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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들 사이의 병아리

삐약삐약 VS 무념무상

by 연하일휘

사그락 소리를 내며 가라앉았을 함박눈을 기대했었다. 강한 바람은 쌓인 눈들조차 쓸어내다 이내 포기를 한 듯, 공중에서만 흩날린다. 간밤에 내린 눈이 소복이 쌓였다. 조심스러운 걸음을 방해하듯, 함박눈이 바람에 흔들리며 눈앞을 가린다. 이런 게 정말 설상가상인가. 이러다 허리까지 눈에 폭 파묻힐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 정도로 끊임없이 눈이 내린다. 출퇴근길에 대한 걱정으로 버스 시간만 확인하던 그때, 휴원에 대한 기대가 가득한 카톡이 연달아 도착한다.


오늘 학원에 가요? 눈이 많이 와요. 많이 쌓였어요. 수업해요?


쌤은 가는 중이야, 수업한다- 대화 목록 너머로도 실망과 함께 잔뜩 성을 내고 있을 아이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오늘 불평불만을 잔뜩 토로하는 날이겠네. 안 그래도 말썽쟁이 1학년 녀석들인지라 미리부터 피로가 몰려온다. 입이 삐죽 나와있을 녀석들에게 뭐라고 달래 가며 수업을 해야 하려나. 그런데 1학년 아이들의 카톡창만 불이 날 뿐, 2, 3학년 카톡창은 조용하다. 경험자들의 여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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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연락이 없던 2, 3학년 아이들은 저희들이 본래 오던 시간에 맞춰 학원에 쏙쏙 들어온다. 눈에 대한 기대감보다도, 추위에 대한 이야기만 꺼낸다. 아침부터 열심히 카톡을 울리던 1학년 학생들은 단축수업이라도 안 하냐는 질문을 던지면서 눈을 반짝인다. 선배들 앞에서 조잘대는 아이들의 모습은 마치 삐약거리는 병아리 같다.


그에 비해 2, 3학년은 이미 산전수전 다 겪은 듯한 신선과도 같은 모습으로 묵묵히 수업을 듣는다. 너희들은 아는구나. 오늘 휴원을 하면 우리 주말에 또 만나게 된다는 것을. 이미 학원 공부 스타일을 알아버린 녀석들은 무념무상으로 평소와 똑같은 모습이다.


아무리 그래도 추워도 너무 추운 날이다. 끊임없이 창틀을 덜컹거리는 바람이 작은 틈새로도 스며드는 것인지, 난로의 온기마저 앗아가는 듯하다. 난로 주위로 모여드는 아이들에게 안전거리를 일러주지만, 한 학생은 옷을 그을리기까지 한다. 이해해, 쌤도 춥다, 추워.



"지금 하트 두 개가 사라졌다.... 마지막 하나!"



문제풀이를 하며 열심히 설명을 하고 있는데, 몇몇 아이들이 수업을 듣질 않는다. 날씨 탓인가. 의연해 보여도 아이들이 창밖 풍경에 신경이 쓰이는가 보다. 집중을 하지 못하기에 3번째 경고에는 모두 다 같이 남아서 공부를 하자는 으름장을 놓고 만다. 아이들의 눈빛이 반짝거리기 시작한다. 이런 날 학원에 더 남아있기 싫다는 그 의지가 불타오른다.


탁- 한 순간에 학원의 모든 전원이 나가버렸다. 전등과 난로까지 한 번에 꺼져버리고, 두꺼비집의 전원 스위치들도 먹통이다. 다행히 교실이 밝아 남은 수업을 진행하는 데에는 별다른 무리가 없다.



"오늘은 못 남겠네. 수업 끝나면 조심해서 집에 가자."



아이들이 작은 환호성을 지른다. 집중력 좀 유지하게 수업 끝날 때 말할 걸 그랬나, 뒤늦은 후회가 몰려오지만 정전인데 수업해야 하냐는 말을 꺼내지 않는 것만으로도 예쁜 녀석들이다. 물론 수업이 채 끝나기도 전에 복도를 왁자지껄 오다니는 1학년들이 원장 선생님을 졸졸 따라다니는 모습이 창 너머로 보이지만 말이다.


1학년은 정전인데 집에 가야 하는 것 아니냐며 교실을 쩌렁쩌렁 울려대는 중이다. 결국 수업을 듣다 화가 난 한 학생이 허락을 얻어 1학년 교실을 찾아간다. 조용히 좀 하자. 수업을 못 듣겠네. 선배의 한 마디에 고요함이 맴돈다. 뒤늦게 내가 교실로 찾아가자 훨씬 작아진 목소리로 아이들이 찡찡대기 시작한다.



"그럼 오늘 빨리 집에 가고, 내일 남아서 마저 할까?"



갑자기 몇몇 아이들이 입을 다문다. 그럼에도 불만을 토해내는 친구들의 입을 조용히 막기까지 해 준다. 초등부 시절부터 나를 본 아이들은 그 말이 실제로 일어날 수도 있음을 아는 탓이다. 귀엽기는.


도 닦은 신선마냥 눈이든 정전이든 평소와 다름없는 2, 3학년들과 대조적으로 1학년들은 간간히 쫑알댄다. 어린아이들을 괜히 병아리에 비유하는 것이 아닌듯하다. 삐약삐약 거리듯이 어린 목소리를 잔뜩 내고 있으니까.


추운 날씨뿐만 아니라, 여러 일들이 겹쳐진 덕분에 더 피로감이 느껴지는 날이다. 내일은 조금이라도 따뜻했으면, 아니면 눈이라도 내리지 않기를 바라며 난로 앞에 잔뜩 웅크린다.



birds-5014150_1280.jpg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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