며 신이 나 자랑을 하던 아이다. 특히 초콜릿을 좋아한다 했던 녀석이, 선생님들 주려고 따로 구입한 모양이다. 그 마음만으로도 너무 예뻐서, 그리고 주머니에 담겨 아이의 온기가 그대로 담긴 그 초콜릿이 너무 아까워서, 받는 것조차 미안해진다. 이 초콜릿 하나를 사 먹는 것도 네게는 얼마나 큰 기다림이 이어졌을지 아는데. 마음만 받고 싶다. 대신 초콜릿의 단맛은 네가 대신 즐겨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아녜요! 괜찮아요!"



괜찮다며 아이는 달려 나간다. 그 뒤로 고마워, 잘 먹을게-라며 큰 소리로 인사를 다시 건넨다. 따스한 체온이 배어든 초콜릿이 손바닥을 가득 메우는 느낌이다. 어른들 사이였다면 이 초콜릿 하나는 작은 호의의 표현일 텐데. 아이의 손에서 건네지며 그 크기도, 무게도, 따스함까지도 더 커져버렸다.


먹을 것을 더 내놓으라던 위장이 얌전해졌다. 이 작은 것, 아니 이 커다란 초콜릿 하나를 단순히 불만족스러움 하나를 위해 입에 넣는다는 사실이 미안해서일까. 주머니에 초콜릿을 담는다. 아깝고 또 아까워서, 먹고 싶지가 않다. 작은 초콜릿 하나를 구입하자. 그 예쁜 아이에게 돌려줄 작은 선물로. 그때 이 작은 마음을 내게 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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