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무게까지도
2024.09. 그 어느 날의 너.
푹신해야 할 이불이 딱딱하게 굳어 있다. 울렁거리는 속과 지끈거리는 머리에 몸과 맞닿은 부위들이 모두 불편하게 느껴지는 탓이다. 길고 긴 아이들의 시험기간 속에 여러 신경 쓸 일들이 겹치더니, 결국 다 마무리가 된 이후에 탈이 나고 말았다. 신경성으로 온 위염은 오랜만이다. 어릴 적에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찾아오더니, 이제는 긴장이 풀린 이후에야 찾아온다. 아파도 쉴 수 없는 현실에 몸이 적응한 것일까, 단순한 노화일까. 후자는 조금 슬퍼진다.
엎친데 덮친 격이라더니. 병원에서 초음파로 검사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자궁도 말썽이다. 위염과 부정출혈까지 겹치니 주말은 꼼짝없이 이불행이다. 자리에서 일어날 기력조차 없이, 끙끙거릴 수밖에. 산책을 나가자며 얼굴을 부비는 강아지에게 미안함을 담은 간식 하나를 물려주며 나도 모르게 아이고- 곡소리가 절로 나온다. 차라리 몸살이면 좋으련만, 잘 먹고 잘 자면 낫게. 위염은 먹어도 아프고 굶어도 아프니, 가장 싫은 병증이다. 먹는 게 낙인 아이인데, 먹고 싶어도 먹지 못한다는 사실이 혼자 아픔을 견디는 것보다 더 서글프다.
"언니, 오늘 말 보러 갈 수 있겠어?"
고마로 마(馬) 축제가 열린다는데, 길거리 퍼레이드에서 말을 타고 행진하는 것을 구경할 수 있다 한다. 동물을 좋아하는 조카에게 말을 한 번 보여주고 싶다고 지난주부터 여동생이 이야기를 했었다. 조카의 반응이 궁금해서라도, 가만히 누워있을 수는 없지. 주말 동안 별다른 일정도 없으니 누워있을 시간은 많다. 그러니 지금은 없는 기력을 끌어모아서라도 조카와 외출을 해야지.
분명 돌이 지나면 천천히 자란다더니만, 다 거짓말이다. 돌이 지난 후에도 어찌나 쑥쑥 크는지, 시험기간 동안 일주일정도 못 봤더니 그새 또 자랐다. 키도 크고, 얼굴살도 쏙 빠지고, 팔다리도 쑥 길어지며 퐁실퐁실하던 살들에 근육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걷거나 뛰는 것도 왜 이리 잘하는지. 그 사이를 보지 못했던 것이 한이 될 지경이다.
검은기가 군데군데 묻어나는 짙은 회색빛이 하늘을 가득 메웠다. 제법 강한 바람, 가을이 성큼 다가오며 찬 기운이 가득 담겨있다. 퍼레이드의 중간 지점쯤에서 여동생과 조카와 함께 내려오기를 기다린다. 첫 선발주자로 커다란 경찰 오토바이를 본 조카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그대로 굳어 있다. 손을 흔들어주는 경찰 아저씨에게 반응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커다란 오토바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뒤 이어 검은색 자치 경찰단 경찰차와 함께 세 마리의 말이 뒤따라온다. 평소라면 '우와-'라며 감탄사를 내뱉었을 조카가 미동도 없이 빤히 바라보는 모습에 괜히 코끝이 찡해진다.
동그란 뒤통수를 몇 번 쓰다듬어 보지만 커다란 말을 바라보는 시선을 거두지는 않는다. 말의 걸음을 따라 조카가 탄 자전거를 밀며 걸어가면서 유모차를 끄는 엄마와 아빠들이 눈에 들어온다. 조카와 비슷하거나 혹은 더 어린, 금세 빗방울이 쏟아질 것만 같은 날씨에도 아이에게 말을 보여주러 나온 부모들이다. 제부도 왔으면 좋았을 텐데- 내 말에 출근이라 많이 아쉬워했다는 말을 여동생이 전해준다.
한참을 뒤따라가다 슬슬 들어가려 할 때, 그제서야 조카는 퍼레이드 행렬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잔뜩 들뜬 옹알이를 시작한다. 그래, 그래- 조카의 옆에 쪼그려 앉아 연신 맞장구를 쳐 주다가도 눈시울이 붉어지는 이유를 도통 모르겠다. 작년 이맘때쯤에는 이모 품이 불편해 1분도 채 안고 있지 못했었는데, 그 시기를 지나 이모바라기가 되어준 조카에 대한 고마움일까. 혹은 보지 못한 그 순간들마다 쑥 커버린, 그 순간들에 대한 아쉬움이 뒷모습에서 전해지는 탓일까.
집으로 들어서며 품에 안긴 조카의 차가운 손이 뺨에 닿는다. 손바닥에 쪽- 소리가 나게 입을 맞추자 꺄-하는 소리를 내며 함박웃음을 지어 보인다. 품 안에 쏙 안겨드는 조카가 점점 무거워진다. 분명 무게는 늘지 않았다던데. 보지 못한 사이의 성장이 아쉬워 마음의 무게가 더해졌나 보다. 아쉬움에 더해 너에 대한 이모의 사랑의 무게가 더해졌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