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를 두는 만큼 깊어지는

낯가림으로 더해지는 애정

by 연하일휘

손가락 두 개만으로도 작은 손이 가득 찬다. 힘을 잔뜩 주고 꽉, 이모 손을 붙잡고 몇 걸음을 옮기다 두 팔을 벌린다. 해가 천천히 자세를 낮추는 오후, 혹여 찬바람에 감기라도 들까 품 안에 조카를 담는다.


도서관 주차장은 이중, 혹은 삼중으로 주차된 차들로 가득하다. 조금 떨어진 곳에 주차를 하고 조카와 걸어가는 길, 낯선 공간이 무서운지 이모 품으로 계속해서 파고든다. 여동생과 보폭을 맞춰 걷지만, 간간히 다른 곳을 구경한다며 꼬물거리는 조카를 제대로 안아 드느라 걸음이 조금씩 늦춰진다. 그럴 때마다 엄마를 찾는 조카의 작은 외침이 귓가를 간지럽힌다.


도서관 안에 들어서자 신기한 듯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 책이 가득한 공간이 신기한 듯, 조카는 아직 제 연령에 맞지 않는 책들 앞에서도 눈을 반짝인다. 영유아를 위한 공간에 들어서 신발을 벗겨주자 책 무더기 앞으로 달려가 주저앉는다. 책 몇 권을 뒤적거리다 자동차가 그려진 책을 발견하곤 높은 목소리로 탄성을 내지른다.


이모와 엄마가 번갈아가며 책을 읽어주니 조카는 연신 잔뜩 얼굴을 찡그리며 웃음을 터트린다. 입가와 미간의 움직임만으로 웃음을 표현하는 어른들과 달리, 이 시기 아이들의 웃음은 사랑스럽다. 얼굴을 잔뜩 찡그리면서, 행복함을 다 담아낼 수 없어 터트린다는 듯이 찡그리며 짓는 웃음. 아이로부터 전해지는 그 감정에 전염될 때면, 너와 만난 이 행운이 얼마나 고마운지 너는 알까.


요즘 말할 수 있는 단어가 점차 늘어나며 책을 읽는 것이 더 즐거워진 조카다. 새로운 책들에 파묻혀 집중하는 동그란 뒤통수가 귀여워 쪽-소리가 나게 뽀뽀를 해 준다. 이젠 익숙한 듯, 이모의 애정표현에도 독서삼매경에 푹 빠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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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에도 엄마나 아빠가 읽어주는 책에 푹 빠진 아이들이 앉아 있다. 읽던 책에 대한 흥미가 떨어진 듯, 조카도 그제서야 주변에서 부모님과 책을 읽는 아이들의 모습에 기웃거린다. 하루하루 성장해 나가며 조금씩 낯가림이 커지고 있어, 적당한 거리에서 구경을 하다 이내 계단형으로 된 책장에 시선이 꽂힌다.


스스로 오르기에는 높은 곳이라 그런 걸까. 그 위를 걸어 다니면서도 이모의 손가락을 꼭 쥐고 놓지 않는다. 빠른 걸음으로 도도도, 그러다 흥이 나면 살짝 뛰듯에 톡톡톡. 건너편에서 엄마가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자 꺄- 소리를 지르며 엄마에게로 달려간다. 작은 손으로 난간을 붙잡고선 그 너머에 있는 엄마에게 쪽- 뽀뽀를 하고 잔뜩 신난 웃음을 터트린다. 그리고 다시 이모의 손을 꼭 붙잡고 반대편으로 도도도 달려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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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5-6살 정도 되었을, 한 남자아이가 한 칸 위의 계단에 앉아 책을 펼쳐든다. 그 뒤를 따라오던 아이의 엄마도, 아이의 주변에서 읽을만한 책들을 뒤적거린다. 낯선 사람을 발견한 조카의 발걸음이 천천히 느려지더니, 이내 멈추고 만다. 남자아이가 조카를 발견하고선, 동생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해 준다.


"형아가 인사해 주네? 안녕-할까?"


손을 살짝 들어 보일 듯 말 듯 흔들고선, 안아달라며 품 안으로 안겨든다. 낯가림이 없어 모르는 사람 함부로 따라가면 어쩌나, 걱정을 했던 것이 엊그제인데. 이제는 낯선 사람을 보면 이모나 엄마아빠 품으로 파고드는 모습을 보며 조금은 안심을 하게 된다.


종종걸음으로 도서관을 나서자 조카가 다시 안아달라며 두 팔을 벌린다. 아직도 이 공간이 낯선 것일까, 이곳저곳으로 팔을 들어 가리키며 가자고 조르는 모습을 보면 단지 안기고 싶었던 것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품 속에서 세상구경을 하다, 이모의 뺨, 머리카락, 목덜미 등을 만지작거리며 장난을 친다. 쓰다듬다가도 꼬집다가도 살짝 긁기도 하면서, 이모를 간지럽히려는 듯 품 안에서 동동거리며 잔뜩 신이 나 있다.


다른 사람의 손도 잘 잡고, 낯가림을 하지 않던 녀석이 이제는 타인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거리만큼, 소중한 사람들과의 거리를 점점 더 좁혀나간다. 애정표현을 하고, 애정을 요구하기도 하면서 품 속으로 더 깊이 파고 들어온다. 네가 들어오는 만큼, 이모의 사랑도. 애정도 네게 더 깃들기를 바라며 품속 깊이 너를 안는다. 이제는 무거워진 조카를 안아 들고 걸어 다니다 보면, 뻐근해지다 못해, 팔이 후들거리지만. 이 작은 아픔이 너에게 큰 사랑으로 스며들기를. 기억에서 사라지더라도 이 애정만큼은 너에게 남아있기를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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