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보이는 허당끼가 매력
뺨을 간질거리는 느낌에 몸을 돌리려다 무언가에 부딪혔다. 폭신하고 보들하고 따뜻한, 크림색 털뭉치가 눈앞에 놓여있다. 늘 다리 쪽에서만 누워 잠을 자던 녀석이 웬일인지 머리맡에서 곤히 잠이 들었다. 몇 번 쓰다듬어주니 슬쩍 고개를 든다. 자리에서 일어나자 제 자리를 찾아간다는 듯, 이불속으로 파고든다.
강아지의 체온이 허벅지로 전해진다. 평소라면 뜨끈한 이불속에서 껴안은 채 잠을 좀 더 청할 텐데, 오늘의 아침은 이불속에서도 추위가 느껴진다. 분명 내일부터 추워진다더니만, 오늘부터였나. 전기장판의 열기까지 가져간 추위에 잔뜩 몸이 움츠러든다. 바닥이 차다.
옷을 좀 더 껴입고 난로를 켜기 위해 난방텐트 밖으로 나섰는데, 생각보다 춥지 않다. 온도계에 떠 있는 숫자도 제법 낮지 않고, 틈새로 스며드는 햇살도 따사롭다. 그런데 왜? 왜 이불속이 그렇게 추운 거였지?
혹시나 싶은 마음에 전기장판을 살펴보니 전원이 꺼져있다. 시간이 되어 자동적으로 꺼진 것도 아닌, 전원 버튼이 볼록 솟아나있다. 그 옆으로 강아지를 위해 깔아 두었던 담요가 잔뜩 흐트러진 것을 보니, 요 녀석이 제가 편한 자세를 찾으려 담요를 파고들다가 버튼을 누른 모양이다. 그 작은 버튼은 또 어떻게 눌렀대. 우리 강아지 능력 있네.
이불속에서 곤히 잠든 강아지를 위해 전기장판의 전원을 올린다. 밤새 식어버린 몸을 녹이려 커피포트에 물을 올린다. 현관문을 열어보니 바깥 날씨가 포근하다. 환기라도 시킬 겸 문을 열어두고 방충망을 닫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강아지가 쪼르르 달려 나와 있다. 꽤 깊이 잠든 데다 귀도 들리지 않는데 누나 움직임은 어찌 알았대. 따뜻한 물을 마시며 여유로운 휴일의 아침을 좀 더 즐기려던 계획이었는데. 차마 해맑은 요 녀석의 얼굴을 무시할 수가 없다.
살랑거리는 꼬리가 간간히 빠르게 흔들린다. 평소에는 꼬리가 축 늘어져 있는데, 산책을 나왔을 때나 누나가 퇴근하고 집에 들어설 때면 바짝 올라간다. 그리고 작은 갈빛 얼룩에 이도저도 아닌 웃음이 걸린다. 난로 앞에 앉아 몸을 녹일 때면, 난로에도 질투를 한다는 듯 그 사이에 꼭 끼어드는 녀석이다. 혹여 화상이라도 입을까 화들짝 놀라며 품 안에 안아 들지만, 이미 작은 탄내와 함께 얼룩이 생기고 말았다. 네 애교가 참 귀엽긴 한데, 누나 그럴 때마다 깜짝 놀라.
산책 기념 개껌 하나를 주고 책상 앞에 앉는다. 작은 짭짭 소리가 들려온다. 가끔은 산책을 좋아하는 건지, 산책 후 주는 간식을 좋아하는 건지 헷갈리곤 한다. 종종 가출을 시도했던 녀석이라, "주인과 함께 나가면 맛있는 것이 생긴다"는 것을 인지시키려 간식으로 훈련을 시켰던 것인데. 그 이후 가출 빈도가 거의 줄어들기는 했다만, 종종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했더란다.
난방텐트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잠깐이라면 강아지가 자세를 잡느라 그럴 수도 있는데, 꽤 길게 이어지는 소리에 뒤를 돌아본다. 강아지가 앞발을 공중에 든 채로 가만히 앉아있다. 난방텐트에서 삐져나온 실밥에 발톱이 걸려버렸다. 음? 근데 너 예전에도 비슷한 일 있지 않았나? 삐져나온 실밥을 잘라내자 강아지는 이불 위로 다시 제 자리를 찾아간다. 몇 번 바닥을 긁어대며 이리저리 누웠다가 편안한 자세를 찾은 모양이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누나를 빤히 바라본다. 그래, 너는 한숨 더 자고. 누나는 수업 준비를 좀 할게.
내 새끼라서 그런 건지, 영리하고 똘똘하고 능력 있는 우리 아가. 그런데 가끔 보여주는 허당끼가 또 매력이다. 그 허당끼로 누워있는 누나에게 넘쳐버리는 애교를 선사하기도 한다. 종종 자는 척을 해버리면 얼굴 위로 올라와서 누워버리는 녀석이다. 얼굴로 전해지는 느낌이 보들보들하긴 한데, 10kg짜리의 무게에 잠깐 찾아오는 호흡곤란이 곤란한 거지.
같이 한 시간보다 남아있는 시간이 더 짧기에 하루하루가 소중하다. 작은 추억들을 하나씩 쌓아 올리는 그런 시간들이 되기를 바라는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