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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뻐? 아니!

들었다 놨다, 애정표현

by 연하일휘

"뽀! 뽀!"


조카의 또렷한 발음에 쪽-하고 뽀뽀를 해달라는 신호인 줄 알았다. 제 손등을 가리키며 뽀!라는 말을 반복하기에 손등에 뽀뽀를 해 주었더니, 조카는 아니-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이모 손가락을 잡고 향한 곳은 안방, 제 엄마의 화장대 앞이다. 까치발을 들며 화장대 위로 손을 휘적휘적거리다 툭, 상자 하나가 떨어진다. 뽀로로 밴드 상자다.


상자를 들고 아야, 아야. 이모에게 손등을 계속해서 들이민다. 뽀로로 밴드 하나를 붙여 달라는 요구사항이다. 밴드 하나를 꺼내 손등에 붙여주니 엄마와 할머니에게 달려가 자랑을 한다. 여동생이 뽀로로 밴드를 약통에 담아 눈에 띄지 않을 때까지, 조카는 종종 밴드를 붙여달라며 엄살을 부렸다.


아직 미디어 매체를 접한 적도 없는데, 어쩌다 뽀로로 캐릭터에 푹 빠진 것인지 미스터리다. 여동생의 추측으로는 엄마도 아빠도 이모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두 안경을 쓰고 있으니, 안경을 쓴 뽀로로 캐릭터를 좋아하는 것 같다는데. 툭하면 이모 안경을 빼앗아 "앙경. 앙경."이라며 제 머리에 얹는 것을 보면 꽤 그럴듯한 추측이다. 이미 엄마와 아빠의 안경을 빼앗아 테를 똑-하고 부러트린 것도 여러 번이라 하니.


조카가 자동차 스티커책을 들고 와선 이모 무릎에 털썩 주저앉는다. 이미 아빠와 함께 스티커 놀이를 실컷 했던지라, 가장자리에 작은 스티커 몇 개만 남아 있다. 어린이집에서 배운 건지 손가락 하트를 열심히 연마 중인 조카는 하트 스티커를 발견하자 떼어달라며 발을 동동 구른다. 스티커 하나를 떼어 손등에 붙여주자 다른 손으로 꼬물거리며 손가락 하트를 만든다. 하나를 더 떼어 내 주니 엄마에게 달려가 손등에 붙여준다. 여동생이 스티커를 받아 뺨에 붙이니 자기도 똑같이 해 달라며 뺨을 콕콕 찔러댄다.



"와! 엄마랑 똑같네?"



신이 나 꺄-소리를 질러대는 조카에게 스티커를 더 떼어내 주니 하나는 할머니 뺨에, 하나는 이모 뺨에 붙여준다. 도도도 거실을 뛰어다니다 이모 뺨에 붙은 스티커를 꾹 누르며 "예뻐"라는 말을 하곤 부끄러운지 엄마 품으로 도망을 간다. 객관적 시각이고 심미안이고 뭐고 간에. 조카의 애정 어린 그 말에 쫓아가 꽉 끌어안고 만다. 네가 더 예뻐. 네가!





이모랑 더 놀겠다며 잠들 시간이면 찡찡거리더니만 이젠 꽤 쿨하게 잠을 청하러 들어가는 조카다. 그 쪼그만 게 조금 더 컸다고 벌써 의젓해졌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 아빠가 출근하자마자 땡깡쟁이가 되었단다. 여동생이 달래볼 겸 영상통화를 걸어온다. 잔뜩 찌푸린 얼굴이 찡그려지더니만 기분 좋은 비명을 질러댄다.


"이모가 보러 갈까? 잠깐 빠빠하자."


"아니."



고개를 격하게 흔들어대며 단호하게 대답한다.



"영상통화 끊지 말래. 이거 끊어야 이모 보러 올 수 있는데?"


"아니! 아니!"



혹여 통화가 끊길까 걱정되는지 두 손으로 핸드폰을 꼭 붙잡는다. 이모 이제 갈게- 잠깐만 빠빠하자- 여러 번 이야기하며 달래도 잔뜩 짜증이 난 목소리로 아니! 를 불러댄다. 잠깐 울리고 후다닥 달려가든가 해야겠는데?



"이모 좋아? 이모 예뻐?"


"예뻐. 아니!"



여동생이 달래려 꺼낸 말이었는데, 통화를 끊으려 한다고 단단히 삐진 모양이다. 너 분명 어제는 이모 예쁘다매. 치사하게 정말. 빨리 내려가겠다는 말을 하며 통화를 끊는다. 현관문을 나서자마자 짜증 섞인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동생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울음소리가 그치더니 모! 를 외치는 조카가 달려온다.



"찡찡아! 우리 이쁜 찡찡이!"



조카를 번쩍 들어 올리자 꺄- 웃음을 터트린다. 품에 안겨선 이모의 뺨을 찰싹찰싹 두드리며 반가움의 표현을 한다. 이모 예뻐? 예뻐. 이제야 뒤에 붙었던 '아니'가 사라졌다. 다른 사람들의 예쁘다는 칭찬은 의심부터 하고 볼 텐데. 네 말은 행복하게 받아들여진다. 너의 예쁘다는 말은 너의 사랑한다는 말의 다른 표현일 테니까.


조카에게 "사랑해"라는 말을 계속해서 건넨다. 언젠가는 사랑해-라며 달려와 품에 안겨오지 않을까 하는 욕심 때문이다. 아직 발음이 잘 되지 않는 단어는 잘하지 않는다지만, 매일매일 자라고 있잖아. 어느 날 갑자기 툭-하고 튀어나올지도 모르지.


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지만, 이모의 욕심이 커진다. 예쁜 말들을 계속해서 건넨다. 예뻐. 사랑해. 좋아해. 최고야. 멋져. 네가 예쁜 말들을 듬뿍 받아들이며 점점 더 행복한 아이가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은 이모의 작은 소망일 뿐일까. 이모가 사랑을 잔뜩 전해줄게. 그러니 제발. 부디. 꼭. '이모 싫어! 미워!'라는 말은 나~중에 튀어나오기를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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