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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하얀 도화지 위에, 차를 버리다

하얗게 덧칠을 해 나가.

by 연하일휘

어두운 골목길에서 내뱉은 입김이 하얀 형체를 이룬다. 해가 아직 깨어나지 않은 시간, 명절을 치르기 위해 부모님 댁을 향하는 길이다. 여러 겹의 옷을 껴 입었지만, 새벽의 공기가 틈새로 계속해서 스며든다. 추위에 움츠러들지만, 간밤에 눈이 내리지 않아 마른 땅바닥이 고마워진다.


집에서 차례를 지낸 후, 부모님을 모시고 산으로 향한다. 십여분쯤 달렸을까, 도로 가장자리에 눈의 흔적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점점 지대가 높아지며, 그 흔적들이 점차 늘어난다. 산에 올라야 하는데, 자칫 산 중턱에서 고립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기 시작한다. 큰길을 지나 1차선의 작은 도로로 진입하기 위한 사거리에서 작은 탄식이 새어 나온다. 제설작업이 되지 않은 듯, 하얗게 눈이 묻어있다. 체인도 없는 경차로 저 길을 가는 것은 무리인데. 오도 가도 못할 상황에서 때마침 친척을 태우기 위해 먼저 출발했던 남동생의 전화가 걸려온다.



"여기 공터에 차 세우고, 내 차로 같이 올라가게."



저 앞에 남동생의 차가 멈춰 서 있는 것을 그제야 발견했다. 하얗게 눈이 쌓여있는 곳에 조심스레 주차를 하고, 남동생의 차로 옮겨 탄다. 추위를 타는 아버지를 위해 히터를 빵빵하게 틀어놓았던 내 차와 달리 남동생의 차 안은 선득한 기운이 맴돈다. 두 손을 꼼지락거리며 녹여보지만, 쉬이 찬 기운이 가시질 않는다.


묘소에 도착하니 하얗게 눈이 쌓여있다. 일찍 온 다른 친척들은 천막을 치며 한 편에서 고기를 구워 먹을 준비를 시작하고 있다. 제를 지낼 음식들을 정리하는 사이, 나는 제단으로 향했다. 깨끗이 닦아 놓을 요량이었는데, 그 위에 얼음이 꽁꽁 얼어있다. 몇 번 닦아내지도 않았건만, 금세 손이 새빨갛게 달아오른다.


홀로 제단을 닦아내다 주위를 둘러보니 새하얀 세상에 나 혼자 서 있는 것만 같다. 마스크 너머로 새어 나오는 입김이 하얀 형체를 이루며 눈앞을 가려버린다. 모든 것이 새하얗다. 마치 새하얀 도화지 한가운데에 이물질처럼 내가 박혀있는 것처럼.




새하얀 도화지를 자주 상상했었다.


고등학교 시절,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는 눈을 감고 늘 새하얀 도화지를 상상했다. 검고 붉은 색채들과 온갖 걱정을 뜻하는 물건들이 가득 찬 머릿속을 하얀 페인트로 덧칠한다. 때론 그 붓질로도 가려지지 않는 것들을 묻어버리기 위해 통을 틀고 페인트를 뿌리는 상상. 그렇게 새하얗게 모든 것을 묻어버린 이후에야 나는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하얀 덧칠을 하더라도 제 형태를 드러내는 그 무언가가 가슴 한 편을 찔러대기도 하였지만. 그때는 그 시간이 필요했었다. 우울과 불안으로 점철되었던 그때의 나를 위한 짧은 명상의 시간이.


내뱉는 숨이 뜨겁다. 채 낫지 않은 감기가 다시 심해지는 것일까. 차갑게 식어버린 피부로 스며드는 냉기가 머릿속으로 스며든다. 멍해지는 머리를 몇 번 흔들어보지만 별다른 소용없이, 토해내는 작은 열기들이 하얀 입김으로 뭉쳐진다. 그래서 문득 그 시절, 그 시간이 떠오른 걸까. 하얗게 물들어가는 시간 속에서 그때의 내가 슬며시 고개를 내민다. 괜찮아, 나는 지금은 어른이 되었거든. 길게 숨을 한 번 내쉬고, 하얗게 흐려진 안경을 닦아내며 제를 지낼 준비를 이어간다. 얼어붙는 손끝을 간혹 어루만지면서, 준비해 온 음식들을 그릇에 올린다.


제를 지낸 후, 고기를 굽는 판 주위로 친척들이 모여 선다. 몸을 녹이려 아버지가 쉬고 있는 차 안으로 들어섰다. 떨려오는 몸이 쉽게 가라앉지 앉는다. 조금 더 따뜻한 바람이 더 새어 나오는 곳으로 몸을 움직여 얼어붙은 손과 발을 어루만진다.



"아빠, 고기 좀 갖다 줄까?"



남동생이 걱정이 되는 듯 아버지를 찾아오지만, 아버지는 계속해서 고개를 젓는다. 어머니와 작은 아버지도 뭐 좀 먹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며 아버지에게 말을 건네지만, 아버지는 춥다는 말만 반복한다. 여러 차례 찾아온 뇌졸중으로 이젠 아이가 되어버린 우리 아버지. 새하얀 세상 속으로 스며들고 싶었던 그때에는, 무섭고 싫었던, 피하고만 싶었던 아버지였는데, 이제는 그저 안쓰럽다. 원망이라는 단어조차 죄책감이 들만큼. 감정이 변화한 것은 이제는 내가 어른이 된 덕분일까. 그때의 내가 조금 더 어른스러웠다면, 나와 아버지의 관계가 달라졌을지도 모르는데. 부질없는 상상만 이어진다.






바깥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온다. 친척들의 담소와 식사가 끝난 모양이다. 차밖으로 나가 뒷정리를 돕는 나를 발견한 작은 아버지가 질문 하나를 건넨다.



"올라오는 길에 버려진 차 너꺼지?"


"아, 눈 너무 많이 쌓여서, 올라오다가 사고 날까 봐 중간에 세워뒀어요."



나와 작은 아버지의 대화에 주변 친척들도 대화에 참여한다.



"버려진 차? 아, 그 하얀 티코?"


"아니우다, 하얀 마티즈였지게."


"잘 해신게. 이런 날 까딱하면 사고나주."



산으로 올라오는 길목에 세워두었다 보니, 뒤늦게 올라오는 친척들도 내 차를 발견했나 보다. 작게 웃음이 새어 나온다. 그저 공터에 세워놓은 것뿐인데, 버려진 차라니. 어찌 보면 가장 적절한 표현이 아닐까.


버려진 차를 발견했었다. 폭설이 내렸던 날, 남동생의 도움으로 퇴근을 할 때 도로 가장자리에 버려진 차들이 있었다. 체인이 감겨 있지 않은 경차들이 하얀 눈에 파묻히고 있었다. 그 차의 주인들은 어떻게 집으로 돌아갔을까. 홀로 눈을 헤치며 걸어갔을까. 혹은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을까.



두려움 속에서 운전대를 놓았을 텐데.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다면 좋을 것 같아. 하얗게 물들어 가는 세상 속에서 홀로 그 길을 걸어간다면, 외롭고 두려웠을 테니까. 작은 온기를 느끼며 그 두려움을 가라앉힐 수 있었기를 바라게돼. 새하얀 세상 속에 나 홀로 있는 일은 너무 슬프더라. 그건 어른이 된 이후에도 많이 외롭더라.



hand-6093992_1280.jpg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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